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배우 실업난, 그래도 희망은 있다!

윤혜진 객원기자 2024. 5. 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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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업계 상황이 좋지 않다. 방송국, 드라마 제작사, 매니지먼트사 등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나온다. 다 만들어놓고도 방송사 편성을 받지 못하는 작품이 쌓이다 보니 “이러다 다 죽어” 소리가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드라마 제작 편수가 크게 줄고, 투자와 편성이 여의치 않아 추진 중이던 작품이 엎어지는 경우도 흔해졌다. 배우들의 예능나들이가 잦아진 이유다.
드라마를 보려고 '칼퇴’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지금은 방송사마다 드라마 편성을 축소하고 있다. 전설의 '김치 싸대기’ 장면을 남긴 도파민 범벅 아침 드라마를 방영 중인 방송사는 현재 한 곳도 없고, 50% 육박하는 시청률로 잘나가던 100부작대 주말드라마도 시청률이 반토막 나면서 50부작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각 방송사와 OTT에서 공개된 작품 수가 2022년 141편에서 2023년에는 123편으로 줄었고 올해는 100여 편에 머물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 만들어놓고도 편성을 받지 못해 묵혀둔 작품이 쌓이고 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올 초까지 협회에서 파악한 미편성 드라마는 27편. 배대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총장은 "협회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한 작품까지 아우르면 대략 30여 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방송사는 왜 드라마 편성을 줄이고 있을까. 일단 덜 보니까 덜 편성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최근 '콘텐츠 이용 동기와 선호 장르’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국민은 영화·드라마는 OTT, 예능·연예·뉴스는 지상파 방송을 포함한 TV에서 주로 소비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과거와 달리 지상파 드라마는 10%대 초반의 시청률만 나와도 '대박’으로 여겨진다. 최근 일본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는 등 대박 작품으로 꼽히는 tvN '눈물의 여왕’도 4월 13일 기준 전국 가구 평균 시청률이 16.8%, 최고 18.2%였다.

한정된 방송사 예산과 치솟는 드라마 제작비

드라마 시청률이 예전만 못하다. ‘눈물의 여왕’만 해도 김수현의 기존 히트작인 ‘해를 품은 달’ 20부 평균 시청률 33.02%, ‘별에서 온 그대’ 21부 평균 24%에는 못 미친다.
다만 떨어진 시청률이 편성을 줄이는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속을 파고들면 역시 문제는 돈이다. 방송사에서 드라마에 쏟아부을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드라마 한 편당 제작비는 껑충 뛰었다. 예전에는 방송사에서 드라마 제작비의 절반 정도를 방영료로 지원하더라도 드라마 방영 시간 앞뒤의 광고 수익으로 충분히 이익이 났으나, 광고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요즘 방송국 입장에서는 드라마 편성 자체가 모험에 가깝다. 톱스타나 네임 밸류가 있는 작가의 작품을 편성하면 그나마 실패 확률은 줄지만, 그만큼 더 큰 제작비를 감수해야 한다.

만약 톱스타 주인공의 출연료가 회당 수억 원이라면 제작비는 더 오른다. 방송가에서는 출연료를 올린 주요 요인으로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OTT 오리지널 시리즈의 등장을 꼽는다. OTT를 오가며 오른 출연료가 지상파 방송국 드라마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조연급 배우 출연료도 마찬가지다.

한편 고액 출연료 외에도 제작비 상승 요인이 복합적이란 시각도 있다. 현재 드라마 1회당 제작비는 평균 10억 원 이상이다. 배대식 사무총장은 "출연료가 차지하는 포지션이 크지만 스태프 인건비와 후반 작업 비용도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다음은 배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16부작을 촬영할 때 100~120일 정도 걸렸다면,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이제는 거의 180일 정도 촬영해야 합니다. 스태프 인건비는 보통 일당제라 그만큼 제작비가 오를 수밖에 없죠. 또 요즘은 작품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후반 작업에도 공을 많이 들이는 추세예요. 결국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래저래 회당 15억 원을 넘긴다면 광고 외 OTT 방영권 판매, 온라인 유통권 등으론 리쿱(recoup·제작비 전체 회수를 뜻하는 업계 용어)이 힘들다고 봐야죠."

