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교과서 ‘장밋빛 청사진’… 현장선 ‘기대보다 우려’ [심층기획]

이지민 2024. 5. 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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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면 도입 앞두고 ‘온도 차’
초·중·고 공교육 교과서에 세계 첫 적용
교육부 “교실 혁명 이끌 것” 당찬 포부
가이드라인 모호하고 출원 일정 촉박
에듀테크 업계, 성공적 안착에 ‘물음표’
교사 기획력이 수업 활용 효과성 좌우
“연수 늘린다고 역량 강화될지 미지수”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로 교실 혁명을 이끌겠습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강조했던 AI 디지털교과서가 내년 전국 초·중·고 교실에 전면 도입된다. 디지털교과서는 디지털기기로 다양한 학습콘텐츠를 제공하는 교과서로, 교육부는 AI 기능을 넣어 수준별 학습이 가능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수업엔 종이 교과서도 쓰이지만, 교육부는 궁극적으로는 디지털교과서 위주로 수업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목표다. 해외에서 디지털기기를 수업 보조교재로 쓰는 경우는 있으나 공교육 교과서에 AI를 전면 도입하는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나주범 교육부 차관보가 지난 4월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역량 강화 지원방안’ 브리핑을 열고 교사들의 디지털교과서 관련 연수 추진 방안을 밝히고 있다. 교육부 제공
교육부는 미래 교실의 장밋빛 청사진을 들고 나왔지만, 현장에선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된 교실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당장 도입이 1년도 남지 않았으나 실제 어떤 방식, 어떤 수준으로 AI 기능이 적용될지, 현장 활용도가 얼마나 될지 등은 모두 의문부호인 상태다.

◆개발업체들 “가이드라인 모호”

30일 교육부에 따르면 디지털교과서는 내년 1학기 초 3·4학년과 중·고 1학년 수학·영어·정보 교과에 우선 적용된 뒤 2028년까지 초 3 이상 전 과목(도덕·예체능 제외)에 도입된다. 교육부는 디지털교과서로 교사는 단순 정보전달 역할에서 벗어나 사고력, 창의력을 길러주는 수업을 운영하고, 학생별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교육부는 디지털교과서가 국내 에듀테크(교육기술산업) 기업에도 기회가 될 것이란 입장이다. 디지털교과서 출원은 교과서 발행사와 에듀테크 스타트업 컨소시엄뿐 아니라 에듀테크 스타트업의 단독 출원도 가능하다. 이 부총리는 이달 초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해외에도 (디지털교과서 기술을) 수출하고, 에듀테크 기업의 성격도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국내 교육 시장이 줄어드는 가운데 디지털교과서가 신시장 개척 활로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현장 온도는 조금 다르다. 에듀테크 기업들은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할지조차 미지수라는 분위기다. 교과서 발행사와 협업해 디지털교과서 출원 예정인 스타트업 대표 A씨는 “기회라 생각해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배제되면 경쟁사들이 들어갈 텐데 그에 따른 타격이 크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이라며 “사업의 큰 그림을 이해하고 있는 주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기업은 물론 교사, 교육부조차 교실에서 디지털교과서가 어떻게 쓰일지 여전히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8월까지 출원을 완료해야 하는 교과서 발행사 사이에선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교과서 발행사 관계자 B씨는 “디지털교과서를 만들어본 사람이 없고, 모두 처음 하는 건데 교육부가 지난해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모호하고 일정도 촉박하다”며 “학교마다 기기 표준화가 안 돼 있고 사양 차이도 큰데 현장에서 만족할 수 있는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명료한 지침이 나오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수출에 관해서도 “국내 도입 뒤 어떤 문제가 있을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수출까지 고민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교육부는 민간의 창의성을 발휘하라는 취지에서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을 너무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더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을 막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장 안착은 교사 활용이 관건

디지털교과서의 성공 여부는 교사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디지털교과서가 개발되더라도, 현장에서 교사가 쓰지 않으면 소용 없어서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과목별로 교사가 여러 명인데 시험은 공통 문제로 치르다 보니 튀는 수업을 하기 어렵고 다른 교사들과 비슷하게 수업을 맞춰야 한다”며 “만약 선임 교사가 다 같이 서책 교과서 위주로 수업하자고 하면 따르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도 수업 운영방식은 온전히 교사에게 맡겨져 있어서 교사 선호도에 따라 디지털교과서 활용에 격차가 생길 수 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학 교수는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수업의 효과성은 교사 기획력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교사별 활용 능력이 달라 편차가 벌어질 수 있다”며 “수업에서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교육부는 연수를 통해 교사들에게 디지털교과서 등 디지털 기반 교실 환경에 대한 친숙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우선 올해에만 3818억원을 투입해 교사 15만명에 대한 연수를 진행하고, 내년과 후년에도 각각 8만5000명씩 연수를 한다. 연수는 승진 가산점, 해외 연수 기회 등과 연계하는 등 인센티브를 준다는 방침이다. 또 수업 혁신 의지와 전문성을 갖춘 ‘교실 혁명 선도교사’를 2026년까지 3만4000명 양성해 한 학교당 2∼3명씩 배치하고, 이들이 동료 교사에게 디지털교과서 활용을 독려하는 등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한다.
교원단체들은 교사가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할 환경 구축에 먼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디지털교과서가 또 다른 업무부담으로 돌아와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도입 취지는 좋으나 새 기술 때문에 불필요한 업무량이 늘지 않아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교사도 있어 현장 공감이 우선돼야 한다”며 “연수가 호응을 얻으려면 디지털교과서는 도구일 뿐 학습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교사임을 분명히 하고 학생 개개인의 장점을 끌어낼 교실 환경 구축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인센티브는 특정 그룹만의 잔치가 되거나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며 “하위그룹 교사들의 자발적 참여와 변화를 유도하는 방안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현장에선 지금도 연수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연수를 확대하는 것만으로 역량 강화가 이뤄질지 미지수”라며 “교사의 주당 수업시수를 줄이고 연구 공간을 제공하는 등 교사가 혁신 자발성을 발휘할 환경 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민·김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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