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역사 속 오늘] 4월30일 경향신문 폐간, YTN 라디오 개국

장슬기 기자 2024. 4. 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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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30일, YTN 라디오 개국…1959년 4월30일, 경향신문 폐간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YTN 라디오

2008년 4월30일, YTN에서 운영하는 보도전문 라디오 채널인 YTN라디오가 개국했다. 1959년 4월30일, 정부는 경향신문을 폐간했다.

YTN 라디오, '정오뉴스' 시작으로 개국

YTN라디오는 4월30일 '정오뉴스'를 시작으로 개국했는데 가청권역은 서울 서부지역, 경기도와 인천광역시 일부다. 초대 대표이사는 표완수 YTN 사장, 주파수는 94.5㎒다.

표완수 사장은 개국을 이틀 앞둔 4월28일 기자간담회에서 “YTN라디오는 YTN TV 케이블 방송 시작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2003년 8월부터 여기에 있는 강갑출 상무이사와 기술, 방송 담당 등 인력으로 비밀조직처럼 라디오 방송사 준비해왔는데 4년여 만에 우여곡절 끝에 개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표 사장은 “YTN라디오를 준비하면서 KBS·MBC·C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의 방해가 컸는데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하게 됐다”며 “YTN라디오는 공정보도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표 사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사의를 표명하고 경향신문 사장에 지원했다.

당시 YTN라디오는 종합뉴스를 오전 6∼8시, 오전 8시, 낮 12시, 오후 6시, 밤 11시에 편성했고, YTN TV 뉴스인 '굿모닝 코리아'(오전 5시), '뉴스의 현장'(오후 1시), '뉴스 창'(오후 7시), '뉴스 나이트'(오후 10시)를 TV와 라디오로 동시에 방송했다. 종합뉴스와 YTN TV뉴스 중계를 제외한 14시간 동안은 매 15분 단위로 뉴스를 내보냈다.

당시 서울 남대문로 YTN 사옥 18층에 전용 스튜디오를 마련한 YTN라디오는 뉴스편집, 편성심의, 취재제작 등 5개 팀을 구성하고 4월5일부터 시험방송을 했다.

YTN라디오는 최대주주인 YTN(지분율 30%)이 중소기업중앙회(20%), 신한은행(15%), 대교홀딩스(15%), 로만손(5%), 아리랑TV(4.5%) 등과 함께 100억 원을 출자해 설립한 법인으로, 2007년 8월27일 단독으로 방송위에 사업 신청서를 제출했었다.

방송위원회는 2007년 10월8일 수도권 보도전문편성 지상파라디오방송사업자에 선정됐고, 같은해 12월26일 지상파 방송사업허가 추천을 거쳐 2008년 1월31일 방송국 허가를 받았다.

▲ 1959년 5월1일 동아일보 기사. 빨간 박스 기사 제목은 '경향신문에 폐간령'

이승만 정부, 경향신문 폐간

1959년 4월30일, 이승만 정부가 경향신문을 폐간했다.

5월1일자 동아일보 등을 보면 정부는 미군정법령 88호를 적용해 폐간명령을 내렸는데 5가지 이유를 내걸었다. 첫째, 1959년 1월11일자 사설 '정부와 여당의 지리멸렬상'에서 스코필드 박사와 이기붕 국회의장 간의 면담사실 날조, 둘째 2월4일자 단평 '여적'이 폭력을 선동, 섯째 2월15일자 홍천 모 사단장의 휘발유 부정처분 기사가 허위, 넷째 4월3일자 보도한 간첩 체포기사가 공범자의 도주를 도왔으며 끝으로 4월15일자 이승만 대통령 회견기사 '보안법개정도 반대'가 허위보도라고 했다.

정부 공보실장의 이와 같은 담화문 발표에 경향신문 측은 “위법한 보도가 있다면 의당 법으로서만 처벌될 문제이지 법의 판결 없이 행정조치로서 그것도 합헌 여부가 의문시되는 군정법령을 근거로 해서 발행 허가 자체를 취소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실제 폐간 배경은 1956년 정·부통령선거,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보안법파동 등에서 정부 비판기사를 쓴 것 때문으로 알려졌다. 또 경향신문을 소유한 가톨릭재단은 민주당의 장면 부통령을 적극 후원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칼럼 '여적'의 필자 주요한과 신문사 발행인 한창우가 내란선동 혐의로 입건됐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고 경향신문은 폐간 361일 만인 1960년 4월27일 조간부터 복간했다. 기소됐던 주요한과 한창우는 4·19혁명 이후 검찰에서 공소 취하했고, 주요한은 윤보선 정부에서 상공부 장관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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