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드라마냐, 파격 재해석이냐…‘로미오와 줄리엣’ 2버전 뜬다
파격의 매튜 본, 기성세대 저항 불온한 청춘물 재구성
불운했지만 불멸로 남은 로맨스,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가 1597년 발표한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두 편의 춤, 두 편의 연극으로 변주된다. 연극과 영화, 오페라와 뮤지컬 등으로 다양하게 변형돼 온 이 고전은 이번에도 배경과 스토리를 조금씩 달리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엘지(LG)아트센터는 8~19일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안무가로 꼽히는 매튜 본(64)이 ‘어드벤처 무용극’으로 구현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인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은 10∼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케네스 맥밀란(1929∼1992)의 드라마 발레를 공연한다. 두 작품 모두 프로코피예프의 모음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춤으로 만들었다. 맥밀란이 충실한 재현에 집중한다면, 매튜 본은 파격에 가까운 재해석을 시도한다.
매튜 본은 파격적 변형이 특기인 안무가. ‘백조의 호수’에 근육질 남성 군무를 넣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현대판 뱀파이어로 둔갑시켰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불온한 청춘의 이야기로 탈바꿈시킨다. 무대부터 현대 이탈리아 베로나의 비밀스러운 청소년 시설로 설정했다. 그는 “현대 관객의 공감을 얻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탐색했다. “해답은 간단했어요. 젊은 무용수와 젊은 창작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재능과 시각에서 영감을 얻었지요. 새로운 세대를 위한, 그들에 관한 이야기인 셈입니다.”
이번 작품은 약물과 우울증, 학대와 성 정체성 등 젊은 세대가 맞닥뜨린 문제들을 드러낸다. “무용 공연에서 이런 이슈를 다루면 놀라더군요. 영화나 드라마, 연극에선 흔하게 다루는 소재인데도 말이죠.” 그는 “고전 작품에서도 현대적이고 심각한 주제를 정직하게 다루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줄리엣은 내면의 악마와 싸우는 강인한 여성이죠. 별난 성격에 경험이 부족한 로미오, 동성 커플, 감정적 깊이가 있는 악당도 나와요.” 그는 “추하고, 유혈이 낭자하고, 원초적인 이야기, 이전의 그 어떤 버전이나 원작보다 비극적 결말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에게 ‘현대적인 영화음악, 환상적인 댄스음악’으로 다가온 프로코피예프의 악보는 셰익스피어의 대본과도 같았다. 그는 “대사가 없는 스토리텔링 공연이라 오히려 셰익스피어를 들어내는 작업을 했다”며 “이 과정을 통해 더욱 과감하게 뉴 어드벤처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로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매튜 본은 2003년 첫 내한 이후 여덟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국내 관객 15만명 이상이 그의 작품을 관람했다.
맥밀란은 흔히 ‘드라마 발레의 완성자’로 불린다. 드라마 발레는 춤에 집중하는 고전 발레와 달리 스토리의 흐름,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중시한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65년 초연 당시 43회 커튼콜을 받으며 영국 로열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를 굳혔다. 지금껏 안무된 100여 버전 이상의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발레다. 국내에선 유니버설발레단이 2012년 처음 선보인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한국인 최초의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서희, 지난해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은 강미선이 줄리엣으로 나란히 출연해 눈길을 끈다.
극단 감동프로젝트는 22~26일 산울림 소극장에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더 클라운(the Clown∙광대)’를 무대에 올린다. 2명의 배우와 1명의 악사가 ‘극 중 극’ 형태로 풀어내는 이야기다. 배우 강나리와 서인권이 판소리처럼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독특한 무대다. ‘재창작’이라고 명시한 작가 임정은은 “광대들이 알고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가 로미오와 줄리엣일 것”이라며 “결국 사랑이 이긴다”고 말했다. 제24회 서울연극제 참가작이다. 컴퍼니우도 5~19일 대학로 열린극장에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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