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69> 꾀꼬리 우는 소리에 자기 처지 읊은 고려 후기 임춘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2024. 5.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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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오디 익고 보리도 익어 가는데(田家葚熟麥將稠·전가심숙맥장조)/ 녹음 짙은 숲에서 이따금 꾀꼬리 소리 들리네.

둘째 구의 '황율(黃栗)'은 누런 밤송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꾀꼬리를 비유해 쓴 말이다.

꾀꼬리는 녹음 속에서 객이 들으라는 듯 꾀꼴꾀꼴 운다.

"하얀 해오라기 점점이 하얀 눈 같은데(白鷺千點雪·백로천점설)/ 노란 꾀꼬리는 한 조각 황금덩이 같도다.(黃鶯一片金·황앵일편금)." 꾀꼬리를 직접 본 사람 말에 따르면 정말 황금덩이처럼 누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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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오디 익고 보리도 익어 가는데(田家葚熟麥將稠·전가심숙맥장조)

시골집에 오디 익고 보리도 익어 가는데(田家葚熟麥將稠·전가심숙맥장조)/ 녹음 짙은 숲에서 이따금 꾀꼬리 소리 들리네.(綠樹時聞黃栗留·녹수시문황률류)/ 꽃 아래서 풍류 즐기던 서울 손님을 안다는 듯(似識洛陽花下客·사식락양화하객)/ 은근히 꾀꼴 꾀꼴 쉬지 않고 울어대는구나.(殷勤百囀未能休·은근백전미능휴)

위 시는 고려 후기 문인 임춘(林椿·1149~1182)의 ‘늦봄에 꾀꼬리 소리를 듣고’(暮春聞鶯·모춘문앵)로, ‘동문선’ 권19에 들어있다.

위 시는 늦봄에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고,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읊는다. 그는 고려 귀족 사회에 기반을 둔 집안이었으나, 20세 전후 무신이 일어나는 바람에 가문 전체가 화를 입었다. 그 뒤로 10년가량 피신하다시피 힘들게 살았다. 아마 위 시는 그 무렵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실의와 빈곤 속에 방황하다가 결국 30대에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농가에 뽕나무 열매인 까만 오디가 익어 가고 밭에서 보리가 익어 간다. 둘째 구의 ‘황율(黃栗)’은 누런 밤송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꾀꼬리를 비유해 쓴 말이다. 꾀꼬리는 녹음 속에서 객이 들으라는 듯 꾀꼴꾀꼴 운다. 수도 개성에서 여유롭게 잘 살았지만 지금은 숨어 사는 자기 처지를 알기나 한 듯 꾀꼬리는 쉬지 않고 울어댄다. 셋째 구 ‘화하객’은 봄철 꽃나무 아래에서 꽃을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시인은 이전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오언절구를 모은 초학 교재인 ‘추구(推句)’에 꾀꼬리를 잘 묘사해 놓았다. “하얀 해오라기 점점이 하얀 눈 같은데(白鷺千點雪·백로천점설)/ 노란 꾀꼬리는 한 조각 황금덩이 같도다.(黃鶯一片金·황앵일편금).” 꾀꼬리를 직접 본 사람 말에 따르면 정말 황금덩이처럼 누렇다고 한다.

요즘 꾀꼬리 소리 듣는 게 쉽지 않다. 그렇게 많이 날아다니던 제비도 잘 안 보인다. 오늘이 5월 첫날이다. 지난달 말부터 초여름 날씨처럼 더웠다. 늦봄도 없이 바로 여름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목압서사 뜰에 있는 뽕나무에 올해 유달리 오디가 많이 달렸다. 다 크지도 않았는데 익어가는 것인지 색깔이 조금 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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