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에 진료 연기라니”…병원 떠난 의사, 절규 쏟은 환자들

강윤서 기자·정윤경 기자 2024. 4. 3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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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세브란스 병원 소속 교수, 30일 휴진 돌입
불안 떠는 환자들 “항암 무한 지연…암세포 다시 살아나진 않을지”

(시사저널=강윤서 기자·정윤경 기자)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휴진을 예고한 4월30일 서울대병원 암센터에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병원에서 '진료 연기' 전화가 와 그럴 순 없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결국 병원도 오전 일찍 진료를 받으러 오라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 불안에 떨어야 하는 지 암담하다."

서울대의대 교수들이 휴진을 예고한 30일. 오전 9시반께 찾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서울대병원 암센터는 평소 대비 한산한 모습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림프암 환자 이병우(가명·84)씨와 딸 이가영(가명·49)씨는 전날(29일) 병원으로부터 '진료 연기'라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울산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온 이씨는 "림프암은 전이 속도가 엄청 빠르다. 그만큼 교수의 존재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돼 있다"면서 "병원에 올 때마다 혹시라도 저희 교수님이 (병원을) 떠난다고 하실까봐 늘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서울대·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일반 환자의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 중에서 휴진이 시행된 건 처음이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교수들 중 개별적으로 휴진을 신청한 사례가 실제로 있다"면서 "휴진 신청 시 기존 외래 일정을 필수적으로 조정해야 해서 대상 환자분께는 사전 안내가 나간 상태"라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휴진을 예고한 4월30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에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이날 찾은 의료 현장은 휴진 참여 교수의 규모가 크지 않아 우려했던 '대란'은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환자들은 그야말로 '폭풍전야'라며 담당 교수가 사직하거나 진료·수술을 중단하진 않을지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이아무개(56·여)씨는 "뉴스를 보고 휴진 소식을 듣긴 했는데 병원에 전화해서 확인하기가 두려웠다"며 "괜히 물어봤다가 진료가 취소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일단 조마조마하면서 병원에 왔다"고 말했다.

췌장암 항암 치료를 받다가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온 이아무개(67)씨는 병실이 부족해 입원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씨의 아내 김아무개(65)씨는 "피부에 알레르기가 심하게 올라와서 어제 응급실도 다녀왔다"면서 "의료진은 입원해서 치료 받으라고 하는데 정작 병원은 전공의가 없어서 입원 병실이 부족하다고 그냥 가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남편의 항암 치료도 계속 지연되고 있는데 줄어들고 있는 암세포가 다시 살아나기라도 할까봐 불안해 죽겠다"고 성토했다.

4월3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들이 무인수납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진료 볼 수 있나"…휴진 예고에 환자는 혼란 가중

이날 찾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도 치료가 중단되거나 지연될까봐 마음을 졸이는 환자와 보호자들로 가득했다. 병원 곳곳에서 '오늘 진료 하는 거 맞느냐'며 걱정과 혼란에 빠진 대화가 이어졌다.

외래 검사·예약 등 각 대기석에 앉아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30여 명 안팎으로 한산한 모습이다. CT·MRI·초음파 등 예약을 변경하는 곳과 채혈실도 마찬가지였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면서 병원 측이 예약 환자 위주로 진료를 보고 있는 데 따른 여파에서다.

폐렴과 결핵 증세가 생겨 병원을 찾은 신아무개(56)씨는 "휴진 소식을 듣고 불안한 마음으로 일단 병원에 왔는데 6주 전에 진료를 예약해서 차질이 없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결핵은 신고와 격리가 필요한 제2급 법정감염병"이라며 "저처럼 약 처방이 필수인 환자들은 의사가 휴진한다고 하면 생명과 직결된 문제 발생할 수도 있다. 위급한 환자에 대한 대책도 없이 휴진한다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토로했다.

지난 코로나19 펜데믹 때 뇌출혈로 쓰러진 적이 있는 신아무개(66)씨는 당시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했다. 신씨는 "사고 당시 코로나 검사를 받느라 1시간30분 간 방치돼 진료를 늦게 받아서 아직까지 고생하고 있다"며 "만약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면 그때처럼 또 방치될까봐 두렵다"고 우려했다. 이어 "환자 입장에선 아무리 시급해도 환자를 두고 병원을 나가는 건 도저히 공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4월3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정문 앞에서 의료진이 피켓을 들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한편 이날 오후 2시께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필수의료정책, 의대 정원 확대 원점 재논의' '전공의와 학생이 없는 한국 의료는 미래도 없습니다' '의대 정원 늘린다고 훌륭한 의사가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병원 정문 앞으로 나왔다. 

피켓 시위에 참여한 한 교수는 "(외래 진료 등) 개별 일정을 고려해 가능한 교수만 휴진에 동참했다"며 "정부에서 (의료진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아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휴진을 시행한 일부 서울대의대 교수들도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제일제당홀에서 긴급 심포지엄을 열고 의료개혁을 논의했다. 포럼에는 방재승 서울대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서울대의대 교수들과 전공의, 의대생,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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