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박연준 “낮은 언덕에 영혼을 심고 작은 것에만 복무한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4. 5. 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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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피로해졌다. 혼자 있어도 스마트폰만 열면 SNS나 인스타그램, 포털을 통해 세계 어디로든 연결이 된다. 지나치게 세상과 연결이 된다. 도무지 혼자가 될 수 없다. 삶의 피로는 점점 심해갔다.

어느 날 스마트폰 사용을 전격 중단했다. 처음에는 금단 증상이 나타났다. 자꾸 스마트폰에 눈길이 간다거나 뭔가 조금만 궁금해도 스마트폰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중단이 이어지자 점점 생각이 많아지더니, 어느 순간 무엇인가를 공책에 끄적이는 자신이 보였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시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를 막 쓰고 싶었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인 2018년, 시인 박연준은 스마트폰 사용을 중단한 뒤에 절감할 수 있었다. 디지털 기기가 많은 편리함을 주지만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시와 디지털 기기가 서로 맞지 않다는 것을. 비록 일 년 반 만에 다시 스마트폰의 세계로 돌아왔지만, 디지털 기기로 인해 개인이 완전한 고독 속에 있는 건 극기에 가깝다는 것을.

“한 두 해만의 느낌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챗GPT까지 나와서 귀찮고 어려운 일을 대신하기도 하지요. 사람들이 어렵고 불편한 일을 직접 해봐야 똑똑해질 텐데, 이러다가 점점 무지해지고 무능력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구나 책도 잘 읽지 않으니까 어떤 위기감을 느끼게 된 거죠.”

어느 순간 현대인들의 죽음이라는 것도 그냥 브라운관이 꺼지듯 끊기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됐다. 시가 그에게 들어왔다. 한 해 전 그는 시를 썼다.

“이제 누구도 혼자 있는 법을 알지 못한다// 혼자와 손가락,/ 혼자와 클릭,/ 혼자와 드래그,/ 혼자와 사이버,/ 혼자와 디지털,// 혼자와 세계는 결혼한다/ 혼자는 글로벌이다// 혼자는 배고프지 않고/ 배부른 세계를 본다/ 혼자는 울지 않고/ 우는 세계를 본다/ 혼자는 잠들지 않고/ 잠든 세계를 본다// 혼자는 세계를 지향하고 세계는 혼자를 지양한다// 혼자는/ 누구도 낳지 않는다/ 혼자는/ 태어나지 못하는 미래의 미래/ 혼자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이제 혼자는 혼자조차 낳지 않는다// 혼자는 스스로를 사육한다/ 혼자는 지구를 굴린다/ 지구보다 더 큰 원이 된다/ 혼자는 파트너를 만들어 사용한다/ 닫힌 시공간을 항해하며/ 다른 혼자들을 구경한다// 혼자는 아주 작고/ 혼자는 전부다/ 혼자는 외로운 순간에도 바쁘다// 어느 날 혼자는 브라운관이 꺼지듯/ 끊긴다”(「혼자와 세계」 전문)

시는 물론 소설의 세계까지 오고가며 독자들을 활발히 만나고 있는 박연준 작가가 현대사회 스마트 기기의 역설과 부조리를 묘파한 「혼자와 세계」를 비롯해 58편의 시편을 엮은 신작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문학동네)을 들고 돌아왔다. 소시집 『밤, 비, 뱀』 이후 5년 만이자 그의 다섯 번째 신작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무엇보다 작은 존재에 집중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작게 말하면 작은 인간이 되고(「작은 인간」), 작은 것에 집중할수록 구별이 무색해지며(「구원」), 작은 죽음을 아파할 줄 알고(「작은 돼지가 달구지를 타고 갈 때」), 작은 세계에 복무하겠다(「유월 정원」)고 노래한다. 작은 인간, 작은 우주, 작은 나⋯. 작은 것은 사소한 것이 아닌 오히려 본질에 가까운 것이고, 미시적 세계를 잘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바로 시의 일이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시인의 말」에서 “어느 여름 저녁/ 파초 잎 아래에서 당신이 울고 있다면// 어느 여름 저녁/ 내 얼굴이 못생겼다면// 그건 슬픔이 얼굴을 깔고 앉았기 때문”이라고 울고 좌절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었다.

등단 20주년을 맞는 박연준 작가가 바라본 작고 미시적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박 시인을 최근 이메일과 전화통화로 만났다.
―시편 「혼자와 세계」는 현대 사회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인데.

