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늦어져 10년간 의사 2만명 늘었지만 문제 해결 안돼"

박정연 기자 2024. 4. 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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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 "합리적 증원안 도출할 것"
백발의 의사가 환자의 영상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는 19년간 의대 정원이 동결되면서 의사 수가 같다고 하지만 의사들의 은퇴 시기가 늦어지면서 사실상 의사 수는 2만 명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3분 진료나 필수의료 위기와 같은 의료현장의 문제점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계적인 의사 증원은 의료개혁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는 30일 서울대병원에서 개최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긴급 심포지엄'에서 정부의 의사 수 증원에 따른 기대효과에 대해 이같이 주장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의 의사 수가 부족해질 것이란 전망과 이에 따른 의료서비스의 부족을 의대 정원 확대 근거로 들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 의사 수는 늘어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꾸준히 의사 수가 늘었지만 필수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만큼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서비스의 양적 증가도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 교수는 의사들의 활동연령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통계를 살펴보면 다른 연령대의 의사 수에는 변화가 없지만 70세 이상 활동 의사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며 "고령 의사의 진료 기여를 감안하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50년 이후 뚜렷한 상승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의 활동 기간이 늘어난 이유는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예전보다 '건강한 노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2013년부터 2018년 기간 통계를 살펴보면 노인들의 의료비 지출이 크게 증가했다"며 고령자들의 건강관리가 예전보다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노인들의 사회 활동 기간이 늘어나게 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고령 의사들의 진료 능력 저하를 고려한 인구당 의사 수 등에 대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 교수는 현행 정부안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에 불과하며 의료서비스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이 늘어나도 필수의료나 지방의료에 유입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느끼는 의료현장의 불편함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는 "국민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3분 진료'일텐데, 실제 의사들이 현재 인력이 부족한 의료현장으로 가게 되진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오 교수는 현재도 젊은 의사들이 인기 전문과목과 수도권에 몰리는 현상이 고착화됐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된 유인책이 없으면 이러한 쏠림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레지던트 전공의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인원은 동일하지만 지원자수는 매년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이는 원하는 전문과목에 진입하기 위해 'N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 수가 늘어나도 이러한 현상만이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의사 수 증가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의사 수 증가에 따른 건강보험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 우려했다.

그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2022년 9.6% 이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9.5%보다 높다"며 "정부안대로 의사 수를 늘리면 2030년에는 GDP 대비 16%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재원을 조달할 방안은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공계 인재 유출 현상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출생아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정부안대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같은 년도에 태어난 출생아 당 의사의 비율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의사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이공계 진입 학생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의사 수를 늘리는 대신 행위별수가제와 같은 기존 의료제도를 손질해 의료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위별수가제는 개별 의료행위에 따라 수가를 매겨 지불하는 제도다. 의료계에선 힘들고 어려운 의료행위에 현실적이지 못한 수가가 책정되면서 특정 전문과목을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날 오 교수는 동료 교수들과의 협업을 통해 정부안을 대신할 증원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의사와 의사 가족을 제외한 국민들의 의견, 의사 수 증가에 따른 변수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수집하고 표준데이터 수립을 위한 연구자 공개토론을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의료계 합일안을 요구하고 있는데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안을 도출해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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