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대해줘서 좋아요”

한겨레21 2024. 4. 3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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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에서도 아이는 자라요]조현병 환자는 특수교육 대상자로 보지 않는 공교육… 지역의 대안학교에서 뜻깊은 시간 보낸 나무
일러스트레이션 이지안

돌아온 도시는 경기도 파주출판도시에서 걸어서 30분, 자전거로 15분이면 다닐 수 있는 신도시였다. 나무는 중학교 3학년에, 작은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모두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낯선 도시, 하지만 신도시답게 마을은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고, 아파트 단지 앞에는 농구장이, 바로 옆에는 청소년센터가,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좋은 도서관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동네 이름도 ‘책향기 마을’. 뭔가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마을에는 뜻하지 않게 좋은 이웃이 많았다. 예전 마을에서 알고 지내던 인연이 연결되기도 하고, 도서관 독서모임에서 만나기도 하고. 그들은 우리 가족을 환대해줬다.

대안학교로 갈 수밖에 없던 아이

하지만 한 가지 안 좋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무의 증상이었다. 여전히 기복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특수학급에 배치됐다. 하지만 특수교사는 정신장애 학생이 처음인지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나무의 컨디션이 문제였다. 나무는 증상과 약물 부작용 때문에 특수학급에서도 엎드려 있기만 했다.

쉽지 않은 학교생활이었지만 나무는 서울 대학로에 있는 병원과 파주 학교를 오가며 겨우 출석일수를 맞추고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도 특수교육 대상자로 신청했다. 두꺼운 서류를 준비해서 교육지원청에 제출했고 특수교육 대상자 승인을 받았다. 그다음은 경기도교육청 심사였다. 그곳에서는 탈락이었다. 탈락 이유는 나무의 기능이 많이 회복됐다는 것. 고등학교 특수반은 중학교 특수반에 견줘 학급 수가 현격히 줄어든다. 게다가 의무교육도 아니기 때문에 특수교육 대상자 심사 기준이 높다. 신체 장애만 대상이고, 정신장애는 ‘해당 사항 없음’이었다. 기능이 회복돼서 특수교육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니. 하루에 12시간을 자야 하고, 정신증으로 인한 인지 장애를 겪는 아이에게 일반학급에서 공부하라니. 아침 8시에 등교하고 자율학습을 하는 입시 위주의 일반학교에서 이 아이가 견딜 수 있을까. 나는 분노했다. 행정소송을 할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나무에게 에너지를 쓰기에도 벅찼다. 고민 끝에 지역에 있는 대안학교 문을 두드렸고, 나무는 대안학교 고등과정에 들어갔다.

대안학교에서 나무는 선생님들이 사람으로 대해줘서 좋다고 했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줘서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반학교에서는 사람으로 대해주지 않았다는 것인데. 아픈 와중에도 나무는 자신이 존중받는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알았다. 어쩌면 아프기 때문에 더 잘 알아챘을 것이다. 조현병 환자들은 인지는 엉키고 감각은 예민하다. 아프기 때문에 존중이 더 중요한데, 아이는 일반학교에서 무시와 멸시를 받았던 것이다.

일반학교에선 받지 못한 교육, 만나지 못한 선생님

대안학교에서 나무는 자전거를 배웠다. 담임교사와 함께 자전거를 탔고, 한 학년 위의 형과 그의 아빠, 그리고 나무, 이렇게 셋이 아침마다 자전거로 등교했다. 왕복 20㎞가 넘는 거리였다. 어느 날은 산길을 오르기도 했고, 어느 날은 들판을 달리기도 했다. 나무는 그때 좋아하기 시작한 자전거를 지금도 좋아한다.

또 나무는 대안학교에서 곤충에 대해 공부했다. 아프기 전부터 좋아했던 장수풍뎅이, 사슴벌레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곤충 표본을 해서 액자를 만들고 파워포인트로 곤충 종류와 특성을 소개하는 자료를 만들어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어나 수학 수업은 따라가기 어려웠다. 벌써 4년 동안 공부하지 못한데다 인지 기능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과정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배낭여행이었다. 한 번은 일본으로, 한 번은 라오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약을 먹어서 몸이 무거운 아이를, 약물 부작용으로 야뇨를 종종 하는 나무를 데리고 5박6일 동안 여행을 다녀온 선생님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나무는 대안학교 선생님과 지금도 연락한다. 분기에 한 번 정도 만나 저녁을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심지어 자취방에도 초대했다. 선생님이 제자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다고 했다고. 일반학교에서는 만나지 못한 선생님이다.

대안학교에서의 뜻깊은 시간도 3학기로 끝났다. 나무는 2학기 때 형들과 함께 고졸 검정고시를 봤다. 아프기 전에 공부한 것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고졸 검정고시를 치른데다 같은 학년 학생이 나무 혼자였기 때문에 들어갈 수업도 애매했다. 그렇게 3학기 만에 고등과정을 마친 나무는 지역 청소년센터에 다니며 홈스쿨링 아닌 홈스쿨링을 하게 됐다.

나무가 일반고등학교 대신 대안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나는 다시 출근을 준비했다. 여전히 기복이 있지만 나무의 치료 방향이 정해졌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앞으로 오랫동안 조현병과 함께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무는 치료와 일상을 균형 있게 살아가고, 작은아이도, 남편도, 그리고 나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신’을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주변인 돌봄과 지지로 세운 일상

새벽에 일어나서 그날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퇴근하고 다시 집안일을 하면서 나무를 돌볼 때, 내 어머니 영자씨가 지원군으로 나섰다. 매주 월요일 부산에서 올라와 아이들을 챙기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금요일에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나는 새 직장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그때 영자씨 나이가 70대 중반이었다.

영자씨의 돌봄 덕분에, 학교와 이웃들의 응원 덕분에, 우리 가족의 도시 생활은 조금씩 안정돼가는 듯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위치에서 살아내려고 애썼고, 힘들었지만 견딜 만했다. 나무의 재발 전까지는.

윤서 여성학 박사

*연재 소개: ‘정신병동에서도 아이는 자라요’는 16년째 조현병과 동거하고 있는 28살 청년 ‘나무씨’(가명) 이야기를 어머니 윤서(필명)가 기록한 글입니다. 정신질환을 가지고도 성장하고 살아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에 질문을 던지고 질병과 공존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림을 그린 이지안은 <천장의 무늬> 필자(이다울에서 개명)로 조현병을 앓는 나무씨의 시점에서 그림을 그릴 예정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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