“디지털과 스마트폰, SNS 과잉으로 도저히 ‘혼자’가 될 수 없는 인간의 슬픔에 대해 쓴 시다. 몇 년 전, 일 년 반 동안 스마트폰 사용을 중단한 적 있었다. 스마트폰과 디지털화된 문명이 ‘시’와 상극이란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불편한 점들이 있어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의 세계로) 돌아왔지만, 역시 고민이 되는 지점이 많다. 필요해 사용하지만 절망적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쇼츠’는 21세기 사람들의 뇌를 지배하고 있다. 혼자 있어도 SNS를 통해 끊임없이 세계와 연결된다. 지나친 연결이 우리를 단절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를 3년 동안 보지 못해도 SNS를 통해 친구가 올려둔 삶을 ‘구경’했기에 늘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건 편집된 삶이기 때문에 진짜 친구의 삶이 아니다. 우린 혼자지만 절대 혼자가 못 되고,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계속 단절돼 있다. 이 시는 그런 생각을 담아서 자조적으로 쓴 시다.”

시편 「작은 인간」은 이번 시집에 특징적인 작은 세계 또는 작은 존재에 대한 사유가 도드라진 작품이다. 시의 노래를 따라서 작은 존재를 찾아가다보면 어느 새 전 우주가 눈앞에⋯.

“작게 말하면 작은 인간이 된다// 작은 인간은 작은 상자/ 사적인 영역/ 항아리 요강 무릎담요 속 캄캄한 전진/ 아스팔트 위가 아니라 아스팔트 아래/ 회전문을 밀치고 밀치다, 되돌아오기/ 돌고 돌아 소용돌이 속 정적 되기/ 먼지들의 집/ 빗자루 되기// 작은 인간은 작은 우주를 들고 나간다//⋯ 사소한 걸 이야기하면 사소해진다/ 공책을 펼치면 거기/ 작은 인간을 위한 광장/ 납작하게,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이름들/ 사소한 명단이 걸어다닌다/ 작은 이름표를 달고 작게 작게”(「작은 인간」 부문)

―왜 작은 인간인가.

“시집의 제목을 ‘작은 인간’이라고 지을까 고민했을 정도로 ‘작은 인간’ ‘작은 것’에 천착했다. 어느 날 이 문장이 떠올랐다. ‘작게 말하면 작은 인간이 된다.’ 이 문장엔 미시적인 것부터 거시적인 것까지, 미물부터 인간까지, 동물부터 비동물까지, 나부터 우리까지… 많은 것이 문제적으로 담겨있는 것처럼 보이더라. 시에서 저는 한 문장으로, 띄엄띄엄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저는 문학이 ‘작은 존재’를 공들여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해, 먼 곳으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믿는다.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집요하게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 시집에도 사랑의 시선은 여전하다. 시집 표제가 담긴 시편 「불사조」에는 첫사랑의 상처성과 함께, 그럼에도 다시 몰입하게 하는 사랑의 불가항력이 놀라울 정도로 경쾌하게 그려져 있다.

“당신에게 부딪혀 이마가 깨져도 되나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날았고/ 이마가 깨졌다// 이마 사이로, 냇물이 흘렀다// 졸졸졸/ 소리에 맞춰 웃었다//⋯ 이곳에서는 깨진 것들을 사랑의 얼굴이라 부른다/ 깨지면서 태어나 휘발되는 것/ 부화를 증오하는 것/ 날아가는 속도로 죽는 것/ 누군가 숲으로 간다//⋯‘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며칠째 미동도 않잖아.’// 내가 말하자 날아가는 조약돌// 돌아와서는/ 아직이요―, 한다// 아직?// 아직”(「불사조」 부문)

―어떤 사랑을 노래한 것 같은데.

“한 5년 전쯤 첫사랑에 대한 시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시다. 첫 사랑은 기억 속에서 죽여도, 자꾸 살아난다. 사랑하지만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쓰기 시작했다. 사랑의 불가항력적인 속성에 대해 쓰고 나서 마지막에 불사조란 제목을 붙이니 괜찮았다.(개인적 경험이 담긴 것인가) 개인적인 경험이 포함돼 있을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오래 기억하고 생각하는 대상으로의 첫사랑을 생각해본 시다. 대체로 잘 지워지지 않는, 죽지 않는 사랑이다. 첫사랑을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시편 「나귀쇠가 내 사랑을 지고 걸어간다」가 노래한 사랑 역시 경쾌 발랄하면서도 강렬하다. 참고로 나귀쇠는 남사당패에서 악기나 인형 따위의 짐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을 가리킨다.

