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좌절의 시대, 장강명이 말하는 읽고 쓰는 삶

김영화 기자 2024. 5. 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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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는 지난 8년간 세상이 퇴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고 말한다.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을 만들었고, 동료 작가들과 의기투합해 ‘월급 사실주의’ 문학 동인을 꾸렸다. 그는 왜 읽고 쓰는 삶을 지속할까.

녹음 버튼을 누르자 장강명 작가가 말했다. “저도 ‘클로바 노트’ 많이 써요.”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AI 서비스로, 녹취할 일이 많은 기자들이 자주 쓴다. 그에게도 지난해 말부터 열중하고 있는 취재가 있었다. AI에 관한 논픽션을 쓰기 위해 전현직 바둑 기사 30여 명을 인터뷰했다. 알파고 대전이 8년 전 일이다. “AI 기자나 AI 소설가가 나오면 곧 언론계, 문학계 종사자들이 아노미를 느낄 텐데, 그런 일이 바둑계에 먼저 있었던 거잖아요. 바둑기사들은 그때 무엇을 느꼈고, 바둑 두는 법은 어떻게 바뀌었나 알고 싶었어요.” 저널리즘과 문학을 오가는 작가로서 피할 수 없는 주제다. 여러 전작처럼 방대한 자료조사와 밀착 취재가 바탕이 될 예정이다.

알파고로 온 세상이 떠들썩했던 그해, 어쩌다 보니 신문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8년간 세상이 퇴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고 그는 〈미세 좌절의 시대〉에서 밝힌다. 지금까지 쓴 칼럼 90여 편을 추려 책으로 냈다. 한국 정치부터 독서 문화까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글이 적지 않다. 날 선 비판만 한 건 아니다. ‘내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모른다’는 문제 제기는 도서 판매량과 재고를 파악할 수 있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 구축으로 이어졌고, 〈당선, 합격, 계급〉에서 문학 공모전의 모순을 고발한 후로 아내와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을 만들었다. 독자 중심의 독서 공동체가 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뜻 맞는 동료 작가들과 의기투합해 ‘월급 사실주의’ 문학 동인을 꾸렸다. 일단 모이면 바뀐다는 생각이다.

데뷔 13년 차, 장강명 작가는 ‘기자 출신 작가’라는 호칭이 좋다고 했다. 드라마·영화 업계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고, 영화 〈댓글부대〉도 최근 개봉했다. 소설 여섯 편이 영화·드라마 판권 계약을 맺었다. 정작 당사자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나는 글자를 좋아한다. (활자 덕후로서) 멸종하고 있다.” 문학과 저널리즘의 쓸모가 계속해서 질문받는 시대에 작가로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장강명은 왜 읽고 쓰는 삶을 지속하는가. 4월9일 서울 강남구에서 그를 만났다.

4월9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장강명 작가. ⓒ시사IN 박미소

원래 영화를 잘 안 본다고?

그렇다. 내 소설로 영화가 나온다고 하니 좀 창피하기도 하고(웃음).

활자보단 영상이 인기인 시대다. OTT 환경에서 어떤 소설을 쓸 것인가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실 IP 판매가 돈이 크니까 신경이 쓰인다. 게다가 소설 쓰는 기간이 길다 보니 ‘이게 영화화가 될까’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웃음). 확실히 소설가에게 시나리오를 맡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친한 작가들이 영화 시나리오를 많이 쓰고 있고 나에게도 여러 제안이 들어온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써달라거나 아예 처음부터 누구 감독과 이 아이템을 가지고 같이 써보자고. 작가 구상 단계에서부터 영상화하기 좋게 작업하는 흐름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 같다.

수락한 제안이 있나?

다 거절했다. 사실 그중엔 꽤 매력적인 제안도 있었고, 일단 목돈이 들어오니까 고민을 오래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하면 거기에 묶여 있게 되겠더라. 영화도 잘 안 보는데 무슨 시나리오인가 싶기도 하고. 제일 큰 이유는, 영화 시나리오는 결국 투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고쳐야 할 텐데, 별로 내키지 않았다. 온전히 내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글자가 좋다.

활자 매체 종사자로서 반가운 말이다.

그래서 멸종하고 있다(웃음). 개인적으로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 리스트가 있는데, 그게 다 소설이지 영상이 떠오르는 작품이 아니다. 〈악령〉 〈블랙 달리아〉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같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소설을 쓰는 것이지 영화가 아니다. 나중에 돈이 없으면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몇 년간 세상이 퇴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미세 좌절의 시대〉에 썼다. 사회파 작가로서 진단하는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가?

