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다친 부모가 받은 양육비 대출, 30세 넘은 자녀가 직접 갚아야…헌재 “합헌”

이슬비 기자 2024. 4. 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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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 4월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선고를 하고 있다. /뉴스1

교통사고로 다친 부모에게 정부가 자녀 양육비를 대출해주고 자녀가 30세가 넘으면 직접 갚도록 한 법은 합헌이라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다. 헌재는 강모씨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조항에 대해 낸 헌법소원을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기각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사건을 청구한 강씨의 아버지는 이혼 후 혼자 자녀 둘을 양육하다가 지난 1996년 7월 교통사고로 중증 후유장애를 입었다. 아버지 강씨는 2000년 3월 자녀들의 명의로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생활자금 대출 총 4450만원을 받았다. 당시 자녀의 나이는 9살, 8살이었다. 아버지는 2008년 12월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자동차손배법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후유장애를 입은 사람의 미성년 자녀에게 학업 유지를 위한 장학금을 지급하거나 생활자금을 무이자로 대출해준다. 이렇게 빌린 돈의 상환의무는 대출을 신청한 부모가 아닌 자녀들에게 있다. 자녀가 30세가 됐을 때부터 나눠 갚도록 하고 있다.

강씨의 자녀들은 대출이 있는지 모르고 살다가 30세가 돼 공단으로부터 대출 상환을 처음 통보받았다. 이들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대출을 신청한 것이어서 대출 사실을 몰랐고, 대출금이 우리를 위해 사용된 적이 없다”라며 자기결정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침해를 주장하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아버지가 중증 후유장애를 입은 이후 청구인들을 키운 것은 숙모와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러나 헌재는 이 청구를 기각했다. 이종석·이영진·문형배·김형두·정형식 등 재판관 5명은 “대출의 형태로 미성년 자녀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은 미성년 자녀가 소득 활동을 할 수 있는 30살 이후 자금을 회수해 한정된 재원을 가급적 많은 미성년 자녀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대출해줄 때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 요건을 충족하는 자’에 한정하기 때문에 대출신청자인 부모로부터 대출금 상환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헌재는 “재원 회수가능성을 고려하여 잠재적으로나마 상환능력이 장래에는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미성년 자녀에게는 상환의무 있는 형태인 대출로 생활자금을 지급하고, 중증후유증애인과 피부양가족에게는 상환의무가 없는 재활보조금‧생계보조금을 지급한다”라며 “미성년 자녀만을 달리 취급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차별”이라고 했다.

다만 이은애, 김기영, 이미선, 정정미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심판대상 조항은 국가가 생계가 어려운 아동의 불확실한 미래 소득을 담보로 대출사업을 하는 셈”이라며 “국가의 아동에 대한 부양과 양육의 책임과는 조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국가 재정여건이 한정돼 있지만, 이는 책임보험료의 징수율을 인상하거나, 세금 등의 공적 자원을 투입하는 등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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