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용 변기 늘려라”…암스테르담 ‘화장실 성평등’ 운동 결실
2015년 시내에서 소변 급해
골목서 해결하다 들킨 여대생
경찰 벌금형에 불복해 소송
“남자 소변기서 해결했어야”
법원 판결에 여성 분노 물결
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
“암스테르담 같은 관광도시에 여성들이 갈 화장실이 없다는 게 부끄럽지 않나요?”
네덜란드 한 여대생이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 남성용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문제 제기하며 시작된 네덜란드 ‘화장실 성평등’ 운동이 9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29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암스테르담 시의회는 여성과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오는 10월 착공하며 총 400만유로(약 59억원)가 투입된다.
시작은 2015년이었다. 당시 21세였던 헤이르터 피닝은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소변을 보고 140유로(약 2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친구들과 놀던 피닝은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양변기가 있는 공중화장실은 약 2㎞ 떨어져 있었고, 주위 상점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결국 골목에서 소변을 보다 경찰에 발각됐다. 당시 암스테르담 시내에 남성용 소변기는 35개 설치돼 있었지만 양변기가 있는 공중화장실은 3곳뿐이었다.
피닝은 벌금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여성도 이용 가능한 공중화장실이 부족한 도시 구조를 고려하면 자신의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억울한 마음에 시작한 싸움은 아니었다. 당시 피닝은 “이 문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며 “모두가 접근 가능한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피닝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사는 “여성용 화장실이 부족하다면 남성용 소변기에서 해결했어야 한다” “조금 불쾌하겠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후 법원 판결에 분노한 여성들의 시위가 전국에서 이어졌다. 일부 여성들은 교육문화부 장관에게 ‘네덜란드의 화장실 평등’에 대한 요구를 담은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수년에 걸친 싸움은 결국 정치권에도 닿았다. 암스테르담 시의원들 주도로 공원에 이동식 화장실이 배치됐고, 2019년에는 공중화장실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돼 의회 문턱을 넘었다. 예산 문제로 시행을 보류해오던 암스테르담 시의회가 지난 15일 예산 집행을 승인하면서, 양변기 등을 갖춘 화장실이 올해 말부터 설치된다.
피닝은 “지난 9년은 때때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고 인내심이 필요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가디언은 “많은 도시가 여성의 외부 활동이 제한돼 있던 과거에 설계됐다”며 “이런 상태로 방치할 경우 일부 시민들이 배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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