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쇼리스가 가르쳐준 희망의 인문학 [세상읽기]

한겨레 2024. 5. 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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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얼 쇼리스 선생 방한 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초청 세미나 모습. 왼쪽부터 고병헌 성공회대 교수, 쇼리스 선생,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센터장인 임영인 대한성공회 신부, 필자 이병곤(당시 광명시평생학습원 원장). 광명시평생학습원 제공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노동한테 이겨먹기 위해/ 내가 제일 가엾다는 생각 하나로/ 누구 하나 미워할 필요 없이도// 간신히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날’(전욱진, ‘휴일’ 중에서)

유튜브에서는 ‘쇼츠’가 강자라 한다. 나의 대학원 강의 쇼츠는 시다. 늘 시를 앞세워 시작한다. ‘휴일’은 노동절에 맞춰 골랐다. 내친김에 인터내셔널가도 들려줬다. 켄 로치 감독이 만든 1995년 영화 ‘랜드 앤 프리덤’에서 힘차고 비장하게 흘렀던 곡을 선택했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당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제여단’이라는 이름으로 결집한 유럽 청년 민병대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얼 쇼리스(1936~2012) 선생이 가끔 떠오른다. 교도소 재소자, 거리의 노숙인들이 인문학 공부로 새 삶을 펼쳐가도록 도움 준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비평가였다. 2006년 1월. 그를 한국으로 초청해 학술대회, 인문학 토론 워크숍 등을 일주일 동안 열었다. 70살 고령에 혈액암 투병 중임에도 자기 생애 첫 아시아 국가 방문을 감행했다. 이유는 단 하나.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려는 한국의 노숙인 지원단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뉴욕시에서 80㎞ 떨어진 베드퍼드힐스 교도소. 교육 자원봉사를 하러 나갔던 얼 쇼리스는 한 수감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 재소자 비니스 워커가 답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얼 쇼리스는 충격을 받았다. 워커의 대답을 곱씹어 생각한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할 때 일자리나 돈보다 중요한 것이 뭘까? 자율성과 자치이다. 정신적 삶이란 스스로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 그런 행동은 자율적 인간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가난한 이들이 자율적 삶을 누린다는 의미는 공적 세계에 참여하여 정치에 관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반드시 참여자의 성찰을 요구한다. 얼 쇼리스는 결론에 이른다. 가난한 이들에게 ‘성찰적 사고능력’을 나눠 주자. 이게 바로 비니스 워커가 요청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일 것이다.

이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긴다. 사재를 털고, 후원자를 모아 ‘클레멘테 코스’를 마련한 것이다. 거리의 부랑아, 노숙자들과 함께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이 과정을 마친 참여자들은 놀라울 만큼 진지한 학습 집중도를 보여주었고, 삶의 의지도 강해지는 변화를 목격한다. 얼 쇼리스 선생은 자신의 통찰과 클레멘테 코스 진행 과정을 기록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보물들’(Riches for the Poor)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나는 동료들과 이 책을 우리말로 옮겨 2006년 가을,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얼 쇼리스에 따르면 가난한 이들은 여러 종류의 ‘무력’(武力)에 포위되어 있다. 비싼 집세, 굶주림, 마약, 인종차별, 학대, 가정폭력, 비열함, 질병 등 서른가지 이상이 거론된다. 그래서 바쁘다. 발버둥 쳐야 살아남는다 생각한다. 하지만 포위망을 벗어날 길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무력에 에워싸인 사람은 절망에 빠져 외로워하거나 격노의 몸짓을 보이거나 자포자기 심정을 드러낸다.

강의에서 만났던 숱한 청중들을 떠올려본다. 청소년, 대학생, 학부모, 교사, 부모, 성인 학습자들 상당수는 불안하고 답답하고 고립된 심리상태를 내비쳤다. 교사 지원 이력서에 빼곡히 적혀 있던 각종 자격증 취득 목록을 떠올린다. 살기 위해 청년들이 얼마나 바둥거리는지 짐작이 간다. 우리는 미국 빈곤층처럼 절망적 가난을 겪지는 않는다 해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신적으로 황량하고 피폐하다.

아침마다 항암 치료제를 한주먹씩 입에 털어 넣던 그 사람,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서는 계단 다섯개 오를 때마다 한번씩 숨을 돌려야 겨우 2층까지 오르던 그 사람. 노숙인을 만나 대화하는 자리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띤 대화를 이어가던 그 사람이 생각난다. 미국으로 귀국하기 직전, 선생이 내게 물었다. “정말로 한국형 클레멘테 코스가 생겨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은가?” 지금 나로서는 대답이 궁색하다. 하지만 대한성공회 성직자들과 뜻있는 인문학자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성프란시스대학이 노숙인들을 위한 인문학 과정을 20년째 지속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몇주 지나면 그가 떠난 이후 12주기. ‘누구 하나 미워할 필요 없이도// 간신히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날’, 얼 쇼리스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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