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면책제도 문턱 확 낮춰 재기 도울 것"

강민우 기자(binu@mk.co.kr) 2024. 4. 3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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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간다'는 막연한 기대로 도산 신청을 주저하면 재기할 기회를 영영 놓칠 수도 있습니다."

안병욱 서울회생법원장(사법연수원 26기)이 법원 앞에서 망설이는 벼랑 끝 채무자를 병원을 겁내는 환자에 빗댔다.

안 법원장은 "대상 선별 등에 많은 비용이 드는 다른 복지 제도와 달리 도산 제도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신청자에게 꼭 필요한 금융복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법원장은 "조세채권도 회생채권과 같은 수준으로 조정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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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욱 서울회생법원장
벼랑 끝 채무자 매년 느는데
겨우 절반만 조정제도 덕봐
빚 돌려막기 악순환 끊고
노동시장 복귀로 공동체 이익
신용정보원과 데이터 협력
맞춤형 안내로 접근성 높이고
기업회생 활성화도 나설 것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막연한 기대로 도산 신청을 주저하면 재기할 기회를 영영 놓칠 수도 있습니다."

안병욱 서울회생법원장(사법연수원 26기)이 법원 앞에서 망설이는 벼랑 끝 채무자를 병원을 겁내는 환자에 빗댔다. 고통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병원을 찾는 이들의 처지가 부채의 굴레에서 고생하다 뒤늦게 법원 문을 두드리는 채무자와 다르지 않아서다. 개인 파산 신청자의 절반 이상은 경제적 파탄에 직면한 뒤 적어도 4년을 버티다 법원을 찾는다고 한다.

안 법원장은 고통을 참지 말라고 당부했다. 치료를 빨리 받아야 건강을 되찾을 확률이 올라가듯 면책도 서두를수록 새출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고금리에 시름하는 채무자는 연일 늘고 있다. 개인 도산 사건은 매 순간 역대 최대치를 경신 중이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개인 회생 사건은 2만5276건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규모인 1만9833건과 비교해 27.1% 급증한 건수다. 법원 밖 현실은 더 심각하다. 제도의 도움을 받는 대신 돌려막기로 금융기관을 전전하는 채무자가 많다. 도산법연구회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과중채무 상태의 금융채무 불이행자 중 오직 30%만이 법원에 개인 회생 또는 파산을 신청했다. 개인워크아웃 신청(25%)을 더해도 제도의 도움을 받은 비율이 55%에 그쳤다. 45%의 한계 채무자는 공적 면책 제도의 밖에 있는 셈이다.

'경제적 낙오자'란 낙인이 채무자 구제의 걸림돌이란 지적이다. 안 법원장이 '도산 제도는 사회 전체에 이롭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기에 성공한 이들이 노동에 복귀해 얻는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하면 채권자들도 손해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금이 전혀 들지 않고 공적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 점도 도산 제도의 장점이다.

안 법원장은 "대상 선별 등에 많은 비용이 드는 다른 복지 제도와 달리 도산 제도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신청자에게 꼭 필요한 금융복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법원장은 면책 제도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리도록 법원 문턱을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례로 신용정보원과 추진 중인 '신용정보데이터 협력사업'이 있다. 법원이 채무자의 신용정보를 직접 취득해 각종 서류 제출 부담을 덜어주고, 저마다의 상황에 적합한 채무조정 방법을 상담해주는 콘셉트다. 협력사업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대법원 규칙을 개정할 예정이다.

기업 회생 등 도산 신청도 이를수록 좋다. 그러나 비용 문제, 경영권 상실 우려 등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은 게 현실이다. 작년에 법인 회생이 약 1000건, 법인 파산이 1600건으로 크게 늘었지만 경제 규모와 상황을 고려하면 여전히 많은 기업이 홀로 어려움을 감내한다는 게 안 법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다만 법률 개정 사안이 많아 국회의 협조가 필수라고 덧붙였다.

연대보증 채무 경감이 대표적이다. 국내 상당수의 금융기관은 여전히 기업 대표에게 연대보증을 요구한다. 문제는 법인 회생 절차로 회사의 채무가 조정되더라도 연대보증 채무는 그대로라는 점이다.

세금을 먼저 갚도록 규정하는 조세채권 우선권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무서는 세금을 전액 변제받아가는 반면 상거래채권자들은 채권변제율이 낮아 상당한 손실을 떠안게 된다. 안 법원장은 "조세채권도 회생채권과 같은 수준으로 조정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생절차 종결 후의 경영권 보호도 신경 쓰고 있다. 채무조정 과정에서 지분이 축소될 것을 우려하는 기업이 많아서다. 그는 "이익이 발생하면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상환전환우선주를 회생계획안에 포함할 수 있다"며 "지분을 회수해 경영권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강민우 기자 / 사진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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