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문 닫는 대한극장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은 1958년 문을 열었다. 한때 별명이 ‘벤허 극장’이었다. 70㎜ 필름 영화 <벤허>를 원본 그대로 틀 수 있는 곳이 대한극장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1962년 2월 개봉된 <벤허>는 7개월간 상영되며 만원사례를 이뤘다. 초대형 화면으로 보는 <벤허>의 마지막 전차 경주 장면만큼은 아무리 봐도 놀랍다는 입소문이 난 덕분이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 돼버렸지만, 창문이 전혀 없는 ‘무창(無窓) 극장’도 대한극장이 대한민국 1호다. 20세기폭스사가 개관 설계를 맡으며 영화 볼 때 빛의 방해를 받지 않게 창문을 없앴다고 한다. 상영 시설에도 신경을 썼다. 1900여개 좌석을 설치했고, 국내 최초로 70㎜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과 영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음향 시설도 최고였다. 말하자면 당대의 최대·최첨단 극장이었던 셈이다.
대한극장은 <사운드 오브 뮤직> <킬링필드> 등 대작들을 중심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충무로의 간판 극장으로 자리 잡았다. <로보트태권V>를 보려고 극장을 찾았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터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영화는 거의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다. 예매 시스템이 없으니 신작이라도 개봉하면 영화관에는 아침부터 예매 줄이 늘어서곤 했다. 극장 앞엔 암표상이 들끓었다. 모두 스크린이 하나뿐이던 단관 극장 전성시대의 얘기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개막하며 영화관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변화에 맞춰 대한극장도 2002년 말 11개 상영관을 갖춘 영화관으로 재개관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대한극장이 개관 66년 만에 문을 닫는다. 극장을 운영하는 세기상사는 지난달 29일 전자공시에 극장 영업을 오는 9월30일 종료한다고 신고했다. 이유는 경영 악화이다. 이제 피카디리·단성사 등에 이어 서울의 단관 극장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한국 영화계를 통칭해 ‘충무로’라고 부를 만큼, 충무로는 한국 영화의 상징이다. 충무로에서 한국 영화 역사와 함께해온 대한극장 건물은 문화공연장으로 이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한극장 없는 충무로가 여전히 충무로일까. 추억 속의 ‘시네마 천국’을 잃는 것처럼 허전하고 섭섭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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