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쓴 日역사교과서, 일본 우익 공격 받을까 우려"

조채원 2024. 5.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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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담화 넣어 위안부 강제성 서술…'레이와'와 대조
독도 입장도 가능한 객관화…보통 사람들 피해에 집중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수집한 일본의 역사교과서들. 맨 위의 것이 마나비샤 출판사 중학사회 역사 분야 교과서다. /조채원 기자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좀 걱정되네요. 이 교과서가 한국에서 좋게 소개되면 (출판사가) 일본 우익들 공격을 더 받을까봐."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기자에게 '마나비샤 출판사 교과서'를 건네며 한 말이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오랜 기간 연구해 온 그는 지난달 27일 <더팩트>와 인터뷰([인터뷰] 이신철 "역사갈등 해결 측면에선 한일관계 더 나빠졌다")에서 일본 우익 사관을 가장 적극적으로 투영한, '레이와 교과서'의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 통과를 염려했다. 우려는 4·10 총선이 끝난 후 현실화했다. '레이와'는 나루히토 천황이 즉위한 2019년 5월 1일 자정부터 지금까지 사용하는 일본 연호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3월 강제동원 해법을 내놓았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일본의 태도는 한국 국민들을 더욱 자극한다. 식민지 피해를 입은 나라 국민도 납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교과서는 없느냐는 기자 성토에 이 위원장이 소개한 것이 바로 마나비샤 교과서다. 마나비샤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며 전·현직 역사 교사들이 모여 설립한 출판사다. 독도 영유권 문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 한일 양국이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사안 서술을 가능한 객관화하고 침략전쟁을 피해자 관점에서 교육한다는 점에서 모범사례라 할 만 하다.

마나비샤 교과서는 2016년부터 2020년, 그리고 올해까지 세 차례 검정을 통과했다. 채택률은0.5%(약 5000권)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채택률을 낮추려는 극우 세력 압박에 시달린다. 자신을 졸업생 혹은 학부모라고 주장하며 보내 온 항의엽서는 대부분은 동일한 모양으로 조직적 활동이 의심됐다.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 점령'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05년 1월 다케시마를 일본의 영토(시마네현)로 편입하기로 각의에서 결정했다"고만 쓴 이 교과서는 극좌반일인까. 마이니치 신문 2017년 8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마나비샤의 교과서를 편집한 '어린이와 배우는 역사교과서 모임'의 담당자는 집필 의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각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눈을 의식하며 몇 년이나 연구를 거듭해 만들었다"며 "역사적 자료를 넣되 해설을 붙이지 않아 아이들 자신의 의문을 존중해 어떤 답을 낼 지는 본인에게 맡겼다"고 밝혔다.

일본 마나비샤 출판사가 발행한 '함께 배우는 인간의 역사' 중학 사회 교과서. 해당 책은 2020년 검정 통과본이다. /조채원 기자

◆ 日각의 결정에 희석됐지만…위안부 '강제성' 넣은 유일한 교과서

조선인 강제연행 표현을 서술하지 않거나 종군위안부에서 '종군' 표현 삭제는 모두 우리나라의 국회 격인 일본 각의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 일본 각의는 2021년 '강제연행'에서 억지로 데려갔다는 의미의 '연행'은 부적절하며 '종군위안부'가 아닌 '위안부'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공식 견해를 채택했다. 위안부의 군 개입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담화를 사실상 부정하는 반동적 태도다.

올해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 중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담은 것은 마나비샤 교과서가 유일하다. 마나비샤 교과서는 위안부에 대해 1993년 고노 담화와 전시 여성 인권침해의 관점에서 1991년 김학순 할머니 증언 사실을 언급했다.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한국인 최초로 공개 증언한 인물이다.

이 교과서에도 일본의 전쟁 범죄 책임을 희석하는 일본 정부 견해가 추가로 반영돼 있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고노 담화를 소개한 내용 다음 '일본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설명이 병기됐다.

"한국 정치단체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동상을 세우고 세계의 많은 도시에도 계속 설치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건립된 위안부상에는 수십만 명의 여성이 일본군의 노예가 돼 대부분 생명을 잃었다는 설명이 있다. 그러나 일본군이 조선의 여성을 강제연행했다는 사실은 없고, 그들은 보수를 받고 일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그들을 종군기자나 종군간호부와 같이 군대를 따라 전장에 데리고 다녔던 사실은 없다. 그들 대부분이 사망했다고 하는 사실도 없다. 사실에 반한 것이 세계에 선전돼 한국에서 사죄와 배상을 청구하게 된 원인은 한 일본인(요시다 세이지)의 거짓말과 관련이 있다." -레이와 교과서 中-

레이와 교과서는 위안부라는 같은 사안에 대해 완전히 대조되는 서술을 보여준다. 아시아평화연대에 따르면 레이와 교과서는 위안부에 대해 가장 많은 내용을 기술하며 대부분 우익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실었다. 위안부가 일본군에 의해 강제 동원됐다는 사실을 적극 부정하는 것을 넘어 위안부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오도한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증언했던 요시다 세이지가 증언 일부 오류를 시인한 것과, 그 증언을 토대로 작성되었던 아사히 신문의 해당 부분에 대한 기사 취소를 마치 전체 증언이 거짓인 것처럼 기술하면서다.