제작비가 오르면 예산이 한정된 방송국에서는 제작사에 지불하는 방영료를 줄이거나 아예 편성을 안 하는 식으로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방송국 편성을 받는 것이 어려워지면 드라마 제작사에서도 제작을 줄이게 된다. 이는 곧 배우의 실직으로 이어진다. 최근 이장우, 한예슬, 김지석 등이 자체 유튜브 채널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출연할 드라마가 없다고 푸념했다. 신인과 주조연급 연기자가 소속된 한 기획사 관계자는 "이름이 알려져 있으면 드라마 외에도 불러주는 곳이 있긴 한데 그마저도 예전만큼은 아니다. 다 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특히 신인 배우는 심각하다. OTT 작품이 그나마 신인을 쓰지만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최근 여러 스타가 브라운관을 벗어나 다양한 루트를 모색 중이다. 전도연은 27년 만에 6월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벚꽃동산’에 출연하고, 유연석과 조정석은 뮤지컬 '헤드윅’ 무대에 각각 8년, 7년 만에 다시 오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평소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을 볼 수 있어 관객이나 티켓 파워를 기대하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스타 배우들이 캐스팅되는 만큼 연극이나 뮤지컬을 전문으로 하는 배우에게는 무대에 설 기회가 줄어들고, 누군가는 또 일자리를 잃는다. 장르를 옮긴 악순환이다.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도 놀고 있긴 마찬가지다. 심지어 새 작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미 참여한 작품의 임금 미지급 케이스가 늘고 있다. 영화인신문고에서 밝힌 지난해 접수된 드라마 제작 스태프의 임금 체불 피해 건수는 192건으로, 연간 평균치인 72건의 2.6배 수준이다. 특히 2022년에는 OTT 공개를 목표로 제작된 드라마 관련 피해가 없었는데 지난해 76건으로 급증한 것을 보면 편성을 받지 못한 제작사에서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해 지급하지 못한 상황으로 풀이된다.

IP 있어야 돈 버는 제작사, 선제작 포기 못 하는 이유

미국 유명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평론가 점수 최고점인 100점을 기록 중인 ‘기생수: 더 그레이’.
뫼비우스 띠와 같다. 애초에 드라마 제작사에서 선제작을 안 했더라면 미편성 작품 수를 줄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자체 IP를 확보해야 돈을 번다. 초기 제작 비용이 고스란히 드라마 제작사의 몫이 되지만, IP를 갖고 있어야 OTT 판매, 해외 유통 등으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K-드라마의 위상은 올라갔지만 가장 돈을 많이 번 건 결국 넷플릭스이듯이 말이다.

선제작은 포기할 수 없고, 방송사는 막혔고 상황은 암담하지만 그래도 살길은 있다. 보통 국내 편성 후 검증된 작품들만 해외 유통이 되는데 국내 편성 없이도 사가는 경우가 없진 않다. 해외 수요가 있는 인물이 출연하거나 내용이 재미있거나다. BTS의 앨범 '화양연화’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 '비긴즈유스(Begins≠Youth)’의 경우 현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초록뱀미디어와 하이브가 공동 제작하고 핑거랩스가 협업한 이 작품은 실제 아티스트와는 별개의 서사를 가진 2차 창작 콘텐츠로 일곱 소년의 학창 시절과 성장 과정을 총 12회에 담았다. 무엇보다 기존 OTT를 벗어나 핑거랩스가 개발하고 초록뱀미디어와 협업해 구현한 플랫폼, 엑스클루시브(Xclusive)에서만 독점 판매한다. 4월 한 달간 시청권 사전 판매를 했으며 5월 1주차 본격적인 시청권 판매에 돌입한다.

결국 정공법이다.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 연상호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는 역대 최대 제작비인 1억6000만 달러(약 2153억 원)를 투입한 대작 '삼체’를 누르고 인기를 얻어 화제다. 배대식 사무총장은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글로벌 OTT 인기 순위에 한국 작품이 꾸준하게 한두 편씩은 꼭 껴 있지 않느냐"며 "드라마의 원천 소스로 각광받는 웹툰 시장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단숨에 풀릴 실타래는 아니지만 결국은 우리의 기획과 제작 능력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눈물의여왕 #기생수 #Begins≠Youth #여성동아

사진 출처 tvN·넷플릭스 SNS, '배우반상회’ 유튜브 캡쳐

윤혜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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