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귀엽고 사랑스러운 수사반장의 탄생

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2024. 5. 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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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사진=MBC

MBC 금토극 '수사반장 1958'(극본 김영신, 연출 김성훈)이 지난 27일 4회까지 인기리에 방송됐다. 첫회 시청률 10.1%로 시작해 단번에 관심을 끌어모은 후 2회 7.8%, 3회 10.8%, 4회 7.1%를 기록했다. 10%대의 금요일 시청률에 비해 토요일의 7%대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근래 보기 드문 두 자릿수 시청률이다. 토요일에는 최근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탓일 수 있다. 토일극인 '눈물의 여왕'은 '수사반장 1958' 4회가 방송되던 27일 토요일의 시청률이 무려 21.1%에 달했다. 그러나 28일을 끝으로 16부작이 마무리됐으니 앞으로는 '수사반장 1958'에 더 많은 시청자들이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눈물의 여왕'처럼 트렌디한 드라마가 대세인 가운데서도 레트로(복고풍) 스타일의 '수사반장 1958'이 약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원작 드라마가 '수사반장'이 지닌 전통과 휴머니즘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이제훈을 비롯한 젊은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워 새로움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수사극의 '끝판왕'을 경험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시리즈를 거듭하고 있는 '미드(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다. 이 시리즈를 계기로 전 세계 수사극의 패턴은 완전히 변했고, 시청자의 눈높이는 달라졌다. 과학적 증거와 알리바이, 첨단 수사기법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됐다. 시청자들은 멋진 형사들이 정확한 증거에 근거해 두뇌 플레이로 진짜 범인을 잡아내는 과정을 보면서 재미와 스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직감과 탐문에 의존해 범인을 검거하는 아날로그식 수사극은 자취를 감췄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방송된 원작 '수사반장'은 그런 아날로그 탐문 수사극의 전형이었다. 최불암, 김상순, 조경환, 김호정(나중에 남성훈) 등 지금은 최불암을 제외하곤 모두 고인이 된 배우들이 한 팀을 이뤄 출연했다. '수사실화극'이라는 부제답게 당시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파생한 사회적 부조리를 실감 나게 파헤쳤다. 당시의 수사 도구라고 해봤자 손에 든 메모 수첩이 전부였지만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형사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밤낮으로 범인을 추격해 검거해내는 모습에서 집념의 '인간 승리'를 대리 체험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사반장'이 우리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은 데에는 수사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휴머니즘에 있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며 범죄자에게 국밥을 사주던 최불암 반장의 따뜻함 말이다.

'수사반장 1958'은 이같은 원작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메시지를 충실히 계승했다. 아니, 훨씬 더 아날로그적이라 할 수 있는 1958년으로 시곗바늘을 되돌려 복고를 자극했다. 1958년은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시대다. 6·25 전쟁의 상흔이 채 씻기지 않은 채 사회적 시스템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던 시기다. 당연히 '엉뚱하면서 구수한' 스토리가 많다. 20대의 열혈형사 박영한(이제훈)은 경기 황천에서 소도둑 검거율 1위의 실력으로 서울 종남 경찰서에 발탁된 입지전적 인물. 깡패들을 잡기 위해 그들이 모인 곳에 독사를 풀고, 거지로 변장해 도박판에 잠입한다. 지금 볼 때는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설프지만 그 안에는 아날로그적 진정성과 인간애가 깊이 서려 있다.

은행 강도를 잡는 3회, 영아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4회에서도 휴머니즘이 빛난다. 총을 든 은행 강도와 대치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연인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영아 실종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는 김상순(이동휘) 형사의 아픈 과거가 드러난다. 빈틈없는 과학 수사로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해 범인을 굴복시키는 요즘의 수사극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래도 밉지 않고, 싫지 않다. 사실적인 시대 고증에, 스케일의 차이만 있을 뿐 다이내믹한 활극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진=MBC

아울러 오래된 옛이야기를, 20대의 젊은 형사들이 주축이 되어 풀어가는 모습도 신선하고 흥미진진하다. 쌀집 일꾼에서 경찰이 된 조경환(최우성)은 힘이 장사지만 마음이 비단결이다. '미친 개' 김상순은 안 되면 그냥 물어뜯는 사고뭉치. 그러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은 누구보다 투철하다. 서호정(윤현수)은 대학 출신의 엘리트 형사. 그러나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티도 못 내는 '소년미'의 소유자다. 

무엇보다 박영한 반장 이제훈은 최불암을 대신하고 있으나 최불암 특유의 묵직한 이미지를 가뿐히 초월한다. 우선 강력계 형사의 상투적 스타일이나, 1958년의 고전적 시대상을 깨는 부드러운 외모를 지녔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대사도 기존의 퍽퍽한 경찰과는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액션 장면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고 강하다.

사랑스러우면서도 강력하고, 예리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이제훈 표 형사 캐릭터는 사실 그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선보였다. 영화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2016)의 겁 없는 히어로 홍길동, SBS 드라마 '모범택시1, 2'(2021, 2023)의 '심판자' 김도기 등은 이제훈의 매력이 반짝였던 인물들이다. '수사반장 1958'의 이제훈은 이런 캐릭터들을 혼합해서 장점을 뽑아낸 종합판 같다. 이렇게 모인 4명은 '수사반장'의 어벤져스이고 판타스틱4다.

사진=MBC

'수사반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타이틀 뮤직.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빠바바바밤∼빠바바바밤∼'의 멜로디는 너무나 강렬해서 시청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도 이를 영화에 활용했다. '살인의 추억'(2003)에서 '수사반장'의 시그널 음악을 들려주며 시골형사 송강호가 감탄하는 장면으로 오마주했다. 

'수사반장 1958'에는 비투비 서은광이 부른 '지피지기 백전백승'이 OST로 흐른다. 제법 신나고 재미있는 노래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은 '빠바바바밤∼' 대신 새로운 시그널 뮤직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제훈은 따뜻하고 진중한 최불암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이제 10회까지 6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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