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경력직 뽑을 때마다 비리...전현직 27명 수사 요청

김경필 기자 2024. 5.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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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10년간 291차례 경력직 채용서 모두 규정 위반 적발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5월 31일 오후 경기도 과천 선관위에서 고위직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등 관련 특별감사 결과와 후속대책을 발표하며 사과하고 있다./뉴스1

김세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의 아들은 선관위에서 ‘세자(世子)’로 불렸다. 선관위에서 ‘왕’이나 다름없는 사무총장의 아들이 2020년 인천 강화군선관위에 경력직으로 채용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고, 상급 기관인 인천선관위로 옮길 때도 특별 대우를 받으면서 나온 이야기다. 감사원은 이 ‘세자’ 채용을 비롯해, 중앙선관위와 각 지역 선관위가 지난 10년간 291차례에 걸쳐 진행한 경력직 공무원 채용 전부에서 비리나 규정 위반이 확인됐다고 30일 밝혔다. 규정 위반은 1200건이 넘었다. 이런 채용에서 선관위 전·현직 직원의 아들딸, ‘예비 사위’ 등 21명이 합격했고, 이 가운데 12명은 부정하게 합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선관위 직원들의 자녀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감사원은 이날 이런 내용의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전직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차장 등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에 대해 직권남용과 청탁금지법 위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김 전 총장 등 다른 전·현직 직원 22명에 대해서도 채용 비리에 연루된 정황이 있다고 보고, 검찰에 수사 참고 자료를 보냈다. 총원이 3000명가량인 기관에서 전·현직 49명이 인사 비리 혐의를 받은 것이다.

김 전 총장 아들은 강화군선관위에 빈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자리’에 임용됐다. 중앙선관위는 2019년 9월 채용 수요를 조사하면서 인천선관위가 6급 이하 인원이 정원을 초과했다고 보고했는데도 인천선관위가 1명을 채용하도록 했고, 김 전 총장 아들이 원서를 내자 선발 인원을 2명으로 늘렸다.

이렇게 선발되는 직원에겐 인천선관위 산하 강화군선관위에서 5년 이상 근무해야 하고, 중간에 다른 선관위로 옮기지 못한다는 조건이 붙어야 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이례적으로 이 채용에서만은 ‘5년간 전보 금지’ 조건을 달지 못하게 했다. 또 서류전형에선 당초 채용 계획에 없는 비공식 기준을 만들어 이 기준대로 합격자를 선발하게 했다. 김 전 총장 아들이 뽑힐 수밖에 없게 설계돼 있는 맞춤형 기준이었다. 면접에선 김 전 총장과 친분이 있는 직원들이 면접위원으로 들어와 김 전 총장 아들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그래픽=양진경

김 전 총장 아들은 임용 1년도 안 돼 상급 기관인 인천선관위로 옮길 수 있었다. ‘5년간 전보 금지’ 조건 없이 채용됐기 때문이다. 그에겐 규정상 근거도 없이 관사까지 무료로 제공됐다. 그런데도 김 전 총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직원들이 알아서 특혜를 준 것 같다’며 자기는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선관위 직원들은 김 전 총장의 후임인 박찬진 전 총장의 딸을 2022년 전남선관위에 채용하는 과정에선 점수를 조작했다. 외부에서 온 면접위원들에게 점수란을 비워두게 했고, 여기에 박 전 총장 자녀를 포함해 미리 정해둔 ‘합격 내정자’ 6명에게 높은 점수를 적었다. 내정자에 포함되지 못한 4명은 불합격 처리됐다. 2018년 송봉섭 전 사무차장 딸의 채용에는 아예 이 딸 1명만을 대상으로 하는 ‘비(非)다수인 경쟁 채용’이라는 방식이 동원됐다. 당초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천한 후보자들은 원천 배제됐다.

선관위 직원들이 상급자 자녀의 인사상 이익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자체 고위 간부에게 압력을 넣은 경우도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지자체 소속 지방직 공무원을 선관위 소속 국가직 공무원으로 채용하려면 해당 지자체로부터 전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충북 청주시상당구선관위 4급 국장은 옥천군에서 8급으로 일하던 자녀가 충북선관위 채용에 응시하자 충북선관위와 옥천군선관위 직원들에게 ‘옥천군으로부터 전출 동의를 받아달라’며 청탁을 했다.

이에 옥천군선관위 과장(5급)이 ‘선거 협조’를 명목으로 옥천군수를 찾아가 전출 동의를 요구했다. 군수가 ‘선관위와 군청 간 전출은 일대일 교환이 원칙’이라며 거절하자, 이번에는 옥천군선관위 계장(6급)이 군수를 찾아가 동의를 거듭 요구했고, 동의를 받아냈다. 감사원은 군수가 다음 지방선거에도 출마하려 하는 상황에서, 선거 감독 기관인 선관위가 압박하니 동의를 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경북선관위 상임위원(1급)은 2018년 자녀가 경북 영천시 공무원으로 임용되자, 자녀가 영천시 내에서 원하는 근무지를 받을 수 있게 영천시선관위 국장에게 인사 청탁을 ‘대리’로 넣게 했다. 이 상임위원은 2021년 대구선관위가 경력직 채용을 진행하자 대구선관위 간부들에게 5차례 넘게 청탁해 자녀가 채용되도록 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선관위 직원들의 복무 기강 해이도 여러 건 적발됐다고 밝혔다. 한 시 선관위 사무국장은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 1건으로 여러 차례 병가를 내는 방법으로 8년간 100일 넘게 병가를 내거나 무단결근을 했다. 시 선관위 사무국의 우두머리로서 자기가 낸 병가를 스스로 결재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 사무국장은 무단결근하는 동안 70차례, 170일 넘게 해외여행을 다녔다.

한 도 선관위 직원은 재직 중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다니다가 적발됐다. 로스쿨 재학은 원천적으로 휴직 사유가 될 수 없는데, 도 선관위 사무처장은 휴직이 가능한 것으로 임의로 판단해 이 직원의 휴직을 승인해줬다. 이 직원은 휴직 기간이 끝나 복직한 뒤에는 근무 시간에 무단으로 로스쿨에 다녔다.

선관위 기관 차원에서 ‘고위직 나눠먹기’를 한 정황도 포착됐다. 선관위는 4·5급 공무원이 배치돼야 하는 직위에 3급을 배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3급 이상 고위직을 정원의 40% 넘게 더 뒀고, 임기 6년짜리 시·도선관위 상임위원(1급) 자리는 2·3년 단위로 끊어서 직원들이 나눠서 맡게 했다. 이렇게 상임위원을 거친 선관위 직원들은 모두 1급 이상의 직급으로 퇴직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다른 기관에선 인사 비리도 특정인 한두 명 채용과 관련해서만 적발되는데, 이렇게 다수의 채용에서 비리가 발견되는 기관은 처음”이라며 “선관위 조직 차원에서 도덕 불감증, 불법행위에 대한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인사 비리와 조직 부당 운영 등에 대한 감사를 추가로 진행해, 이르면 여름 중으로 최종 감사 보고서를 공개할 계획이다. 한편 부정 채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12명의 채용이 취소되려면 법원의 확정 판결이 필요하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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