“어젯밤 나는 사랑을 나눴고/ 중심에 아가미가 돋은 짐승처럼 파닥였다/ 쏟아지는 게 좋아 감싸고 녹아들고 땀으로 젖어/ 자빠지는 게 좋아/ 끝을 생각하다 어둑해진 연꽃처럼// 나귀/ 몸을 사랑한다는 건/ 영혼의 외투를 사랑한다는 뜻이야/ 밤마다 침대에 엎드려 흔들리는/ 영혼의 외투들,/ 보렴/ 각자의 방에서 느리게 낡아가며/ 우는 외투들//⋯ 사랑을 낭비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 이제 얼굴은 쓰레기통이야/ 죽은 비가/ 얼굴 위로 쏟아진다// 내가 못생긴 건 슬픔이 얼굴을 깔고 앉았기 때문/ 짜부라트렸기 때문”(「나귀쇠가 내 사랑을 지고 걸어간다」 부문)

―이 시는 어떻게 해서 나온 시인지.

“시가 어떻게 해서 왔는지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다. 저도 모르겠다. 정말! 그냥 어느 날 나귀! 라고 부르고 싶었다. 무작정. 그렇게 시작한 시다. 나귀, 나귀, 반복하며 그냥 중얼거리듯 말이 시작되었고. 사랑에 관한 시이기도 하고, 사랑을 형벌처럼 짊어지고 다니는 나귀쇠에 관한 누군가를 상상하며 쓴 시이기도 하다. 한 시에 어떤 한 인물만 등장하거나 떠올리는 게 아니고, 그냥 눈앞에 흘러가는 극을 보듯 보이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쓴 시다. 이 시는 굉장히 빨리 썼다. 휘몰아치듯 썼는데, 쓰는 중에 자꾸 무언가를 발견하고 놀라며 썼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하는 시간이랄까.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진실이 착 착, 도착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시인의 존재론적 여정을 감각적 언어로 꿰뚫은 작품도 있다. ‘시인’이라는 명사에 ‘―하다’라는 행위동사를 붙인 시편 「시인하다」가 그것이다. 다만, 시가 그린 여로는 시인만의 여로가 아닌, 보통 인간 모두의 여로인지도.
“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 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 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죽는 법을 자꾸 잊는다/ 무덤 속에서도 자꾸 살아난다/ 사는 일이 큰 이득이란 듯,// 살고/ 살아나면/ 살아버린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 산문이 있었다// 그걸 쓰느라 죽을 시간이 없었다!”(「시인하다」 전문)

―시인의 인생 여정이 얼핏 엿보인다.

“유머러스하게 끼어 넣은 한 편의 시다. 시인인 제가 20년 동안의 글을 써온 과정을 돌아봤을 때의 이야기를 한 거다. 시인(詩人)이 시인(是認)한, 그러니까 인정한 이야기 정도? 말놀이다. 시인의 일이기도 하고 시인한 일이기도 한 시간이다.(20대 때 아홉 번이나 죽을 정도로 격동적이었나) 약간 격동의 시절이어서 감정적으로 고꾸라졌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또 살아보고, 하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감정이 범람했던 시절 이야기다. 이제 점점 고요해지고 단단해지려고 노력하면서 조용해지는 나이가 됐다. 소설과 산문을 한 십년을 쓸 때는 그럴 시간이 없더라(웃음).”

―이번 다섯 번째 신작시집의 의미나, 특징은 무엇일지.

“점점 더 시를 편안하게 쓰고 있다. 반면 소설이나 산문은 고통과 노동이 동반된 일인 것 같다. 시는 제게 안식처이자 도피처, 자유로운 장소 같다. 제 삶이 꾸준히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시도 달라지는 것 같다. 무엇이? 라고 물으면, 글쎄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지만. 작가는 계속 변하고 성장한다. 저는 그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중학생 박연준은 어느 때인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유치한 습작’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시상이 떠오르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 손님이 집에 오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를 정도로 이야기를 탐하는 아이이기도 했고, 한글을 깨친 뒤에는 부지런히 책을 읽은 그였다.

어린 시절 이미 그에겐 동시가 들어온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까, 책이 많고 엄했던 피아노를 가르치던 고모는 손님이 오면 그에게 동시를 줄줄 외우도록 했다. 그는 뜻이나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서당에서 풍을 읊듯 그냥 동시를 외우곤 했다. 자연히 동시의 어떤 리듬이 몸 안에 들어왔다.

