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친구의 '대언론 갑질'[베이징노트]

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2024. 5. 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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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베이징 특파원 35명 정재호 대사 규탄 성명 발표
갑질 의혹 취재 이후 대사관 출입 '허가제'로 변경
대사관 직원들에 '언론 취재 불응하라' 지시한 격
특파원들 "불통 넘어 국민의 알권리 심각히 저해"
대통령은 '소통' 나서는데 그 친구는 언론과 '전쟁'
재외 공관장 회의 개회식 참석한 정재호 주중 대사. 연합뉴스

지난 29일 저녁 중국 베이징 왕징의 한 건물 회의실에 한국 언론 베이징 특파원들이 모였다. 이들은 격론을 벌인 끝에 특파원 일동 명의의 규탄 성명 채택을 결정했다.

현재 베이징에서 취재활동을 벌이고 있는 31개 언론사 소속 특파원 36명 가운데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해당 성명을 내는 것에 동의할 정도로 분위기는 뜨거웠다.

소속 언론사, 그리고 개별 특파원의 성향과 시각이 천차만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성명을 통해 한목소리로 규탄한 대상은 주중한국대사관과 그 수장인 정재호 주중대사다.

대사 갑질 의혹 취재했더니 대사관 '출입 제한' 일방 통보

주중한국대사관 전경. 주중한국대사관 제공

이날 베이징 특파원들이 채택한 성명의 제목은 "24시간 전에 취재허가 받으라니…정재호 대사, 대언론 갑질 멈춰라"이다.

배경은 이렇다. 주중대사관 측은 29일 오전 베이징 특파원 전원이 참여하고 있는 위쳇(중국판 카카오톡) 단체방에 공지 글 하나를 띄웠다.

내용은 5월 1일부터 특파원의 대사관 출입이 필요할 경우, 최소 24시간 이전에 출입 일시, 인원, 취재 목적을 포함한 필요 사항을 대사관에 신청해야 하고, 신청 사항 검토 후 출입 가능 여부 및 관련 사항을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왜 이런 조치가 내려졌는지에 대한 특파원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대사관은 "최근 보안 관련 문제가 발생하여 브리핑 외의 시간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공식 답변을 내놨다.

여기서 주중대사관이 밝힌 최근 발생한 '보안 관련 문제'는 바로 언론사들이 정 대사의 갑질 의혹을 취재하기 위해 대사관에 출입한 것과 관련돼 있다.

갑질 의혹이 보도된 뒤 특파원들이 주중대사관 정문 등 대사관 안팎에서 정 대사의 해명을 듣기 위해 기다리다 정 대사가 타고가던 차량을 둘러싸고 질문세례를 쏟아냈다.

또, 이후 한 방송사 소속 특파원이 중국인 촬영인력과 함께 대사관 뜰에서 정 대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다린 적이 있다. 이 촬영인력은 국정감사와 총선 사전투표 등을 촬영하기 수차례 주중대사관을 드나든 바 있다.

대사관은 이를 보안 관련 문제로 둔갑시켜 특파원의 대사관 출입을 사실상 '허가제'로 바꾸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

대사관의 논리 대로라면 대부분 보안시설인 정부 부처에도 기자들은 24시간 전에 취재목적까지 포함해 출입을 신청하고 허가를 득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국가 최고 보안시설인 용산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베이징 특파원들이 성명을 통해 "특파원의 대사관 출입 제한 결정은 정 대사의 독단적 판단과 사적 보복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비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갑질 의혹 취재가 대사관 업무 방해? 임기 내내 '불통'

연합뉴스

주중대사관의 이번 조치가 그대로 시행되면 정 대사 갑질 의혹 같은 사안이 터졌을때 특파원들의 대사관 출입은 불허될 것이 뻔하다.

특히, 대사관 직원들에게 이번 조치는 언론 취재에 응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연 어떤 직원이 대사의 의도가 뻔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감히 특파원을 대사관 경내로 들여놓을 수 있을까?

이에 특파원들은 성명에서 "'불통'을 넘어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그동안 정 대사가 보여온 행태를 보면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 대사는 지난 2022년 8월 부임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모 언론사가 비실명 보도 방침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부임 후 1년 7개월째 특파원 대상 월례 브리핑 자리에서 질문을 받지 않고, 이메일을 통해 사전 접수한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하고 있다. 이는 정부 부처 기관장 가운데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또, 갑질 의혹 보도 이후에는 대사관 명의로 특정 언론을 지목해 "최전선에서 국익을 위해 매진하는 대사관의 직무수행을 방해했다"는 내용의 설명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등 임기 내내 언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왔다

대통령은 '소통' 나섰는데 대통령 친구는 언론과 '전쟁'

연합뉴스

주중대사관이 언론통제 조치를 내놓은 날 한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열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회담 성과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윤 대통령이 여당의 총선 참패 이후 민심을 받아들여 야당 대표와 소통에 나선 점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용산 대통령실과 비행기로 단 2시간 거리인 베이징 주중대사관에서는 윤 대통령의 친구인 정 대사가 소통은 커녕 사실상 언론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사실 정 대사가 자신이 가진 권한으로 특파원들의 대사관 출입을 막는다면 언론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주중대사관의 수장이자 대통령의 친구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진 정 대사는 그야말로 '갑'이다.

그러나 주중대사관은 정 대사 개인 사무실이나 사유지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정 대사에게 사적 보복을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뛰고 있는 특파원들의 대사관 접근을 차단할 권리는 없다.

정 대사가 외교 전쟁터나 다름 없는 베이징에서 자국 언론과의 전쟁에 매달리기 보다는 국익을 위해 한중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갈지를 더 고민하기 바란다.

가뜩이나 정 대사 부임 이후 한중관계 악화로 국익이 위협받고 있는 이 시점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내보냈다고 국익을 운운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국민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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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jsl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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