사람들은 매일매일이 좌절스럽고 모욕당하는 것 같은데, 그 원인을 명확히 짚어낼 수 없기에 더 무력한 것 같다. 그때 ‘저놈들이 문제다’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불만과 좌절의 에너지를 흡수한다. 나의 불행은 친일파와 검찰 때문이라고, 혹은 586과 종북좌파 때문이라면서. 서로를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미워하는데, 바깥에서 보면 어쩐지 다 꼭두각시 같은 느낌이다. 종북좌파건 친일파건 윤석열이건 이재명이건 진짜 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진짜 적’이 있나?

있는 것 같다. 20대 즈음엔 적이 없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표백〉에서 ‘자기 적을 알아야 자신을 알 수 있다’는 새뮤얼 헌팅턴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고. 그런데 요즘은 적이 생겨서 아주 좋다. 바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스마트폰 등 미디어를 둘러싼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

미디어를 둘러싼 모든 것?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안 읽힌다. 사람들이 온라인 환경에서 그 기사를 클릭할 확률이 구조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한국기자협회에서 2021년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읽힌 뉴스 50위를 꼽았는데 그중에 정치 기사는 하나도 없다. 연예인이 이혼 후 자연인이 되었다는 방송 예고 기사를 포함해 대부분 연예인 관련 논란이거나 온라인 커뮤니티발 기사다. 이건 ‘활자 매체’로 비롯한 문제가 아니다. 글을 읽기는 하는데 진지한 글을 읽지 않는 거다.

활자 매체가 몰락하고 있다는 진단이 어쩌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겠다.

스마트폰이라는 디바이스, 뉴스 유통 플랫폼이 뉴스를 보여주는 방식, 그 구조에 적응해서 어뷰징 뉴스를 양산하는 미디어들이 삼위일체가 되어서 이런 퇴행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짜인 구조 안에서 ‘저놈들이 문제다’ 하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성 발언은 쉽게 퍼지는데, 선거구제를 어떻게 개편해야 하는지 궁리하는 기사는 독자에게 제대로 도달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적이 생겨서 기쁘다. 아마 내가 평생 타도하려고 해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의 의미가 죽을 때까지 있을 것 같다(웃음).

장강명 작가가 아내와 만든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의 한 페이지.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을 시작한 것도 그 적과 싸우기 위해서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9월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했고 나는 거기에 이름만 올렸다. 처음에는 사이트를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찾아와 책 이야기를 할까, 걱정이 되었다. “안될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그랬더니 아내가 자기는 세 사람만 구원해도 후회는 없겠다고 하더라.

얼마 전 회원 수가 1만명을 넘었는데.

그 흔한 커피 기프티콘 한 장 뿌리지 않았는데도 독서 모임 1000여 개가 자발적으로 생겼다. 요즘 ‘벽돌책 읽기 모임’ 같은 걸 열면 신청자가 꽤 많다. 출판사에서 많이 물어들 본다. 이런 독자들을 어떻게 모았느냐고.

인맥을 쌓거나 친목을 도모하는 오프라인 모임도 아닌데 사람들이 꾸준히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책 읽는 사람들이 책에 대해 이야기할 공간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 서점이나 도서관이 있지만 해외에 사는 독자, 일터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독자는 참여하기가 어렵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은 주로 그 출판사의 신간을 다루게 된다. 구독형 전자책 독자, 종이책 독자가 뿔뿔이 흩어져 있다. 사람 행동에 전염성이 있다고 보는데, 뭘 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걸 따라 할 확률이 높아진다. 예전에 살던 집 근처에 호수공원이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활동하는 ‘러닝 크루’가 많더라. 스무 명씩 줄지어서 우르르 “지나갑니다!” 하며 뛰는데 처음엔 낯설다가 자주 보니 좋아 보이더라. 같이 뛰면 각오를 더 다지게 되고 스트레스도 건전하게 풀게 된다. 러닝 크루가 많아지면 그만큼 세상이 좋아질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모여서 같이 읽는 ‘리딩 크루’가 늘어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창작자로서 독서 생태계를 확장해가려는 행보가 인상적이다.

꼭 그렇지도 않다. ‘그믐’이 유일한 시도가 아니라서다. 불과 몇 년 전 김연수, 정지돈, 금정연 작가 등이 ‘소설리스트’라는 소설 리뷰 사이트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당선, 합격, 계급〉에도 썼지만 독자 입장에서 이 책이 내가 읽을 만한 책인지 정보가 정말 빈약하다. 누가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겠다는 니즈(욕구)가 늘 있는 것이다. 박서련 작가가 운영진으로 있는 문학 플랫폼 ‘던전’과 박상우 작가가 만든 소설 창작 커뮤니티 ‘B612’도 있다.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도 무협소설 작가인 금강이 만든 것이다. 출판계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책 생태계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 <댓글부대>의 한 장면. 장강명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지난해부터 독서·출판 지원 예산이 크게 삭감되어 논란이다. 그동안 문학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자는 식’이었다고 비판해왔는데.

