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피제' 폐지에…"'어느 지도교수실 누구' 꼬리표는 어떻게"

박건희 기자 2024. 4. 30. 15: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류광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교보빌딩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4년 제3회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총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스1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국가 R&D(연구·개발) 과제평가 시 적용하던 '동일 기관 상피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과학기술계는 "과제 평가 시 전문가가 부족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인맥이나 학연에 따른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지난 29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국가연구개발 과제평가 표준지침' 개정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오랜 기간 과학기술계의 논쟁 대상이었던 '동일 기관 상피제'를 폐지한다. 피평가자와 같은 기관(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 소속된 평가위원이라도 소속 학과, 학부가 다르면 과제 평가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지금까지는 국가 R&D 과제평가 시 '동일 기관 상피제(相避制')를 적용해왔다. 동일 기관 상피제는 평가 대상 과제의 연구책임자(피평가자)와 동일 기관에 소속된 평가위원이 과제 심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피평가자와 평가위원 간 금전적·직무적·인적 이해관계에 의해 불공평한 과제 수주가 이뤄지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 도입됐다.

기존 표준지침에도 '학과, 학부, 부서 등 최하위 단위 부서에 같이 소속된 사람으로 한정해 제외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기본 원칙에 따른 단서 조항인 만큼 평가 현장에서의 실질적 효력은 적었다는 판단이다. 이상윤 과기정통부 성과평가정책국장은 "조건적 예외가 아닌 명문화된 규정이 있으면 좋겠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연구계 안팎에선 "과도한 상피제로 인해 평가위원의 전문성이 저하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평가대상 과제 수는 늘어나는데 과제를 평가할만한 전문가 풀(pool)은 한정돼 있어 평가의 효율성과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상피제에 의해 특정 기관을 회피하려다 보니, 한 연구 분야의 '최고 권위자급'으로 불리는 연구자임에도 피평가자보다 성과가 적은 평가자로부터 과제 심사를 받게 됐다는 사례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내에서 연구단을 이끄는 한 연구원은 "과제 평가를 비롯해 연구원 채용 시에도 해당 지원자가 몸담고 있었던 기관과 연관된 이는 심사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하나둘씩 배제하다 보니 평가할 전문가가 모자라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5일 대전시 유성구 ICC호텔에서 열린 '2024 출연(연) 신진연구자 교류회'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동일 기관 상피제 폐지로 인해 개인의 인맥과 학연이 과제 수주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 4대 과기원 소속 박사생은 "지금도 R&D 과제로 선정된 주관기관의 목록을 보면 몇몇 학교로 다소 쏠림 현상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경향성이 "반드시 학연·지연의 영향 때문이라곤 볼 순 없다"면서도 "실제 연구 현장의 연구자들에겐 늘 '어느 지도교수실 소속 누구'라는 꼬리표가 붙는데, 평가에서 과제 신청자의 배경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겠나"고 의구심을 표했다.

과기정통부는 상피제 완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이해 상충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과제 평가위원으로서 준수해야 하는 행동강령을 마련하는 한편, 평가단 내부적으로도 각 평가위원의 태도를 파악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등 세부 방안을 세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제 신청자가 평가자로부터 받는 종합평가 의견안도 현행보다 좀 더 구체화한다. 더불어 평가위원이 이해 상충의 의무를 위반할 시 평가위원으로서의 활동을 제한하는 '페널티'를 부과한다.

△평가위원이 피평가자로부터 최근 3년 이내 금전적인 이익을 얻었거나 얻을 예정인 경우 △평가위원이 해당 과제에 공동 또는 참여연구자로 참여하는 경우 △피평가자와 최근 3년 이내 공동연구나 사업을 경험했거나 사제관계 등 유사한 밀접 관계의 경우가 이해 상충 기준에 해당한다.

과기정통부는 동일 기관 상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이번 안을 올해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명문화할 예정이다.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