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이화영 술자리, ‘정치의 사법 통제’

양은경 기자 2024. 5. 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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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행위의 범주를 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가 어렵네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경기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검사 술자리 회유’ 주장에 대한 법적 평가를 묻자 돌아온 한 현직 판사의 답이었다.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판사도 있었다.

‘대북 송금을 이재명 지사에게 보고했다’는 이화영씨의 자백이 검찰청에서 벌어진 술판을 통해 나왔다면 중대한 문제다. 형사소송법 309조는 고문이나 폭행·협박, 기망, 회유 등으로 얻은 자백의 증거 능력을 배제하고 있다. 이화영씨가 동의해도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 그런데 이씨는 이렇게 중요한 진술을 지난 4일 재판을 마무리하는 피고인 신문에서 했다. 술판이 벌어졌다는 때로부터 9개월 이상 지나 CCTV 화면이 지워진 시점이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두고 양측의 주장이 부딪칠 때 판사는 객관적 증거와 명백히 배치되는 주장부터 걸러낸다. 증거로 주장을 입증하는 게 사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청담동 술자리’로 지목된 장소가 변호사 30명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면 신빙성을 잃는 식이다. 2014년 서울고법은 ‘5만원권으로 건넨 회사 자금 4800만원을 횡령했다’며 회사 관계자를 고발해 기소된 사건에서 돈을 건넸다는 시점이 5만원권 발행 이전이어서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이 공개한 호송계획서와 출정 기록에 따르면 술자리가 있었다고 주장한 시점에 이화영씨는 이미 검찰청사를 떠나 있었다. 이정도면 주장 자체가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런데 ‘창문이 작아서 교도관 감시 사각지대가 있다’ ‘검찰이 영상녹화실에 몰카를 설치했다’ 등의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이 가로 170㎝, 세로 90㎝의 통창 사진을 내놓고, 전국 모든 검찰청에 적용되는 영상녹화실 구조를 설명해도 마찬가지다.

한 판사는 “소송에서 한쪽이 저런 식으로 나오면 그 사람의 말이 일부는 사실이더라도 그것마저도 믿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사법의 틀을 넘는 정치 행위”라고도 했다.

그 정치 행위의 이유는 이화영씨 변호인이 법정에서 “이재명의 무죄가 이화영의 무죄”라고 한 데서 드러난다. 이 대표의 대북 송금 문제는 검찰이 수사 중이지만 아직 기소되지 않았다. 이미 이 재판의 목표는 이화영의 무죄가 아니라 ‘이재명 지키기’가 된 것이다.

이 법정에서는 유독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자백한 남편에게 아내가 ‘정신 차리라’며 법정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재판이 다 끝나가는 시점에 판사 기피신청을 내 70일 넘게 공전됐다.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한 후에는 ‘방탄’을 넘어 검사를 고발하는 행태로 이어졌다.

정치가 사법을 뒤덮으면 증거로 주장을 입증하는 대신 다수의 힘으로 사법부와 수사기관을 압박하는 행태만 남게 된다. 소위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결과다.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른 판사의 판단만이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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