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억울한 까마귀

차동욱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 2024. 5.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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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욱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오비이락(烏飛梨落). 공교롭게도 사건이 발생한 시기가 같아 책임이 없는 까마귀가 배가 떨어진 데 대한 의심을 받게 된다는 것인데, 이 정도만 돼도 까마귀가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온몸이 까만 깃털로 덮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조롱과 기피의 대상이 되어 왔고, 더 나아가 흉조의 상징이 되었다. 공포 영화인 ‘오멘(Omen)’에서 까마귀의 모습을 한 악마가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을 보면 섬�하다. 그런데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새(The Birds)’를 보면 인간을 공격하는 새는 예상과 달리 까마귀가 아니라 갈매기이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상 숭배에 대한 벌로 엄청난 가뭄과 기근을 겪게 하면서도, 죽음을 목전에 둔 선지자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를 보내 구원해 주었고, 대홍수가 끝나갈 무렵 노아가 방주에서 홍수가 끝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날린 새도 까마귀이다. 설마 흉조를 날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럽과 북미대륙에서 까마귀는 길조에 가까운 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길조라기보다는 영적 능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새이다.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이란 미국 드라마를 보면 초인간적 영적 능력을 갖춘 등장인물이 까마귀의 눈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물론 이 까마귀들은 우리 근처에 서식하는 작은 까마귀(crow)와는 다른 큰 까마귀(raven)이기는 하다. 이 큰 까마귀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영적인 존재로 믿어져 왔다.

까마귀가 흉조의 이미지를 얻은 이유는 죽은 동물의 고기를 먹기 때문일 것이다. 까마귀가 날아든다는 것은 주위에 사람이나 짐승의 사체가 있다는 신호이니 불길하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기는 하다. 그런데 그런 까마귀에 대해 반전에 가까운 인식을 보이는 노래가 있다.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 시인인 빌헬름 뮐러의 24편으로 구성된 연작시 ‘겨울여행’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여 연가곡으로 만든 ‘겨울나그네’의 15번째 곡 ‘까마귀’이다. 이 곡에서 까마귀는 매서운 추위 속에 혼자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그네를 계속 따라온다. 나그네는 까마귀가 자신의 시체를 먹기 위해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그네는 까마귀에게 무덤(죽음)까지 동행하는 충실함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다. 최순영 박사는 그의 ‘겨울나그네’ 해설서인 ‘인생의 겨울을 지날 때’에서 “나그네는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임박한 죽음을 암시하는 까마귀가 반가우면서도 두렵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최순영 박사의 해설에 덧붙여, 외로운 나그네는 까마귀에게 자기 죽음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본다. 혼자 쓸쓸히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라고 할까? 24번째 곡이 끝날 때까지 나그네는 죽지 않는다. 나그네에게 까마귀는 죽음의 징조인 동시에 죽음을 극복하게 한 계기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그네를 죽음으로 몰아간 가장 큰 원인은 외로움이었는데, 까마귀라는 동반자가 그 외로움을 덜어줬기 때문이 아닐까.

주위에 위험이 이미 발생했고, 그 위험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까마귀는 흉조가 아니라 오히려 위험을 미리 알려줘서 그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길조라고 할 수도 있다. 즉,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주는 길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조직 안에서 그 조직의 취약점을 파악하는 팀을 레드팀(Red Team)이라고 한다. 적(敵) 또는 경쟁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내부총질을 하는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할리우드 액션영화 ‘다이하드 4.0’에서는 레드팀의 역할을 하던 해커집단이 실제로 사이버 테러를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명분은 미국 정부가 자신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레드팀 과민반응 내지는 혐오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조직 내의 레드팀을 입 닫게 만들든가 쫓아내 버린다. 그렇게 한다고 레드팀이 우려한 위기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 조직만의 일이라면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지만,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면 레드팀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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