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기자의 영화감]스필버그가 극찬한 찐 할리우드 맛… ‘스턴트맨’

이정우 기자 2024. 5. 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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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스턴트맨’
여성감독과 ‘썸’ 타던 스턴트맨
부상 뒤 ‘잠수이별’ 하지만 재회
실종된 주연 배우 찾아나섰다
위험천만한 상황 휘말리게 돼
그녀의 ‘데뷔작’ 위해 죽음 불사
액션·로맨스·코미디 ‘풀코스’
스필버그도 “너무 좋아” 극찬
스턴트맨 콜트(라이언 고슬링)와 영화감독 조디(에밀리 블런트)는 천신만고 끝에 악당들을 물리치고 촬영 현장에서 키스한다.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매주 영화는 개봉하고, 관객들은 영화관에 갈지 고민합니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어떤 얘길 믿을지 막막한 세상에서 영화 담당 기자가 살포시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립니다. ‘그 영화 보러 가, 말아’란 고민에 시사회에서 먼저 감 잡은 기자가 ‘감’ ‘안 감’으로 답을 제안해봅니다.

1일 개봉한 영화 ‘스턴트맨’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입니다. 위험한 상황에 놓인 선남선녀 백인 남녀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고 사랑에 골인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 경로를 벗어나질 않죠. 액션과 로맨스, 코미디를 버무려 극장에 있는 순간만큼은 현실의 어려움을 잊은 채 매 순간 즐거움(엔터테이닝)을 주려는 영화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뻔한 구식 영화로 보였을 이 할리우드 영화는 오늘날 영화 경향 덕분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최근 할리우드 대형 상업영화에서 반복됐던 클리셰 비틀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주의)’ 강조, 철학적 메시지, 세계관 구축이 하나도 없습니다.

훈훈한 외모의 백인 남녀 주인공과 주인공을 도와주는 친구는 전형적인 상남자 흑인 남성입니다. 흔한 동성애자, 동양인 캐릭터 하나 보이지 않죠. 시리즈물도 아닙니다. 라이언 고슬링과 에밀리 블런트, 두 할리우드 스타 배우를 위험하고 로맨틱한 상황에 던져 놓은 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객은 고민 없이 구경하면 됩니다. 영화 안에 액션의 카타르시스와 인간적인 뭉클함을 담아내며 꿈과 희망의 공장인 할리우드의 본질에 충실합니다.

◇위험하면서 로맨틱한 상황에 빠진 매력적인 남녀

주인공 콜트(라이언 고슬링)는 스턴트맨. 카메라 감독 조디(에밀리 블런트)와 썸을 타던 그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스턴트 촬영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해 허리가 부러집니다. 실의에 빠져 잠적한 그를 다시 영화 촬영 현장으로 부른 건 조디가 영화감독으로서 첫 영화를 찍게 됐다는 사실. 18개월 만에 만나게 된 콜트와 조디는 사랑의 갈등보다 더 큰 위기에 놓입니다. 주연 배우 톰(애런 테일러-존슨)이 실종돼 영화가 중단될 위기죠. 콜트는 조디의 첫 영화를 무사히 끝내기 위해 톰을 찾아 나서고, 위험에 빠진 그는 촬영장 밖 현실에서 실제 스턴트를 펼치게 됩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전형적입니다. 첫째, 티격태격 남녀의 갈등. 콜트가 18개월간 잠적함으로써 ‘잠수 이별’의 형태를 띠게 됐고, 조디는 다시 만난 콜트에게 원망과 반가움, 화남과 설렘이란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채 그를 갈구죠. 쉴새 없이 주고받는 둘의 티키타카는 고전 스크루볼 코미디를 연상케 합니다.

둘째, 절체절명의 위기. 영화감독 조디와 스턴트맨 콜트는 주연 배우 실종 상황에서 영화 촬영을 무사히 마쳐야 합니다. 콜트는 죽을 위기에 빠지죠. 스턴트맨인 콜트가 사랑하는 여자의 첫 영화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최고로 로맨틱한 스턴트가 펼쳐집니다.

셋째, 해피엔딩. 콜트와 조디는 힘을 합쳐 악당을 혼내줍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둘은 조디가 찍는 영화 속 영화에서 가장 멋있는 스턴트 장면을 완성하고 강렬하게 키스합니다.

◇영화 만들기와 스턴트맨에 대한 헌사

‘스턴트맨’의 차별지점은 콜트의 직업이 스턴트맨이고, 조디의 직업이 영화감독이며 둘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은 브래드 피트, 장클로드 반담(영화 속 강아지 이름은 장클로드) 등과 작업했던 실제 스턴트맨 출신입니다. ‘존 윅’ ‘불릿 트레인’ 등 강도 높은 액션 영화를 만들어왔죠. 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 스턴트와 스턴트맨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컴퓨터그래픽(CG)이 판치는 요즘 영화에서 사람이 몸으로 부딪힌 귀한 스턴트 장면이 많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 자동차가 8바퀴 반을 회전하며 가장 많은 회전을 한 자동차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어요. 크레디트에 영화 속 스턴트 장면이 들어가고, 스턴트맨들의 얼굴도 나오죠. 얼굴과 이름 없이 지나쳐갔던 모든 스턴트맨에 대한 헌사입니다.

콜트가 조디에게 매번 ‘따봉’을 하는 이유를 말하며 고백하는 장면은 스턴트맨의 절절한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스턴트맨)는 매번 따봉을 해. 괜찮다고 하는 거야. 그렇게 교육받아. 그런데 사실 우리도 아파. 그래도 괜찮다고 해. 그런데 떨어지고 나선 안 괜찮았어. 나도 다칠 수 있단 사실에 충격 받았어. 따봉할 수 없는, 안 괜찮은 나는 네 앞에 설 수 없었어.”

◇스필버그가 호평한 이유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마주친 라이언 고슬링을 안아주며 “영화가 너무 좋았다(I loved)”고 찬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스필버그는 할리우드의 대표적 상업영화 감독으로 블록버스터의 시조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필버그 사단인 로버트 저메키스(‘로맨싱 스톤’ ‘빽 투 더 퓨쳐’ ‘포레스트 검프’), 조 단테(‘그렘린’) 등은 1980∼1990년대 할리우드 상업영화를 풍미했죠. 그런 점에서 스필버그는 과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미덕을 고루 갖춘 이 영화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1990∼2000년대에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자란 30∼40대라면 반가울 순간이 적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콜트와 친구 댄이 언급하는 영화들-‘록키’ ‘라스트 모히칸’ ‘킬 빌’-뿐 아니라 영화의 흐름이나 장면들이 어렸을 적 영화를 많이 봤다면 반갑게 느껴질 소지가 많습니다. OST 역시 추억 상자입니다. 머라이어 케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D J 칼리드, 테일러 스위프트까지 저마다의 추억을 일깨워줍니다. 반면 10∼20대라면 예정된 경로로 달리는 쾌속 질주에 오히려 신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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