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둘러싼 ‘K-팝 권력투쟁’… “배임, 실제 손해 끼쳤느냐가 핵심”[Who, What, Why]

안진용 기자 2024. 5. 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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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하이브·어도어 대립
하이브 방시혁
“‘경영권 탈취’ 시도 문건 확인”
업무상 배임으로 어도어 고발
어도어 민희진
“하이브 공격?… 사담이었을 뿐
뉴진스 성공 따른 보상 있어야”
방시혁(왼쪽), 민희진.

국내 최대 K-팝 기획사인 하이브와 걸그룹 뉴진스를 보유한 산하 레이블 어도어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하이브는 어도어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며 지난달 22일 경영진을 상대로 감사권을 발동했고, 어도어 측은 하이브의 새 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를 표절해 피해를 봤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외신은 이를 “K-팝 권력 투쟁”이라 규정했고, 불과 나흘 만에 하이브의 시가총액은 1조 원가량 증발했다. 양측의 분쟁 속에 멀티 레이블 체제, 앨범 밀어내기와 수익성 포토카드 양산 등 K-팝의 어두운 단면까지 드러나는 모양새다.

■ K-팝 ‘멀티레이블 전략’ 타격

다양성 대신 몸집키우기만 급급
계열사 간 ‘카피’내홍까지 불러
앨범밀어내기·랜덤 포토카드 등
부적절한 팬덤 문화까지 화두로

■ 민희진 회견 후 움직이는 여론

사이다 발언에 직장인들 공감
실제론 작년 인센티브만 20억

■ 대립 이후 뉴진스 행보는

신곡·해외 활동 계획대로 진행
민대표 따라 이탈? “명분 없어”

◇하이브와 어도어의 관계는

하이브는 일종의 지주회사다. 이 안에 방탄소년단의 빅히트, 세븐틴의 플레디스, 르세라핌의 쏘스뮤직과 뉴진스의 어도어 등이 담겨 있다. 타 회사들은 인수한 계열사인 반면 어도어는 2021년 하이브가 자본금 161억 원을 출자해 만든 100% 자회사다. 당초 하이브가 100% 지분을 갖고 있었으나 2023년 말 현재 하이브 지분은 80%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해 콜옵션(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해 어도어 지분을 매입, 하이브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현재는 18%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 구조로 따지자면 어도어의 실질적인 주인은 하이브라 할 수 있고, 어도어의 주요 자산인 뉴진스에 대한 지배적 권리 역시 하이브가 갖고 있다.

◇이 다툼의 본질은 무엇인가

당초 하이브는 ‘경영권 찬탈 시도’를, 민 대표는 ‘뉴진스 콘셉트 카피’를 앞세웠다. 하지만 K-팝 그룹의 콘셉트 도용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범위이기 때문에 현재는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주된 쟁점이 되고 있다. 이에 하이브는 지난달 25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어도어를 고발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하이브와 민 대표 간 ‘주주 간 계약’이 주된 갈등의 원인으로 손꼽힌다. 하이브는 지난해 말부터 민 대표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주주 간 계약을 수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이는 민 대표가 지분 가치를 높여 경영권을 탈취하기 위한 포석이라 보고 있다. 반면 민 대표는 뉴진스 성공에 따른 정당한 보상 요구였다는 입장이다.

가요계에 따르면 민 대표 측은 어도어 주식 가운데 풋백옵션(지정된 가격에 지분을 되팔 권리)상 배수를 기존 13배에서 30배로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는 풋백옵션 변경 요구는 어느 정도 수용했지만, 30배 배수 적용은 거절했다. 이런 다툼 과정에서 민 대표가 카피 의혹을 제기했고, 하이브는 그 배경을 파악하다가 경영권 탈취 시도를 알게 됐다는 주장이다.

◇‘경영권 찬탈 시도’는 근거가 있는 주장인가

하이브는 지난달 25일 “어도어 민희진 대표이사 주도로 경영권 탈취 계획이 수립됐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물증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하이브가 공개한 대화록을 보면 △2025년 1월 2일에 풋옵션 행사 △권리침해소송 제기 △재무적 투자자 구함 △캐시 아웃한 돈으로 어도어 지분 취득 등 구체적 행동 계획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5월 여론전 준비’ ‘어도어를 빈껍데기로 만들어서 데리고 나간다’ 등의 대화가 오갔다.

이에 대해 민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사담이었다”고, 동석한 변호사는 “그냥 적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사담인지 공적 대화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전체 대화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법조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업무상 배임은 예비나 음모 단계에서 처벌하긴 어렵다. 실제 실행 여부와 이로 인해 민 대표가 법인인 어도어에 손해를 끼쳤는지가 핵심이다. 다만 하이브가 물증과 이를 인정한 어도어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하고 있고, 민 대표가 계약서를 유출했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하이브 사옥.

