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가서 무엇하랴

전북CBS 김대한 기자 2024. 5. 1. 06: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자수첩]전북 지역 '불송치 주의보'
불송치->구속 기소…검‧경 180도 뒤집힌 판단
8개월 경찰 수사…'함량 미달' 불입건결정서
고소인‧진정인 권리구제는 어디에
김대한 기자


입사 전 '경찰서 한 번 가본 적 없다'는 말을 훈장처럼 내뱉곤 했다. 그만큼 '죄지은 적 없다'는 도덕적 우월감을 주위에 과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던 필자는 전북경찰청을 출입하는 기자가 됐고, 매일 같이 경찰서를 드나드는 아이러니함도 생겼다.

이곳은 생각한 것과 크게 달랐는데, 그중 하나는 죄지은 사람보다 억울함에 몸서리치는 사람이 더 많이 드나든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도 피의자가 있으면 피해자가 있기 마련인데 왜 '나쁜 사람들'만 간다고 생각했는지 반성도 들었다.

피해를 본 이들은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권리구제를 원한다.

가령 사기를 당했으면 편취당한 돈은 전부 돌려받지 못해도 사기 친 '그놈'은 꼭 처벌돼 개인적인 억울함을 풀고, 거창하게는 또 다른 피해자가 없도록 정의 구현이 되길 바란다.

그런데 전북경찰청은 이들을 감싸기엔 한없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시키며 피고소인의 손을 들어줬지만 검찰의 수사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던 피고소인의 범행 전모가 드러나는가 하면, 묻지마식의 '함량 미달' 결정서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2021년 A씨와 B씨는 화물차 운송 사업을 시작하려다 C씨 등의 거짓 계약에 속아 가진 재산 전부를 잃었다. C씨 등은 화물차를 양도했음에도 화물차가 주인이 없다고 속여 A씨에게 되팔거나 A씨의 허락 없이 문서도 위조·제출해 B씨에게 파는 등의 방법으로 순식간에 1억 원가량의 돈을 편취한 것이다.

A씨와 B씨는 억울했다. 돈은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사기를 친 '그놈'이 법의 심판을 받기 원했다. 그렇게 마지막 희망을 품고 고소장을 접수했지만 경찰의 판단은 '불송치'.

'불송치 결정'이란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지난 2021년부터 경찰이 범죄를 수사한 후 범죄 혐의가 없다고 보는 경우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것을 뜻한다.

A씨와 B씨는 '검찰 재수사'라는 기적의 가까운 확률로 범행의 전모를 밝힐 수 있었지만,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전북 지역의 이름 모를 또다른 A‧B씨들은 어찌해야 할까.

경찰 로고. 황진환 기자


경찰의 불송치 판단이 무조건적인 오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의 판단이 존중받으려면 근거라도 명확해야 하는데, 이 판단 결정서 마저 '함량 미달'이다.

전북의 한 경찰서 수사팀의 불입건(송치) 결정서를 확인했다. 결정서의 전부라고 볼 수 있는 검토 및 의견엔 '사기를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 '증거가 불충분하다' 두 문장이 전부다.

혐의가 입증되기에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지, 무슨 증거가 빠졌는지 등 법리적인 판단 근거들은 모두 생략이다. 8개월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이 두 문장을 쓴 수사관의 판단 결정서를 본 고소인은 무슨 심정일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사관 역시 한숨이 나올 터다. 부족한 인력탓에 몇십 개씩 쌓이는 자신의 탁상 앞 고소장들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상위 기관의 몫이지만, 수년째 지키지 못할 약속만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2022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사건을 불송치한 경우 고소인 등이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통지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소인의 알 권리를 침해했다며 함량 미달의 결정서를 쓴 한 수사관을 직무교육 하도록 권고했기 때문으로 '함량 미달' 불송치결정서는 꽤 오래전부터 지적된 문제다.

그럼에도 변한 것은 없다. 전북경찰청 측은 시간이 오래 지난 사건으로 찾기 어렵다는 설명과 '함량 미달'의 불송치 결정서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개선 의지를 찾기 어려웠다.

직업상 다양한 고소인을 만나왔고 또 마주하게 될 예정이다. 언젠가 그들에게 '권리구제를 원하면 경찰서 한 번 가보세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날을 손꼽아보지만, 꽤 먼 미래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전북CBS 김대한 기자 kimabout@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