2018년부터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 국가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2021년 8월 15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추모와 기림 공간에 공개증언 30년을 맞은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사진이 놓여 있는 모습. /뉴시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1993년 위안부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 사죄한 고노담화가 나왔다'는 문장 바로 뒤에 요시다가 증언의 일부 오류를 인정한 사실을 배치했다"며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잘못됐거나 철회되어야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장 강력하게 왜곡했던 아베정권조차도 고노 담화를 공식 부정하지는 않았다"며 "일본 문부과학성이 이 같은 서술을 통과시킨 것은 매우 심각한 역사왜곡을 묵인·조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식민지 시혜론'과 대조

마나비샤 교과서는 일제 조선총독부 통치에 대해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라는 항목에서 당시 조선인의 삶에 대해 기술한다. 조선총독부가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한다는 구실로 농민의 토지를 맹렬히 장악했고, 일상생활 전반에서 헌병들의 폭력적 탄압이 있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일본의 조선 병합 과정 중 명성황후 시해사건, 의병운동을 언급해 일본의 조선 합병이 조선의 의사에 반한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한일병합의 합법성 또는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에서 개발이 이뤄져 조선인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주장인 식민지 근대화론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일본은 안전보장을 위해 조선반도의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일본이 주도해 조선의 근대화를 진행하고자 했다."

"(조선)대신 일부는 (보호조약) 조인에 반대했지만 (고종) 황제 스스로 설득하여 조인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

"병합 후 설치된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를 행하고 철도, 댐, 상하수도, 병원, 전화, 우편 등의 사회기반을 정비하고 있었다. 일본이 조선반도에 설치했던 철도는 5000km에 달했다. 일만 국경(일본-만주, 현재 중국-북한)에 건설했던 수풍댐의 발전 능력은 당시(1942년) 약 60만kW로 현재도 북한의 전력을 담당한다. 많은 학교를 개설해 일본어와 함께 당시 사용빈도가 줄어들고 있던 한글 교육도 행했다." -레이와 교과서 中-

레이와 교과서는 일본이 주도한 한일병합을 조선이 원했고 보호국이 된 조선에 시혜를 베풀었다는 데까지 나간다. 불법조약 체결이나 강제병합의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발전 관련 자세한 수치를 나열해 일본이 한일병합 후 조선에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었는지 강조하는 방식이다. 한글 보급도 조선총독부의 공로인 것처럼 썼다.

◆다시는 전쟁 없도록…보통 사람들 겪은 피해·고통에 집중

침략 전쟁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면 '어떠한 이유로도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주기 어렵다. 마나비샤 교과서가 차별화하는 점은 침략전쟁으로 고통받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서술이 다각도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반면 레이와 교과서는 강제동원 피해를 1944년 이후로 축소시키고 그마저도 '징용공에게는 임금이 지불됐다'고만 말한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표현으로 일본 공문서에서 사용이 금지된 대동아전쟁 용어도 들어있다. 청일전쟁 등 팽창정책의 일환으로 수행됐던 전쟁에 대한 승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서술도 담겼다. 패전국과 주변국이 겪었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군함도는 하시마탄광(세계유산)이라는 제목의 사진으로 소개한다.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집합주택(아파트)이 있었고 1960년대에는 도쿄 이상의 인구밀도였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군함도 표지판에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임을 병기하라는 유네스코의 시정 지시는 현장은 물론 교과서에서도 반영되지 않았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제공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대부분 교과서는 교과서가 기득권, 역사의 주역들에 초점을 맞췄다면 마나비샤 교과서는 비주류, 약자의 시선을 담는 데서 차별화한다"며 "전쟁 뿐 아니라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나 자연 환경 문제 등 여러 사회 현상의 이면도 생각해보게 한다"고 평가했다. 이 소장도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입은 자국민 뿐 아니라 외국인까지 서술 범위를 넓힌 것, 이라크 전쟁·우크라이나 전쟁 서술 사례 등을 들며 "마나비샤는 전쟁이 보통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고통을 가져다 준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일제강점기를 독립운동사 중심으로 서술하는 한국 교과서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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