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센터에 팔린 상장사…대주주 목돈 쥐고 소액주주만 눈물

박종오 기자 2024. 5. 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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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맥주, 시큐레터, 파두 등
신규 상장기업 투자자 위험 확산
제주맥주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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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 인근의 한 건물 1층에 있는 자동차 정비업체에선 직원 3명이 수리를 위해 입고된 수입차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100여평 남짓한 이 카센터는 최근 코스닥 상장사인 제주맥주 인수에 나서며 시장의 눈길을 끌고 있다. 자산은 16억원(지난해 기준), 직원은 10여명에 불과한 소규모 카센터가 자산 규모가 500억원에 이르는 상장기업의 최대주주가 되겠다는 것이어서다.

경영권 지분 매각 공시 직후 주당 1180원(올해 3월19일 종가 기준)이었던 주가는 한 달 만에 1640원(4월16일 종가)까지 치솟으며 널뛰었다. 이 정비소의 실질적 소유자이자 제주맥주 주주총회에서 새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인 신아무개씨는 제주맥주 지분 9.2%를 약 63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지인 등으로 이뤄진 3개 투자조합을 상대로 신주와 사모사채 등을 발행해 투자금 500억원을 추가로 조달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그는 한겨레에 “투자금 조달 이후 실질적 대주주가 조합으로 바뀔 수도 있다”며 “도수 높은 하이볼을 새로 출시하고 맥주 수출 시장을 다져 내수가 어려워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제주맥주 소액주주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건, 미래 전망의 불확실성뿐 아니라 애초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던 기존 창업자 겸 대주주의 이탈 때문이다. 과거 자본금 2억원에 제주맥주를 차린 문혁기 대표는 자신과 가족회사(엠비에이치홀딩스) 지분 매각을 통해 63억2천만원을 받는다. 문 대표가 제주맥주 상장 이후인 2021∼2023년 회사의 등기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만 8억여원(등기이사 평균 보수 기준)으로 추산된다.

이 회사의 조은영 상무, 김배진 이사도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로 보수 외에 지금까지 각각 8천만원, 3억4천만원 규모 차익을 얻었다. 제주맥주에 투자한 스톤브릿지벤처스·포레스트파트너스·에스비아이(SBI)인베스트먼트 등 기관 투자가들은 상장 뒤 지분 매각을 통해 200억원가량을 회수했다.

반면 제주맥주는 지난 2021년 5월 코스닥 시장 상장(이른바 ‘테슬라 요건’ 상장, 즉 이익 미실현 기업 특례상장) 이래 단 한 해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3년간 누적 영업적자는 약 300억원에 이른다. 상장 당시 ‘투자 설명서’에선 2021∼2023년 누적 영업이익을 약 341억원으로 추정했으나, 현실은 180도 달랐던 셈이다.

이 같은 실적 부진으로 제주맥주의 현재 주가는 상장 당시 공모가(3200원)의 3분의 1로 곤두박질했다. 창업자 등의 ‘그들만의 잔치’에서 소외되고, 카센터만 바라보게 된 제주맥주의 소액 주주 수는 지난해 말 기준 6만3128명에 이른다.

코스닥 상장사 ‘제주맥주’ 지분을 인수해 이달 초 새로운 최대주주가 될 예정인 서울 성동구 용답동 수입차 정비센터. 박종오 기자

신규 상장 기업에 투자했다가 개인 투자자들만 골탕 먹는 사례는 이뿐 아니다. 지난해 8월 코스닥에 상장한 사이버 보안 기업 시큐레터는 불과 상장 8개월 만에 회계 감사인으로부터 ‘의견 거절’을 받으며 주식 거래가 정지되고 상장 폐지 심사를 받게 됐다. 이 회사는 상장 전 금융당국이 지정한 회계 감사인으로부터 ‘적정’ 감사 의견을 받고 이를 토대로 증시에 입성했다. 그런데 금융감독원이 이례적으로 상장 직후 회계 감리에 착수하며 투자 설명서의 감사 의견을 믿고 돈을 넣은 투자자들로선 날벼락을 맞게 된 셈이다.

금감원 특별사법경찰은 앞서 지난달 30일 에스케이(SK)하이닉스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뻥튀기 상장’ 논란을 빚은 코스닥 상장사 파두의 주요 매출처인 하이닉스를 참고인 삼아 자료를 대조해 보기 위해서다. 파두는 지난해 7월 상장을 앞두고 연간 매출액 추정치를 1203억원으로 제시했으나, 실제 지난해 매출액은 225억원에 그쳤다. 이로 인해 개인 투자자들은 회사 쪽과 상장 주관사인 엔에이치(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집단 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문제가 된 기업들은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상장 당시부터 수익성과 성장 전망 등에 관한 의구심이 컸던 곳들”이라며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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