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한 몸에 창백한 피부 … 왜 19세기 유럽 화가들은 결핵 환자를 미화 했을까

오범조•오경은 2024. 5. 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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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범조•오경은의 그림으로 보는 의학코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감염성 질환은 무엇일까? 정답은 결핵이다. 결핵은 석기시대부터 존재해왔고, 특히 18~19세기 유럽에서 대규모 유행병으로 작용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오늘날까지도 결핵은 에이즈, 말라리아와 함께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3대 집중 관리 질환 중 하나인데, 매년 1000만명 이상이 결핵에 걸리고 160만명 안팎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핵은 후진국형 질병으로 불리는데 위생 상태와 영양공급이 불량하며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 강국이라는 평가를 받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결핵이 높은 유발률을 보인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적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는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결핵 발생률 2위(인구 10만명당 39.8명), 결핵 사망률 4위(10만명당 3.8명)를 기록했다. 

결핵은 보균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며 분출한 비말핵을 통해 감염되며, 증상으로는 기침, 가래, 특히 피 섞인 가래가 동반된다. 병세가 많이 진행된 경우 객혈과 폐 손상으로 인한 호흡곤란, 흉통 등의 호흡기 증상과 발열, 오한, 신경과민, 식욕부진으로 인한 체중감소, 무력감 등의 전신 증상이 나타난다. 발병 부위에 따라 림프절, 척추 등에서 통증을 느낄 수 있고 결핵성 뇌막염의 경우 두통이나 의식 저하가 나타나기도 한다. 

1882년 독일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하며 그 존재가 알려졌으나 이를 치료할 스트렙토마이신이라는 항생약이 발견된 것은 1944년에서야 일어나는 일이니, 마땅한 치료법을 모른 채 감염자 수는 증폭하던 19세기 유럽에서 이 병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이 간다.[1] 

결핵이 이렇게 혹독한 병세와 죽음이 뒤따르는 병임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유럽 사회가 결핵 환자가 겪는 끔찍한 고통을 지우고 마치 그것이 아름다움의 한 종류인 듯 미화하는 점은 특이하고 흥미롭다.[2] 에밀리 브론테가 “결핵은 환자를 돋보이게 만드는 병”이라 적었던 것이나,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에서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와 안타깝게 이별하는 비올레타가 여리여리한 마른 몸에 창백한 흰 피부를 가진 청순 미녀로 묘사되다 종국에 결핵으로 사망하는 것이 그러한 사례들이다. 

[도판 1]의 흑백사진은 어떠한가? 두 눈을 감고 등받이 의자에 기대 누운 여성이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여성의 표정과 자세는 고요하고 정적이다. 어두운 배경과 강렬한 대조를 이루도록 주인공 여성의 얼굴에 강한 조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덕분에 마치 이 여성은 천상의 밝은 빛을 받으며 하늘로 떠오르는 듯 보인다. 헨리 피치 로빈슨의 <그녀는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라는 이 제목의 이 작품은 결핵을 앓던 여성이 잠들 듯 고통 없이 세상을 갓 떠난 장면을 연출하고, 살아있었더라면 이룰 수 있었을 사랑이 죽음으로 인해 비껴감을 안타까워하는 정서를 문학적인 제목을 통해 제시한다는 점에서 결핵을 낭만화하는 또 다른 사례이다.

[도판 1] 헨리 피치 로빈슨(Henry Peach Robinson), <그녀는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She Never Told Her Love)>, 1857. Ⓒ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세기 회화에 있어 결핵과 그 환자를 미화하는 양상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 전형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축복받은 베아트리체>라 하겠다. [도판 2]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시집 <신생>에서 그토록 찬양하는 베이트리체 포르티나리의 미모와 덕성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로세티는 자신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시달을 베아트리체의 모델로 삼아 그렸다. 그림 오른편에는 붉은색 새가 베아트리체에게 흰 양귀비꽃을 물어다 주는 것이 그려져 있는데 이들은 각각 사랑의 메신저와 죽음 혹은 결핵을 상징한다. 작가는 베아트리체를 세상을 떠난 아내와 동일시하고 있다. 

사실 시달은 1860년대에 결핵에 걸렸고 한창 병을 앓을 때에 통증을 경감시키고자 양귀비 추출물로 만든 아편 팅크를 복용하다 결국 1862년에 사망했었던 것이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로세티가 결핵으로 고통받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어떻게 기억하고 싶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베아트리체/시달은 결핵의 고통과 무관한 초월적 미를 가진 여성으로 그려진다. 턱을 살짝 들어 눈 감은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있는 모습은 길고 가는 목선을 자랑하는 것 같고 특히 타오르는 듯 붉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등 뒤로 넘겨져 흰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또한 얼굴 주변에 밝은 빛이 감도는 듯 채색해 마치 이 창백한 얼굴에서 천상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1873년 친구인 윌리엄 모리스에게 쓴 편지에서 로세티는 이 작품에 대해 “베아트리체의 육신을 사망 대신, 일종의 초월적 의식상태 혹은 영적인 변용으로 상징되는 베아트리체의 이상적 모습을 재현하고자 의도했던 것”이라 설명한다.[3] 그래서 베아트리체는 환자이지만 험한 증세로 고통받는 존재가 아니라 ‘고요하고 아름답게 아픈’, 금방 하늘이 축복하며 모셔갈 존재다. 

