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88] 울릉도 나리 ‘맛의방주’ 밥상
새벽까지 깃대봉에 오를 생각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일어나자마자 밖을 보니 미세 먼지로 코끼리바위가 흐릿하다. 동해바다 울릉도마저 미세 먼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산에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나리분지로 향했다. 지난번 울릉도를 찾았을 때 눈인사만 나누고 돌아섰던 ‘맛의방주(Ark of Taste)’ 밥상을 받고 싶었다.
나리분지는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칼데라 화구가 함몰되어 만들어진 화구원이다. 울릉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지만, 용암이 부서진 흙·모래·돌멩이로 이루어진 땅이라 물을 담지 못한다. 그래서 벼농사는 어렵고, 섬말나리·취·고비·명이·부지깽이·물엉겅퀴·옥수수·홍감자 등 밭농사를 한다. 봄철 곡식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올라오는 섬말나리 뿌리나 명이 줄기를 곡물 가루와 버무려 범벅을 만들어 끼니를 해결했다.
천부에서 나리분지로 가는 길에 밭에서 명이를 뜯는 주민을 만났다. 명이 줄기와 옥수수 가루로 범벅을 만들어 식량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잎으로 김치를 담그고 장아찌를 만들어 먹지만 당시에는 줄기를 이용했다. 남쪽 사동마을에 거주하는데 산을 넘어 북쪽 산자락까지 넘어와서 농사를 짓는다. 명이나물을 찾는 사람이 많은 탓이다. 명이뿐만 아니라 나리분지에서 채취한 산나물은 울릉도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렇게 울릉도 산나물의 가치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맛의방주’다.
맛의방주는 잊혀 가는 음식 맛을 재발견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종자와 품목을 찾아내 기록하는 슬로푸드 프로젝트다. 지난해 말까지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는 110여 개 품목의 맛의방주를 발굴했다. 울릉도에서 가장 먼저 맛의방주에 등재된 품목은 섬말나리와 칡소다. 이를 기반으로 2013년 11월 슬로푸드 울릉지부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손꽁치, 울릉홍감자, 옥수수엿청주, 긴잎돌김, 물엉겅퀴, 두메부추, 삼나물, 참고비, 명이나물 등도 추가되었다.
나리분지에 이러한 맛의방주로 등재된 산나물을 이용해 밥상을 내놓는 곳이 있다. 밥상에 최소 세 가지 이상의 맛의방주 품목을 올린다. 나 홀로 주문이지만 두메부추장아찌, 물엉겅퀴된장국, 명이나물, 삼나물이 올라왔다. 여기에 옥수수로 만든 술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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