[단독]“서류 갈아버려라” 선관위 ‘특혜채용’ 조직적 증거인멸

고도예 기자 2024. 5.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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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간부들, 기록 파기-조작 지시”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 간부들이 부정 채용 정황이 담긴 실무직원의 업무 일지를 조작하는 등 적극적인 증거 인멸에 나섰다고 감사원이 1일 밝혔다. 지난달 30일 감사원은 선관위 직원들이 전현직 직원들의 자녀를 합격시키기 위해 면접위원이 작성한 평가 점수까지 조작하는 등 조직적으로 ‘특혜 채용’을 벌였다는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1일 감사원에 따르면 전남선관위의 경력채용 면접위원으로 참여했던 과장급 직원 A 씨는 지난해 6월 감사를 앞두고 6급 인사담당자가 작성했던 업무일지에서 2022년 박찬진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딸이 응시했던 경력채용 관련 내용 중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삭제하도록 다른 부하 직원에게 지시했다. 인사담당자는 채용 업무 도중 윗선으로부터 받은 지시 사항 등을 적은 ‘업무 일지’를 작성해 보관하고 있었다. 이 문건엔 “A 씨를 포함한 내부 위원들이 외부 면접위원에게 ‘면접 응시자 순위만 정해주고, 평가 점수란은 비워 달라’고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감사원은 2022년 박 전 총장의 딸이 응시한 면접에서 전남선관위가 위원들에게 “평가 점수란은 비워달라”고 요구했고, 이후 박 전 총장 딸 등 내정된 지원자들이 점수를 높게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2021년 신우용 당시 상임위원(1급) 아들의 채용에 관여한 서울선관위 인사담당 과장 B 씨는 지난해 6월 감사를 앞두고 부하 직원에게 채용 관련 문건이 담긴 서류함을 “갈아버리라”고 지시했다. 이에 직원들이 서류를 전부 파기했지만 감사원은 선관위 직원들이 문서 파기 전후로 주고받은 메신저 기록 등을 분석해 특혜 채용 사실을 확인했다. B 씨 등은 지난해 5월 선관위 자체 감사 당시엔 말을 맞춘 뒤 “블라인드 면접이었다”며 ‘특혜 채용’ 의혹 자체를 모두 부인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선관위, 특혜채용 일지 삭제… “블라인드 면접” 허위진술 지시도

선관위 ‘특혜 채용’ 조직적 증거인멸
무기한 보관 의무 서류도 파쇄 정황
증거 검게 칠한 자료 감사원 제출도

감사원이 선거관리위원회의 ‘특혜 채용’과 관련해 지난달 30일 중간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검찰에 수사 요청까지 한 건 특혜 채용 관여 의혹을 받는 선관위 간부들이 증거를 적극 인멸할 움직임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선관위 간부들이 선관위 자체 감사에서 ‘말 맞추기’를 한 사실도 이번 감사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외부 감시·통제의 사각에 있었던 선관위가 조직적인 부정 채용을 넘어 증거 인멸까지 나선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 전반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 “특혜 채용 관련 일지 중 불리한 부분 삭제”

“면접 외부 위원들에게는 ‘합격자만 정해주고 평가 점수는 쓰지 말아 달라’고 요구….”

감사원에 따르면 전남선관위의 채용 업무를 담당했던 6급 직원 A 씨가 2022년 작성한 문건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이 시험은 선관위 고위직인 박찬진 전 사무총장의 딸이 응시한 것으로, 당시 외부 면접위원들은 선관위 내부 위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응시자의 순위만 정했을 뿐 평가표는 공란으로 남겨뒀다. 면접이 끝난 뒤 A 씨는 직접 평가표를 작성하면서 내정자인 6명의 점수를 높게 적어 넣었고, 6명 안에는 박 전 총장의 딸도 포함됐다.

감사원은 박 전 총장 딸의 채용 면접에 참여한 전남선관위 간부가 지난해 6월 무렵 이 문건의 존재를 알게 됐고, 문건의 내용 중 박 전 총장 딸의 채용과 관련된 부분 중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을 삭제했다고 보고 있다. 선관위가 지난해 5월 자체 감사를 거쳐 박 전 총장 딸의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고, 관련 간부들의 징계를 예고한 직후였다.

지난해 감사원은 현장 감사를 통해 이 문건을 확보해 디지털 포렌식을 거쳐 문건이 여러 차례 수정된 사실을 파악했다. 이후 문건 최초 작성자인 A 씨로부터 별도로 휴대용 저장장치에 보관해 온 문건 원본을 확인했다고 한다. ‘제목없음’이란 이름의 이 문건에는 A 씨가 경력 채용과 관련해 진행했던 업무의 내용과 ‘윗선’으로부터 받았던 지시 사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 문건은 보고서 형태는 아니었고, A 씨가 날짜별로 받았던 지시 사항 등을 적어둔 메모에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당시 채용에 관여한 전남선관위 간부들이 감사원 감사 및 검찰 수사 등을 앞두고 관련 증거를 조직적으로 인멸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 “무기한 보관 의무 서류도 파쇄”

2021년 신우용 당시 상임위원(1급) 아들의 채용을 담당했던 서울선관위의 인사 담당 과장 B 씨는 지난해 5월 선관위의 자체 감사를 앞두고 부하 직원을 불러 “면접위원들이 지원자의 가족관계 정보를 알 수 없었다고 감사에서 진술하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면접은 ‘블라인드 면접’으로 진행되지 않아 위원들이 지원자의 부모 이름을 모두 알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B 씨는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선 부하 직원을 불러 “면접시험 관련 서류가 포함된 서류함을 갈아버려라”라고 지시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에 면접시험 관련 서류 등이 파쇄됐는데, 여기엔 최소 10년 또는 무기한 보관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는 서류도 있었다고 한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번 감사 과정에서 선관위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진 당사자의 인적 사항을 검은색 펜으로 지운 뒤 감사원에 자료를 제출한 사실도 확인됐다.

선관위 고위직 자녀의 특혜 채용 여부를 따지려면 해당 자녀가 채용 요건에 들어맞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선관위 측이 필요한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 감사원은 결국 3급 이상 고위직 운영과 관련된 자료는 선관위로부터 제출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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