[도판 2]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축복받은 베아트리체(Beata Beatrix)>, 1864-70, Ⓒ Tate Britain

다른 한 편, 빅토리아 시대에 결핵과 그 증상을 미화해 해석하는 경향은 결국 그 이후 수십 년간을 지배할 새로운 미의 기준을 낳기도 하였다.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연약함을 여성의 이상적 아름다움에 결부시켜 미열로 늘 상기된 볼, 창백한 피부, 앙상하게 마른 몸과 같은 결핵 증상의 시각적 양상을 아름답다 여기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된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결핵이 유발하는 창백한 피부톤을 사회가 너무나 갈망한 나머지 경구 투약하는 비소 조각(무지에 의한 것이겠지만, “완벽히 무해하다”고 광고했다.), 살을 헹구는 액상 암모니아제, 살에 바르는 흰 페인트나 유독성 에나멜 등 안정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미백 제품들이 여럿 출시, 판매되었다. 

[도판 3]은 미국 화장품 회사인 프랑소아 그레고아가 내놓은 “미국을 위한 에나멜”이란 미백 제품의 1866년 광고 이미지이다. 광고 속 왕관을 쓴 여신은 희고 깨끗한 피부, 장밋빛으로 물든 뺨과 가느다란 팔과 허리를 뽐내고 있다. 결핵이 가져온 미학을 실천하기 위해 건강한 이들이 스스로 유해 물질을 소비하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도판 3] 프랑소아 그레고아사(François Gregoire & Co.) 광고, 1866. Ⓒ Library of Congress. USA
[도판 4]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마담 엑스(Madame X)>, 1884. Ⓒ Metropolitan Museum of Art.

존 싱어 사전트의 유명 작품인 <마담 엑스>[도판 4]에서도 이를 재확인할 수 있다. 마담 엑스는 1880년대 파리의 사교계 명사였던 버지니 아멜리 아브뇨 고트로의 초상화이다. 사전트는 모델에게 딱 붙는 검정 드레스를 입게 하고 바탕색을 진한 갈색으로 칠함으로써 관객이 부인의 옆얼굴, 목과 어깨, 팔의 푸르리만치 흰 피부에 온통 시선을 빼앗기게 만든다. 고트로 부인은 당시 파리에서 미모로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는데, 특히 그녀의 흰 피부와 모래시계 같은 몸매가 자주 언급되었다 한다. 부인 스스로 이를 인지하고 더욱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매일 얼굴과 전신에 라벤더색이 도는 흰 에나멜 안료를 바르고 다 마를 때까지 인형처럼 꼿꼿이 서 있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안료를 바르지 않은 귀와 손가락 끝은 새하얀 얼굴과 몸의 색과 달리 발그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또한 코르셋으로 바싹 조여 흉통에 비해 비현실적으로 가는 허리선을 뽐내고 있는데 이 또한 결핵 증상을 낭만화하여 생겨난 기괴한 유행 중 하나이다. [도판 5]

[도판 5] 빅토리아 시대 유럽 실크 코르셋, 1871-1900, A12302, Ⓒ Science Museum Group, London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세대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일관된 미의 기준은 “하얀 피부, 작은 얼굴, 잘록한 허리, 길고 가느다란 다리” 등 피상적 미에 집중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건강하지 않은 것을 미화하고 사회구성원이 이를 따르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위협하는 행동을 실천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예를 들어 크론병은 만성적인 난치성 염증성 장 질환인데 이 질환의 결과로 빈혈, 영양 흡수장애가 동반되어 창백한 피부와 마른 몸을 가진 젊은 환자를 두고 “모델 같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서 부럽다”라고 언급하는 것을 들으면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숨이 나올 노릇이다. 

결핵 또한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감염성 질환임에도 예술 작품 속의 단면적인 모습만으로 질병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각자가 가진 원래의 피부톤, 체형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나 건강한 식습관이나 운동하는 일상을 SNS를 통해 공유하는 유행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미적으로도 높이 평가하는 새로운 미의 기준이 더 많은 호응을 얻기를 기대해본다.

오범조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부교수 
오경은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미술사학 조교수
 


[1] 결핵은 그 원인균의 특성상 치료를 위해 최소 6개월 이상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한다. 2주 이상 호흡기 증상이 지속되면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한다. 투베르쿨린 피부반응 검사, 엑스레이 검사 등으로 확진되면 약제를 처방받을 것인데 증상이 덜해졌다고 중간에 환자가 임의대로 약을 끊을 경우 결핵균이 약제에 대한 내성을 획득하게 되어 약제내성 결핵으로 주사제와 부작용이 많은 이차 항결핵제를 더 오랜 기간 투여해야 함을 인지하고 완치까지 의료진에 협력할 필요가 있다.
[2] 이는 아마도 결핵으로 인한 사망이 한창 아름다울 또래의 젊은이들 사이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기록에 따르면 1841년에서 1910년 사이 영국과 웨일스에서만 4백만명 이상이 결핵으로 사망했는데 이 중 1/3이 13~34세 사이, 특히 절반에 해당하는 수가 20~24세였어서 당시 영국인들은 이 병을 “청춘 강도(the robber of youth)”라 불렀다고 한다.
[3] McDonnell, Patricia & Rodgers, Timothy R. (2007). "Beata Beatrix". victorian web.org. 2024년 4월 21일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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