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기어’ 푸는 국회의장 후보들,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이재명의 입법부’로?

구민주 기자 2024. 5. 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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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연임설’ 풍선효과로 이례적 과열 양상…‘중립’보다 ‘선명성’ 경쟁
대표-원내대표-의장 ‘삼위일체’ 수순…“이게 총선 민심” “독주 역풍 우려”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왼쪽부터) 국회의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박지원·우원식·정성호·조정식·추미애(가나다순) ©시사저널 임준선·박은숙·최준필

4·10 총선을 압승으로 마무리 지은 더불어민주당의 달력엔 몇 개의 굵직한 선거들이 더 기다리고 있다. 당장 오는 3일 원내대표가 선출되고 8월엔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그 사이 치러지는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 가장 집중돼 있다. 그 어떤 당내 선거 못지않게 '명심'(明心·이재명의 의중)을 앞세운 선명성 경쟁이 이뤄지면서, 주자들 간 유례없는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을 넘어 '이재명의 국회(입법부)'가 돼가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 안팎의 우려와 반발도 자연히 커지고 있다.

제1당이 된 민주당에선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차기 국회의장 자리에 도전하겠다는 선언들이 이어졌다. 공식 출마 선언을 했거나 출마 의지를 드러낸 이들을 종합하면 이미 최소 5파전 이상의 다자구도가 형성된 상태다. 22대 국회서 6선이 되는 조정식 의원과 추미애 당선인, 5선의 정성호‧우원식 의원, 그리고 최고령인 5선 박지원 당선인 등이 주요하게 거론된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친명'(친이재명)이다.

그동안 의장 선거는 대개 제1당 최다선 의원들이 출마해 비교적 조용한 경쟁을 치르는 것이 관행이었다. 때때로 최다선 중 한 명을 일찍이 추대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선 이러한 전례와 관행들이 모두 다 깨지고 있다. 여기엔 이재명 대표의 8월 당 대표 연임이 유력해지면서, 당권에 도전할 법한 중진들이 일제히 의장 선거로 몰린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후보자 모두 연차 높은 중진들인 탓에, 이 대표나 당 지도부가 원내대표 선거처럼 '교통정리'를 하지 못했을 거란 얘기도 있다.

ⓒ시사저널 이은서

강도도 내용도 형식도 유례없는 의장 선거

경쟁의 '강도'도 이색적이지만, 경쟁의 '내용' 또한 유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자들 모두 '중립성'보다 '선명성'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혁신 의장' '개혁 의장' 등을 강조하며 거대 민주당의 입법 공세에 맞춰 대여‧대정부 투쟁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이재명 대표와 손발이 맞는 적임자임을 강조하는 '명심 쟁탈전'도 벌인다.

의장의 중립을 되레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흐름이 나타나는 점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점이다. "(국회의장이) 중립은 아니다"라는 추미애 당선인의 말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주자들이 "기계적 중립으로 아무것도 못 한다"(정성호) "국회법이 규정한 중립의 협소함을 넘어서겠다"(우원식) 등의 발언을 이어가며 '노(No) 중립'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중립을 가장 강조‧약속해 온 기존 의장 선거와 정반대 흐름이다. 한 범야권 관계자는 "의장의 중립이 마치 구악(舊惡)이나 입법부를 망가트리는 장애물인 것 마냥 주장하며 너도나도 '중립기어'를 풀겠다고 공언하는 게 낯설고 기이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선거의 '방식'도 유례가 없다. 민주당은 이번 국회의장 경선에서 최초로 '결선 투표제'를 도입했다. 대외적으로는 '대표성 강화'를 명분으로 세웠지만, 실제로는 혹시나 명심이 아닌 후보가 당선되는 일을 막기 위한 최후의 장치라는 해석이 많다.

결국 이들의 이러한 행보는 이번 총선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당심'을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거센 정권 심판론 속에서 압승을 거둔 만큼 '선명한 입법부'를 원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란 주장이다. 직접 의장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절대 다수가 대부분 친명 의원들이기 때문에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내놓는 거란 얘기도 있다.

친명계 표밭을 다지기 위한 이들의 발언은 실제 날로 거세지고 있다. 우원식‧정성호‧조정식‧추미애 등 주자들은 지난달 28일 친명계 최대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간담회에 참석, 정견발표장을 방불케 하는 강성 발언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추미애 당선인은 "2016년과 같은 일(탄핵)이 되풀이되면 절대 민심과 동떨어진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며 '탄핵'을 언급했다. 조정식 의원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저지하고, 필요하다면 탄핵소추에 필요한 의석도 200석에서 180석으로 낮추는 개헌도 시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원식 의원 역시 "'민주당에 맡겨놨더니 제대로 된 국회구나'라는 느낌이 들어야 행정 권력까지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정성호 의원도 "(여야) 합의가 안 될 때는 단호하게 나가야 한다. 다수당으로서 민주당의 효능감을 보여줄 수 있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선명성 대결은 실제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는 분위기다. 후보군 중 가장 강경파로 꼽히는 추 당선인에게로 여론이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꽃이 지난 4월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진행한 전화면접조사 결과 추미애 당선인 29.8%로 압도적으로 높은 응답을 받았다. 이어 박지원 5.1%, 조정식 2.4%, 정성호 1.6%, 우원식 1.5% 순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최고위원이 4월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손을 맞잡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尹 정부' 독주 맞서는 '이재명 국회' 독주?…당내 우려도

아직 '명심'이 어느 후보에게 향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명심이 꽂힌 후보가 최종 선출되는 건 확실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표 연임이 유력한 이재명 대표와 친명 원내대표, 여기에 명심을 얻은 국회의장까지 탄생할 경우 22대 국회는 시작부터 극심한 경색을 맞을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상 이 대표를 중심으로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이 대표의 '독주'는 더욱 강해지고 여당과의 협치는 더욱 요원해질 거란 분석이다.

당내에서도 의장 선거마저 이 대표를 향한 충성 경쟁으로 흐르는 것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파색이 옅은 한 민주당 당선인은 1일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 독주에 맞서 입법 권력을 확실히 차지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총선 압승 후 우리 당이 지나치게 폭주하는 느낌을 줘 여론의 반감과 역풍을 살까 두렵다. 우리가 잘해서 총선서 이긴 게 아니잖나"라고 말했다. 당내 비명계 일각에선 "이 대표와 친명계가 더욱 막강한 권력을 쥐려는 만큼 이후 그에 따른 '책임'도 온전히 져야만 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역시 "어차피 22대 국회는 거대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대부분 흘러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오히려 앞장서서 의장의 중립성을 강조했다면 더 모양새가 보기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후보들이 강성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민주당 다수 의원들이 최종 투표에선 그 중 그나마 온건하고 합리적인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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