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목숨 걸고 만든 ‘미터’, 우리는 얼마나 잘 잴까요

한겨레 2024. 5. 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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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한국사회]
게티이미지뱅크

이승미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반도체물리학 박사)

지난주 나는 프랑스 파리 외곽 세브르의 국제도량형국으로 출장을 갔다. 지하철 마지막 역에 내린 후에도 센강을 건너 20분 정도 더 걸어가야 했는데, 강풍 때문에 옷장 속 롱 패딩이 눈에 아른거릴 지경이었다. 국제도량형국은 1875년 5월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뤄진 ‘미터 협약’을 시초로 만들어진 국제표준연구실 겸 사무국이다. 당시 협약에 참여한 17개국의 미터에 대한 합의는 과학뿐 아니라 국제무역에도 필요한 조처였다. 역사적인 최초의 국제협약을 기리기 위해 5월20일은 지금까지 세계 측정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미터는 누군가의 책상 위에서 뚝딱 정해지지는 않았다. 혁명기 프랑스의 과학 아카데미는 북극에서 시작하여 파리를 지나 적도까지인 사분 자오선 길이의 1천만분의 일을 ‘미터’로 부르기로 정한 후, 대체 그 길이가 얼마만큼인지를 재기 위해 두 무리의 천문학자들에게 측정 원정을 보냈다. 파리부터 북쪽 됭케르크까지는 들랑브르가, 남쪽인 바르셀로나까지의 측정은 메섕이 책임졌다.

모두에게 평등한 도량형을 위해 야심 차게 출발한 천문학자들이 과학 아카데미에 최종값을 보고하기까지는 무려 7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프랑스는 혁명기인데다가 스페인과의 다툼도 잦은 시기였기에, 단지 지구 둘레를 재고자 했던 과학자들조차 국경 지역에서 첩자라고 의심받아 상처 입고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측정 출장 명령을 내렸던 과학 아카데미 수뇌부의 운명보다는 훨씬 나은 셈이었다. 아카데미 원로 라부아지에는 혁명의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미터는 과학자들의 피와 땀, 심지어 목숨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도량형인 길이와 질량으로 시작한 국제협약은 1921년 국제 도량형 총회에선 모든 물리량으로 확장되었고, 1960년 제11차 총회에서 국제단위계가 정의되었으며, 2018년 제26차 총회 때엔 국제단위계 일곱 기본단위 중에 네 가지인 킬로그램, 암페어, 켈빈, 몰의 기본단위가 물리상수로부터 재정의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되었다. 과학이 발전하여 측정이 정확해질수록 단위의 정의도 더욱 정밀하게 발전해온 것이다.

과학의 기본이 되는 측정, 측정의 기준이 되는 단위는 이제 만국 공통이라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1959년 미터협약에 가입하였고, 1964년부터는 계량법에 따라 미터법을 전면 실시하고 있다. 1875년 17개국으로 시작한 미터 협약국은 현재 100개국(정회원 64개국, 준회원 36개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렇다면 이 많은 나라에서 측정이 과연 서로 같을까? 그저 믿으면 될까?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그냥 믿는 것은 없다. 의문에 답하기 위한 확인이 바로 ‘국제 비교’라 부르는, 측정치의 국가 간 비교이다. 국제도량형국은 전세계 측정표준에서 국제 동등성 확보를 목표로 국제회의를 주관하고 있다. 회원국은 매년 열리는 회의에서 국제 비교를 제안하거나 참여할 수 있다. 각국의 국가측정대표기관은 같은 시료를 같은 방법으로 측정해서 얻은 측정값을 서로 비교한다. 각국의 측정값들을 하나의 그래프에 함께 나타냈을 때 측정과학에서 불확도라 부르는 일정 오차범위 내에서 같은 값을 보여야 동등성이 확보된다. 만일 측정값이 아웃라이어로 나타나면 상당한 불명예다.

우리나라는 미터 협약에 가입한 역사가 비교적 짧은데도 국제 비교에서는 매우 우수한 결과를 보이는, 측정과학 선진국이다. 반도체 같은 첨단과학 기반 산업에 우리나라가 앞장서온 데에는 그만큼 높은 수준의 측정과학이 뒷받침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올해도 나를 비롯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측정과학자들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마음가짐으로 국제 비교를 제안하거나 참가했다. 여름올림픽과는 달리 응원 기사 하나 없고, 심지어 ‘측정과학 올림픽’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주지 않더라도, 측정과학자들은 매년 열과 성을 다해 측정한 수치를 들고 바람 거센 세브르 다리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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