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진하고 심포지엄 연 서울의대 교수들…관심은 ‘적정 의사 수’

유병훈 기자 2024. 4. 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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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대 교수 비대위 심포지엄
“적정 의사 규모 추계하자”
정부 참고한 보고서 저자들은 ‘선긋기’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대병원 제일제당홀에서 열린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 긴급 심포지엄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19년 동안 의대 정원이 동결됐다는 이유로 의사 수가 늘지 않은 것처럼 말하지만, 의사 증가율은 굉장히 높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는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 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개최한 긴급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박형욱 교수는 이날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대한 발표에서 “전문의들이 비급여·미용시장으로 진출하는 이유도 필수의료가 초(超)저수가의 박리다매로 유지되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인데, 정부는 비급여를 탓하면서 초저수가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서울대의대 교수 비대위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이날 하루 집단 휴진하고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 모색이 논의됐다.

◇ 의료계 “정부가 사실 왜곡… 문제 본질 가려”

오주환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이날 발표자로 참여해 “정부가 의대 정원이 동결돼서 의사 수가 똑같다는 듯 말하지만 의사 수는 지난 10년간 2만명 늘었다”며 “의사들의 은퇴 연령이 뒤로 밀려서 나온 현상”이라고 밝혔다.

오 교수는 “정부는 늘어난 의사들이 지역·필수 의료 강화로 이어진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기과와 비인기과의 지원자 수가 양극화되고 있어 다른 가정이 없다면 정부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건의료비 지출이 급격히 늘어 16%까지 달할 것이라고 했는데, 미국이 같은 상황에서 행위별 수가제도를 가치기반의료로 전환해 증가세를 멈췄다”며 “의사 사회에서는 가치기반의료를 나쁜 것으로 생각할 텐데, 여러분을 구해 줄 동아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적정 의대 증원 규모를 연구해 오는 2026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에 반영하자는 방재승 서울대 의대 비대위원장이 지난 24일 공개한 제안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는 지난 29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의사와 의사 직계 가족으로 한정해 의사 수 추계 연구 논문을 공모하기로 했다.

◇ 정부의 2000명 증원 근거는 보고서 3개… 저자들은 “논리적 귀결 아냐”

서울대 의대 비대위가 추계 공모에 나선 것은 증원 여부와 증원 규모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당초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제시한 근거로 한 것은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의 지난 2020년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 추계 연구’, 지난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 부문 파급효과 전망’ 등 3가지 보고서다.

보고서들은 각각 의사들의 연령별 생산성과 은퇴 연령, 업무량, 연간 진료 일수 등을 주된 변수로 삼았다. 정부는 3개의 보고서 모두 오는 2035년에 의사 인력 1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며, 여기에 취약지역에 필요한 의사 인력 5000명을 더해 1만5000명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고서의 저자들은 2000명 증원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정부가 제시한 2000명의 수치는 여러 시나리오 중 의료 개혁이 없을 때 굉장히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며 “현실적으로 ‘1000명보다 적은 수를 증원해야 한다’면서 의료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보고서를 작성한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오는 2035년 1만명이 부족하다는 추계는 맞다”면서도 “보고서는 의대 정원을 점진적으로 늘려 2050년까지 2만2000명으로 늘리자는 것이 결론이었다”고 말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를 주도한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1만명 부족 추계는 맞다면서도, 2000명 증원의 근거는 아니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연구자는 정책 제언을 할 수 있고 정부가 정책 결정을 할 때 그런 제언들도 고려하고 참고를 한다”면서 “다른 단체에서 요구하는 부분들까지 고려해서 정책 결정을 하고, 정책 결정의 몫은 정부가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정부 추계는 비과학적” 주장하는 의료계도 추계 움직임은 미적지근

의료계는 정부의 추계 결과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합리적·과학적 근거에 따른 통일된 안을 의료계가 가져온다면 2026학년도 대학 입시에 적용할 의대 증원 문제를 재논의할 수 있다”는 정부의 역제안에 별도의 추계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달 19일 삼성서울병원 교수인 홍승봉 대한뇌전증센터학회 회장이 “미국·일본·대만의 사례를 참고해 10년 동안 1004명씩 늘리자”고 제안했지만 과학적 근거를 밝히지는 못했다.

대한의사협회와 전국의대교수협의회는 정부의 통일안 제시 요구에 별다른 반응 없이 내년도 입시 증원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로선 서울대 의대 비대위만이 추계 연구 공모에 나섰다. 다만 서울대 의대 비대위도 추계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증원 절차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단체가 서울대 의대 비대위의 결정에 통일된 지지 입장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보건복지부 역시 서울대 의대의 제안을 두고 “지난해 의정협의체에서 충분히 논의가 이뤄졌고, 1월에도 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제시 요구를 외면했다”며 “내년도 증원 절차를 멈출 수 없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 이해관계자를 모두 모아 구성한 의료개혁특위를 구성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별도로 논의하지 않을 전망이다.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주요 의사단체들이 불참을 선언했고, 노연홍 특위 위원장도 “의대 증원의 효과 원리 등은 논의할 수 있지만 구체적 증원 계획은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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