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분 위헌’ 따른 新가족문화 과제[포럼]

2024. 4. 3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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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기초가 가족이듯이, 가족문화는 사회문화의 밑바탕이 된다.

권리 주장은 강해졌지만, 처벌되거나 강제되지 않으면 사회적 의무와 책무는 등한시하는 가족·사회 문화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헌재 결정을 반영해 유류분제도를 직계가족과 배우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소극적 제도로 격하하는 것은 오늘의 낯선 가족문화를 더 가속할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부양 의무를 포기한 상속인의 상속 자격을 박탈하는 '구하라법'만으론 부정적인 가족·사회 문화를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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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회의 기초가 가족이듯이, 가족문화는 사회문화의 밑바탕이 된다. 가족관계가 어떠한지에 따라 각 개인은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가족 가치관을 배우고 익힌다. 이 가족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리의 상속제도다.

호주(戶主)인 맏아들(長子·장자)이 일단 재산을 단독 상속하는 관습이 확산됐던 일제 치하에서는 가부장의 독재와 전횡, 폭력을 수용하는 문화가 지배했다. 그런 문화에서 성장한 개인들이 독재를 수용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해방 후 1960년 시행된 민법은 일제 하의 상속관습을 폐지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호주제도를 유지했다. 강력한 호주 중심의 가족질서 속에서는 재산을 많이 갖기 마련인 남성의 ‘유언의 자유’도 보장됐다. 법정상속인의 최소 상속분인 유류분(遺留分)도 없었다. 이런 상속제도는 가족을 차별하는 가족문화를 만드는 온상이었다.

평등하고 차별 없는 가족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특히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계속 또 끈질기게 진행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77년 민법 개정으로 피상속인 처의 상속분을 남자 직계비속 상속분에 2분 1을 가산하도록 한 것은 그 결실이다. 이때 유류분제도도 도입됐다. 가족 내 양성평등을 핵심으로 한 가족질서는 1990년 민법 개정으로 비로소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자녀 간의 상속분에 차별을 없앤 것도 그때였다. 여전히 남아 있던 남성 중심의 가족질서를 뒷받침하던 호주제도는 마침내 2005년 3월 민법 개정으로 마지막 잔재까지도 소멸했다. 평등과 차별 금지가 핵심적인 가족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그러나 평등과 차별 금지는 소극적 가치일 뿐, 가족의 유대를 강화해 주는 가치는 아니다. 권리 주장은 강해졌지만, 처벌되거나 강제되지 않으면 사회적 의무와 책무는 등한시하는 가족·사회 문화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자녀 부양을 포기한 부모가 상속을 주장하거나, 부양을 방치한 자녀를 배제하고 자신을 지극 정성으로 돌본 자녀가 상속받게 유언했어도 유류분을 주장하는 것을 권리 행사로 여기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범죄를 저질러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왜 나만 처벌하려 하는가’라며 수사기관을 비난하는 낯선 사회문화도 확산됐다. 상호 존중과 사회적 연대 의식이 자리 잡을 틈은 점차 좁아졌다.

형제자매의 유류분제도를 위헌, 직계 비속과 존속 및 배우자의 유류분제도를 헌법불합치로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25일 결정은 가족질서가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선언하는 사건이 아니다. 헌재 결정을 반영해 유류분제도를 직계가족과 배우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소극적 제도로 격하하는 것은 오늘의 낯선 가족문화를 더 가속할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부양 의무를 포기한 상속인의 상속 자격을 박탈하는 ‘구하라법’만으론 부정적인 가족·사회 문화를 막을 수 없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평등과 차별금지의 소극적 가치로는 더는 가족·사회 문화에 확산되는 아노미 현상을 방지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유류분제도만이 아니라 가족제도도 개정해 상호 존중과 유대·연대의 가치가 자리 잡게 해야 한다. 가족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상호 존중, 자기 책임과 연대 의식을 어릴 때부터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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