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진도 리더십도 없다…축구협회 ‘예견된 비극’

김창금 기자 2024. 5. 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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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본선마저 좌절…원인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대한축구협회 제공

역사엔 가정이 없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순간에 천당과 지옥이, 명장과 패장이 갈린다. A대표팀 사령탑의 유력한 후보였던 황선홍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의 퇴진은 그중 하나다. 10회 연속 올림픽 무대 진출에 실패하면서 후폭풍은 커지고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지도력에 대한 의심과 함께 시스템 부재, 행정력 빈곤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동네북’이 된 축구협회 앞에 삼각파도가 덮쳤다.

시스템의 부재와 한계

황선홍 감독은 지난달 열린 23살 이하 아시안컵 8강 인도네시아전 패배로 올림픽행 티켓을 놓친 뒤 귀국 기자회견에서 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2년 주기로 열리는데, 한 대회 성적에 따라 사령탑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얘기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받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한국적 특수성이 있지만, 곱씹어볼 지적이다.

한국이 인도네시아와 8강전 전반 막판 실점도 시스템 부재가 빚은 불운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 2명의 국외파만 데려온 반면, 인도네시아나 일본은 여러 명의 국외파를 확보했다. 만약 김지수(브렌퍼드)나 이한범(미트윌란) 등 중앙 수비수 자원이 합류했다면 인도네시아전 두 번째 골을 내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선수 영입에 협회가 전방위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감독이 고군분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여자축구 활성화 또한 이번 집행부가 의욕적으로 내건 과제였지만, 등록선수는 10년 전인 2014년(1천765명)보다 15%가량 준 1천570명이고, 18살 이하는 1천113명으로 10년 전(1천341명)보다 17%가량 줄었다. 골든에이지 등 유소년 선수 발굴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성적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지도자들이 기본기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려는 근원적인 모색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 23살 이하 아시안컵에서 위력이 드러난 이중국적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없다.

고개 숙인 황선홍 감독. 연합뉴스

정몽규 회장의 CEO 리스크

2013년 취임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사면초가다. 지난해 축구인 사면 결정 발표 뒤 취소, 올해 A대표팀의 아시안컵 4강 요르단전 패배 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번 올림픽팀 23살 이하 아시안컵 4강행 좌절 등으로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다. 축구인 사면은 형식적으로나마 내부 논의 과정을 거쳐 회장이 재가한 것인데, 공표 다음 날 ‘없던 일’로 말을 바꾸면서 모양새를 구겼다. 내분을 관리하지 못해 무능한 지도자로 각인된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과정에 회장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악재가 됐다. 여기에 한국이 2024 파리올림픽에 나갈 수 없게 되면서 축구팬들의 불만은 커졌다. 무턱대고 물러나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지만, 내년 1월 선거인단 투표를 통해 4선을 노리는 정 회장의 앞길은 험난해 보인다.

한국 선수들이 U-23 아시안컵 8강전 인도네시아와 승부차기에서 진 뒤 아쉬워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컨트롤 타워도 행정력도 없다

대한축구협회에는 과거 축구인이 맡았던 전무이사가 없다. 지난해 축구인 사면발표 철회 뒤 후유증으로 아이디어가 많은 젊은 축구인들도 협회를 떠났다. 정 회장이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행정 실무는 문체부 차관 출신의 상근 부회장이 총괄하고 있다. 하지만 축구협회의 위기 상황에서 상근 부회장이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축구 현장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고 축구인들의 목소리·분위기 등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축구협회는 각급 대표팀에 세계 수준의 의료, 장비, 훈련 환경 등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지도자나 선수와도 의기투합하는 등 끈끈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럴 땐 사람이 중요한데, 협회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매개자는 많지 않은 데다, 협회 내부 역량을 끌어모을 구심도 보이지 않는다.

황선홍 감독의 탈락으로 A대표팀의 감독 후보로는 외국인 지도자들이 떠오르고 있다. 재정적 부담이 따르고, 정보의 제한으로 성과를 예측하기 힘든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장기적 구상으로 A대표팀의 미래전략을 짜지 못하고, 대중의 반응에 일희일비해온 축구협회의 관성은 예고된 악순환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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