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전담조사관’ 파견에 ‘학폭 변호사’ 수요 급증... “학교가 법정 됐다”

홍인석 기자 2024. 5.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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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부담 덜자”며 3월부터 학폭전담조사관’ 도입
내부 분위기 모르는 외부 인사가 시시비비 가려
학부모·학생들 “변호사 조력, 선택 아닌 필수”
전문가 “학교 법정될까 우려, 교육에 방점 찍어야”
일러스트=손민균

교육부가 퇴직한 교사나 경찰을 ‘학교폭력(학폭)전담조사관’으로 파견해 교내 사건을 조사하게 하기로 하면서 이른바 ‘학폭 변호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교내 사정을 상세히 알지 못하는 외부 인사가 개입해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자 법률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자녀에게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교정(校庭)의 법정화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기준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학폭을 전문 분야로 등록한 변호사는 34명이다. 2019년 4명에 불과했으나 5년 새 7배 늘어났다. 2012년부터 학교가 학폭 가해학생에 조치한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면서, 학폭 전문 변호사를 찾는 수요가 증가했다. 자녀 입시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에서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임료를 지불하겠다는 학부모가 줄을 섰다. 변호사 사이에서는 ‘돈이 되는 시장’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그동안 교육부는 학폭 사건을 교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학폭이 발생하면 학교 내 책임교사가 사안을 조사했다. 조사가 완료되면 교감, 책임교사, 전문상담교사, 보건교사,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학교 내 전담 기구 사안을 논의한 후 경미한 사건은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자체 해결이 어려우면 학교장이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민원과 협박에 시달리는 등 갈등을 겪고, 수업과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올해 1학기부터 학폭이 일어난 학교에 전담관을 파견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담관은 퇴직 교사나 경찰이 맡는다. 교육부가 학폭 관련 학생의 연령이나 심각함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사안에 조사관을 파견해 사건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최소한의 방어권을 보장받겠다는 마음으로 변호사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조사관이라는 외부 인사의 개입으로 학교 분위기나 당사자 간 평소 친분 등 계량화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배제된 채 잘잘못을 따지는 방향으로 조사가 진행되니 변호사 조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짙어진 것이다.

학폭 사건을 맡은 적 있는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건은 조사 과정에서 변호사 선임 유무가 학생들에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아주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는 변호사가 대동하지 않으면 학생이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학폭 사건 절차에서 변호사 상담을 문의하는 시점도 앞당겨졌다”며 “학교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건도 조사관이 개입돼 학부모들도 예전보다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덧붙였다.

학교가 많은 신도시에서는 ‘학폭전문 변호사’ 플래카드가 붙는 등 수임 경쟁도 불붙었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학폭 사건 변호사 수임 비용은 약 400만~500만원에서 시작해 1000만원이 넘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소한 다툼까지 조사관이 개입되고 변호사도 많아지자 일부에서는 수임료를 낮추면서까지 학폭 사건을 맡으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소송으로 비화하지 않을 사안은 수임료를 낮추고, 소송이 제기되는 사건은 값이 비싸지는 셈이다.

현장 교사의 책임과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조사관 파견 제도가 시행됐지만 변호사 선임이 ‘기본값’으로 자리 잡자 학교가 법정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커지는 학폭 시장에 반사이익을 얻는 변호사들도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교육과 피해학생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채은 매일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학폭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예방 교육은 물론 사건 발생 후 사후교육 등이 사건 해결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며 “학교 임직원을 비롯해 가정과 사회가 서로를 존중하는 환경을 만들고, 피해자가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하는 게 본질적인 대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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