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아파 병원 갔는데 … 도수·운동치료 500만원 패키지 권해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2024. 4. 3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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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개혁 없인 의대증원 무용지물
"실손 활용땐 370만원 환급"
대놓고 환자에게 과잉 영업
도수치료 1회 결제 거부하고
10·20회 선수납 요구하기도
고무줄 비급여 진료비 방치땐
피부과 등 인기과 쏠림 못막아

◆ 실손보험 대해부 ◆

환자 C씨는 왼쪽 무릎과 발목 통증으로 서울 B의원에 내원했다. 의사는 왼쪽보다 오른쪽 다리가 구조적으로 이상이 있다며 도수·운동치료를 병행하자며 500만원 선수납을 요청했다. C씨가 의료비 부담을 호소하자 B의원은 실손보험을 이용하면 370만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B의원은 도수치료와 필라테스를 병행했고 보험사에는 실손보험금 지급이 가능한 도수치료로 비용을 청구했다.

사실상 통제가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과잉 의료·의료쇼핑으로 '실손보험 빼먹기'가 이뤄지고 있고 이 같은 도덕적 해이는 의료비 과잉 지출로도 이어진다. 일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소비자의 실손보험 가입 여부와 보험 유형(1~4세대)을 파악해 치료 플랜을 기획하는 등 비윤리적 행태도 나오고 있다. 실손보험 빼먹기는 보험료가 인상돼 선량한 가입자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 있고 돈벌이 수단이 돼 필수의료에서 인력이 빠져나오는 '의료 편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0일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정형외과 전문의 A씨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손보험 악용 행태로 선수납과 여러 치료를 묶어 진행하는 패키지 등을 지적했다. A씨는 "도수·물리 치료 몇 번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면 내원해 진찰하며 상황을 보는 게 맞을 텐데 실손보험 한도에 맞춰 10회씩 미리 결제하라고 하는 병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선수납과 패키지가 이뤄지는 대표적인 것이 비급여 물리치료이고 이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크게 늘어왔다. 특히 동네의원인 1차 병원에서 지급이 급증했다. 매일경제가 4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메리츠화재·KB손해보험·현대해상)의 비급여 물리치료 실손보험금 지급액을 집계한 결과 1차 병원의 보험금 지급 규모는 2019년 1448억원에서 지난해 4642억원으로 3.2배 증가했다.

매일경제에 현실을 전한 A씨는 의료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 실손보험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비급여 진료비 책정을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대로라면 개원가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실손보험을 악용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 비급여 사냥이 용이한 곳으로 의료인력이 계속 쏠릴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는 "피부시술이나 성형수술은 비급여 항목이어서 별다른 관리 없이 병원 마음대로 가격을 정하고 있다"며 "소아과·산부인과·일반외과 등을 선택해 3~4년간 수련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돼도 피부과 일반의사로 취업해 버는 것보다 수입이 적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없다 보니 상당수 젊은 의사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수련의 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바로 월 1000만원을 준다는 피부과·성형외과의 일반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필수과에서 전공의(레지던트)로 경력을 쌓고도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보수가 좋은 피부과·성형외과·정형외과 등 인기 과목에 일반의로 취업하는 사례도 있다고 A씨는 전한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이들 인기 과목 개원가에서 전속으로 근무하는 일반의는 2017년 128명에서 지난해 9월 245명으로 늘었다. 또 매년 300명 넘는 전공의가 수련하다가 중도 포기하기도 한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의료계 안팎에서는 의과대학 졸업 후 전공의 과정을 밟지 않고 일반의만 돼도 미용의료 등으로 충분한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이런 배경에는 실손보험으로 비급여 진료 수입을 거두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A씨는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찾는 환자 수가 엄청난 유일한 나라라는 꼬리표를 떼려면 정부가 비급여 항목 가격을 관리해 한쪽으로 지나친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실손보험 빼먹기 없이도 개원의들이 전문성과 꾸준한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A씨는 "레지던트를 마치고 개업하더라도 대학병원급 시설을 자기 개인병원에 둘 수 없다 보니 결국은 돈 되는 진료로 전환하게 된다"며 "가령 신경외과 의사라면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까지는 뇌혈관 수술 등에 대한 수련을 거치지만 개업한 뒤에는 돈이 되는 척추 수술에 집중할 수밖에 구조"라고 말했다.

A씨는 해결책으로 미국 의료 현장에서 활용하는 '어텐딩 시스템(attending system)'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1차 병원급에서 근무하지만 전문의·레지던트 과정을 밟은 의사가 종합병원 등 시설이 좋은 다른 병원에 자신의 환자를 입원시키고 해당 병원의 수술실·장비·인력 등을 활용해 전문적인 치료·수술 등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A씨는 "막대한 교육비를 들여 레지던트까지 의사를 잘 키우고 나서 결국은 수술하지 않는 의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우리 의료의 현실"이라며 "실손보험제도 개편과 함께 개원의들이 전문성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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