중학교 2학년생 박연준은 이렇게 쓰기 시작한 시를 시집 비슷하게 노트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연습장에 시를 쓰고 여러 번 고쳐 쓴 뒤 완성이 되면 노트에 옮겨 적곤 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계속 노트에 시를 옮겨 적었다. 4, 5년이 되면서 몇 십 편이 모아졌다. 아무도 보여주거나 말하지 않았지만. 이후 문예 창작과를 진학해 4년 동안 문학을 열정적으로 공부했다. 시인 박연준의 원점이었다.

“어떤 계기로 시인이 된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오다보니 시인이 된 것 같습니다. 스스로 시인이 돼야겠다고 자각하거나 결심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시를 쓰는 일이 다른 어떤 일보다 좋아서 계속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죠. 쓰는 김에 시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투고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덜컥 당선이 된 것입니다.”

1980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박연준은 2004년 시 「얼음을 주세요」가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 장편소설 『여름과 루비』, 산문집 『소란』, 『쓰는 기분』, 『고요한 포옹』 등을 발표했다.

―시 세계를 독자들에게 조금 소개해 준다면.

“2004년 중앙일보를 통해 등단한 후 2007년 첫 시집을 낸 이래 지금까지, 제 시를 ‘어렵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많았다. 일부 시인조차 어렵다고 말하더라. 그런데 그건 시를 ‘이해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이해를 바라고 쓰이는 장르가 아니다. 사실 시는 ‘소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소리를 통해 공중에 도착하는 말이다. 소통을 위한 글쓰기라면 산문으로 썼을 것이다. 저는 어떻게도 말을 할 수 없을 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하고 싶을 때 시를 쓴다. 슬픈데 ‘슬프다’는 말로는 성에 차지 않을 때⋯ 슬프다고 말하면 그건 틀린 감정이 아닐까, 생각하는 거다. 그럴 때 시를 쓴다. 사람의 말이면서 사람의 말만은 아닌 ‘동물 소리’ (이번 시집에도 「울 때 나는 동물소리」란 시가 있다)가 시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한 번 소리 내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혼자 고요히 낭독한 뒤, 방금 들린 소리들을 해바라기 보듯, 벽에 걸린 그림을 보듯, 봄나무 보듯 바라보고 느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시 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시는 글짓기가 아니다. 잘 표현된 문장이 아니다. 시는 모든 생명처럼, 태어나고 싶어 태어나는 무엇이다, 라고 생각한다. 춤추듯이 쓰고 시 안에서 해방감을 느끼면 족하다 생각한다. 시가 ‘자연스러운가’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시를 쓸 때 습관이나 징크스가 있는지) 글쎄, 요새는 예전보다 시를 더 느리게 완성한다. 전에는 하루 종일 한 편의 시를 쓰고 고치고,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퇴고해 완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초고를 써놓고 몇 년에 걸쳐 느긋하게 수정하는 경우도 많다. 그건 아마 제가 산문을 쓰는 도중에, 혹은 동시에 (행복하고 싶어) 시를 쓰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시는 제게 ‘일’이 아니고 ‘직업’이 아니고 ‘의무’도 아니다. 게다가 저는 시로 이루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다! 이 마음이 사람을 느긋하게 만드는 것 같다.”

―시인, 소설가 등 작가로서의 포부나, 희망 또는 비전은.

“쓰나마나한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지만 늘 존재하는 것에 대해 쓰게 될 것 같다. 스스로를 믿으면서(어려운 일이다!), 꾸준히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젊은 시절에는 새벽까지 자주 깨어 있곤 했지만, 지금은 졸려서 그렇게 오래 깨어있지 못한다고. 밤 12시쯤 눈을 감고 오전 7시 반 정도에 일어난다고. 아침형 인간도 저녁형 인간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고. 취미로 발레를 하고, 요즘엔 목과 어깨가 아파서 필라테스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메일과 마찬가지로,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시인 박연준의 이야기 역시 분명했다. 중요한 것은 매일 쓰는 것보다도 ‘쓰는 상태의 몸과 마음’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방법이 뚜렷이 있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이때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어떤 열정으로. 작고 사소한 존재에 복무하기 위해⋯.

“결혼이란/ 오른쪽으로 행복한 사람과 왼쪽으로 불행한 사람이/ 한집에서 시간을 분갈이하는 일,/ 뒤척이는 화분에 물을 주기로 한다/ 진딧물도 살려주기로 한다/ 영혼을 낮은 언덕에 심고/ 이제부터// 작은 것에만 복무하기로 한다”(「유월 정원」 부문)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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