기본적인 입장은 그대로다. 물론 동네 서점이나 작은 출판사들을 생각하면 지원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문학이 정부 지원에 기대는 것에는 문제의식이 있다. 시니컬하게 이야기하면, 문학이 국가권력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의 문인들이 들으면 굉장히 분노할 이야기다. 문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문학진흥법 취지를 보면, 한류의 기반이 되는 게 텍스트이기 때문에 정부가 문학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더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초 콘텐츠 산업이니 문학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가 온당한가?

출판이 K콘텐츠의 뿌리라는 말도 있는데.

그 논리대로라면 문단문학 작가들은 지원하면 안 된다. 웹소설과 웹툰 작가를 지원해야 한다. 절대 영화화되지 않을 단편을 쓰는 작가도 있다. 윤석열 정부와 마포구청장처럼 예산을 자르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지원이 너무 절박하다 보니 나오는 얘기겠지만, 지원해주지 않으면 굶어죽는다는 문학계 언어를 볼 때마다 착잡해진다.

‘월급 사실주의’ 동인을 만들면서 문학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 있는 문학’이 줄어든 게 아닌가 질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매일매일 노동하면서 좌절스러운데 그런 현실을 치밀하게 다루는 소설이 드물다. 1980년대 참여문학, 민중문학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사소설에 가까운 작품이 많이 나온다. 한국 문학이 다루는 폭이 너무 좁다는 문제의식이다. 작가들의 삶과 영향이 있을 텐데 주인공들이 대부분 작가나 편집자다. 자영업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문학 동인을 만들었나?

노동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조명이 잘 안 된다. 아까 말한 러닝 크루들처럼 모이면 서로 북돋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산 자들〉을 쓰고, 원로 문인 중에서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노동자 편을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1980년대 리얼리즘 감각으로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싸우는 세계가 있고 자본가는 타도해야 할 대상인데, 〈산 자들〉을 보면 별로 그렇지 않다. 책 속에 나오는 사장님들은 각자의 고단한 사정이 있다. 원로 문인의 평을 듣고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 문학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작가들 섭외할 때도 ‘우리는 옛날 1980년대식 투쟁이 아니다’ ‘민중문학과 거리를 둔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민중문학 작가들의 정신이 월급 사실주의에 그대로 있다고 생각한다.

〈산 자들〉 때부터 자영업자, 비정규직 문제 등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한 평론가가 현실을 현실 그대로만 보여주는 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느냐고 비판하더라.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의 힘을 모르는구나 생각했다. 이를테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알게 되고 반전주의자가 된다. 여성의 삶을 다룬 소설을 읽고 나서 차별을 인식하게 된다. 모든 작가가 리얼리즘 소설을 쓸 필요는 없지만, 현실을 보여주는 문학이 없는 시대가 되면 정말 불행해질 것이다.

기자에서 소설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논픽션을 쓴다. 문학과 다른 저널리즘의 효용은 무엇이라고 보나?

저널리즘과 문학은 나에게 좋은 도구다. 내가 배운 구식 저널리즘은 파워풀하다. ‘여기 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팩트다’라는 사실이 주는 힘이 있지 않나. 다만 구식 저널리즘은 사람의 내면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내 마음이 슬프다’고 말했다”라고 써야 하지, “그 사람은 슬펐다”라고 쓰면 안 된다고 혼나면서 배웠다. 물론 내러티브를 강조하는 뉴저널리즘도 각광받고 있지만, 여전히 사실에 기반해 쓰기 때문에 힘이 생기는 거라고 본다.

소설을 쓸 때는 다른가?

기사를 쓸 때는 “그때 기분이 어땠나?”보다는 “그 일이 몇 시에, 어디에서 일어났나?”라고 묻는다. 나는 사람이 느끼는 고통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건 내가 배운 구식 저널리즘으로는 소화할 수 없다. 사람들이 대부분 막연하게 그냥 슬펐다고 말하는데, 소설에서는 그 복잡한 내면을 폭넓게 묘사할 수 있다. 소설은 할 수 있지만 저널리즘은 못하는 것이다.

멸종한다고 자조했지만 글자의 힘을 누구보다 믿는 답변이다.

자주 하는 비유인데, 같이 일하는 사이에서도 상대가 어떤 고통이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어떤 인물이 겪은 고통 때문에 마음이 한없이 뭉클해지곤 한다. 그것이 글자의 힘 아닐까.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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