◇민희진 대표는 누구인가

이번 분쟁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뉴진스 엄마’를 자처하는 민 대표다. 민 대표는 지난 2002년 S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뒤 여러 K-팝 그룹의 콘셉트와 브랜드 메이킹을 담당했다. 소녀시대의 스키니진, 엑소의 교복 콘셉트 등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SM 등기이사로 승진했으나 퇴사 후 하이브에 입사했다. 2021년에는 어도어 설립 후 뉴진스를 데뷔시켰다. 당초 그의 직함은 CBO(Chief Brand Officer)였다.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하는 프로듀서는 아니다. 그가 아일릿의 뉴진스 콘셉트 도용을 문제 삼은 것은 결국 그의 본질적인 업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 후 왜 여론이 움직였나

“기자회견 후 민희진 대표를 이해하게 됐다”는 의견이 적잖다. 민 대표가 뉴진스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고, 공개된 대화록에서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박지원 하이브 대표가 민 대표를 견제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인 것이 민심을 자극했다. 이에 민 대표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개저씨(개+아저씨)들이 날 죽이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지×’ ‘시×××’ 등 평소에도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내뱉었고, 생중계인 관계로 이는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하지만 상식 밖 행동을 한 그에게 “걸 크러시하다” “사이다(속 시원하다)”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각종 혐오와 증오 발언에 일부 대중이 열광하는 기현상이다.

그 근저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결과물이 회사로 귀속되는 상황에 대한 샐러리맨들의 애환과 공감이 자리 잡고 있다. 몸 바쳐 일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박봉이라는 자괴감이 “오죽했으면 내가 이러겠냐”는 민 대표의 외침과 맞닿았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민 대표는 ‘샐러리맨’이 아니라 2021년 기준 연봉이 5억 원이 넘는 ‘대표’다. 그해 5억2600만 원을 수령했다. 이는 그가 ‘개저씨’라 지목한 박 하이브 대표의 같은 해 연봉(5억900만 원)보다 많다. 뉴진스가 나오기 전 이미 ‘최고 대우’였던 셈이다. 2023년에는 연봉을 제외한 인센티브만 20억 원이 넘는다. 그리고 하이브는 그에게 어도어 지분 18%를 줬다. 현재 그 가치는 1000억 원이 넘는다.

◇‘아일릿의 뉴진스 베끼기 주장’은 근거가 있나

실제 아일릿의 몇몇 의상이나 콘셉트 사진, 미장센은 뉴진스와 겹친다. 하지만 뉴진스 성공 이후 그들을 벤치마킹한 걸그룹은 적잖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뉴진스의 ‘소녀다움’과 ‘청순’ 콘셉트는 앞서 원조 걸그룹 SES나 소녀시대가 시도했다. 즉 ‘아이디어나 콘셉트가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표절로 보긴 어렵다는 게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입장이다.

데뷔 시절 뉴진스 역시 표절 논란이 있었다. 실제 영화 ‘무스탕:랄리의 여름’(2016)의 몇몇 장면, 일본 걸그룹 스피드의 콘셉트와 겹친다. 하지만 이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콘셉트로 용인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 때문에 민 대표가 한솥밥을 먹고 있는 후배 걸그룹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적잖았다. 찍어낸 듯한 ‘공장형 K-팝 그룹’이 양산되는 실태 속에서 민 대표의 지적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하지만 하이브와 어도어 간 분쟁의 본질로 보기는 어렵다.

뉴진스

◇향후 뉴진스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

뉴진스는 하이브와 어도어의 다툼 속 지난달 27일 신곡 ‘버블 검’(Bubble Gum)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나흘 만인 1일 누적 조회수는 1700만 회를 돌파했다. 하이브 레이블즈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 뮤직비디오에는 8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다양한 언어로 작성된 댓글 대부분이 뉴진스를 격려하고 있다. 오는 5월 신곡 발표와 국내 활동 재개, 6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팬미팅도 차질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30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 소집허가 신청 심문에 참석한 어도어 측은 “10일까지 이사회, 5월 말까지 주총을 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6월 예정된 임시주총에서 민 대표가 해임되면 향후 뉴진스의 행보에도 난관이 예상된다. 민 대표가 ‘뉴진스 엄마’라 불릴 만큼 뉴진스와 정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도어와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뉴진스가 민 대표를 따라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경우 뉴진스가 ‘신뢰 관계 파탄’을 이유로 어도어와 하이브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뉴진스가 확실한 명분 없이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할 경우 일반 대중을 비롯해 팬덤까지 등 돌릴 수 있다.

◇이번 사태가 향후 K-팝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영권 찬탈 시도 여부와 별개로 하이브와 어도어의 대립은 몇 가지 K-팝 시장의 고질병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미국 CNBC는 “여러 독립 레이블을 보유하고 있는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전략’이 타격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하이브는 각 레이블의 독립 운영을 보장하며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다양성’은 추구하지 못했다. 죄다 아이돌 가수들을 앞세운 퍼포먼스형 K-팝 그룹을 양산하고 있다. 즉 같은 장르에 집중하다 보니 뉴진스 콘셉트 카피와 같은 내홍이 불거졌고, 소비층이 겹쳐 시장의 확장성 한계에 직면했다. 하이브라는 우산 아래 한솥밥을 먹는다지만 민 대표는 사실상 하이브 내 다른 계열사를 ‘경쟁 대상’으로 보고 있다.

내실 없이 덩치를 키우는 데 집중하면서 발생한 앨범 밀어내기(중간 판매상이 앨범을 대규모로 구매한 뒤 팬사인회 등을 통해 소화하는 방식), 포토카드 랜덤 지급 등을 지적한 민 대표의 문제 제기도 타당하다. CD로 음악을 듣지 않는 시대인데 K-팝 팬들은 팬사인회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앨범을 잔뜩 사고 이는 ‘예쁜 쓰레기’로 전락한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하이브와 어도어 간 마찰로 촉발됐지만, K-팝 시장이 시한폭탄처럼 품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뇌관이 됐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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