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본 사람 '현타' 제대로 오게 하는 '종말의 바보'

아이즈 ize 정명화(칼럼니스트) 2024. 4. 3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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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명화(칼럼니스트)

사진=넷플릭스

그렇다. 다음회에는 괜찮겠지, 뭔가 미스터리가 풀리겠지, 기대를 하며 인내를 가지고 마지막화까지 정직하게 지켜봤다. 그 결과는 허탈했다. 이걸 보려고 그 긴 시간을, 지루함을, 견뎠던 것인가. 심각한 '현타'를 맞고 말았다. 1화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소재가 주는 호기심과 출연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스트리밍 그 시간이 '바보같아'지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말의 바보'는 마약 투약으로 불구속 기소된 유아인 출연작으로 공개가 미뤄지다 당초 예정보다 한참 늦은 올해 공개된 작품이다. 일본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 소설 '종말의 바보'가 원작으로, '마이네임', '인간수업'의 김진민 감독이 연출을, '밀회', '아내의 자격'의 정성주 작가가 대본을 썼다. 편당 60여분의 러닝타임에 무려 12화로 선보인 '종말의 바보'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로 한반도의 종말이 200일 남은 시점의 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지구를 향해 돌진 중인 소행성. 불행히도 소행성의 충돌지점은 한반도와 일본, 중국 동부지역으로, 대한민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 돈있고 힘있고, 능력있는 이들은 이미 안전지대로 탈출한 가운데, 평범한 소시민들은 종말의 날을 카운트하며 늘 그렇듯 똑같은 일상을 보낸다. 웅천의 한 중학교 교사인 '세경'(안은진 )은 미국 연구실에서 근무하던 중 불의의 습격을 받고 실종된 약혼자 '윤상'(유아인)를 그리워하는 한편, 자신의 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정부 상태의 혼란 속에서 웅천시는 아이들을 노리는 범죄자들이 날뛰고, 많은 사람들이 종말보다도 더 일찍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된다. 세경은 아이들을 지키고, 한명의 아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강직한 군인인 친구 '인아'(김윤혜)에게 도움을 청한다. 

사진=넷플릭스

'종말의 바보'는 종말이라는 소재가 주는 아포칼립토적 세계관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사뭇 동떨어진 작품이다. 작품 초반 무질서 상태의 혼란과 납치극, 폭동 등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대체로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들로 채워진다. 달리 말하면 이 일상적인 모습을 700여분동안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 등장인물인 4인방의 이야기를 비롯해 그들 주변인들의 스토리가 길고도 반복적으로 그려진다. 

아들내외와 손자를 안전지대로 떠나보내고 죽음을 기다리는 노부부, 범죄자들에 의해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 모두의 정신적 지주이던 주임신부가 실종된 뒤 그 미스터리를 쫒는 수녀, 북한에서 내려와 어린딸을 홀로 키우는 억척스럽고 정 많은 엄마, 이주 브로커에 속아 막대한 돈만 잃고 안전지대로 탈출하지 못한 유명 방송인, 아들은 죽고 딸과는 영 사이가 소원해 성당 자원봉사에만 매달리는 여자, 세경의 반 절친 3인방의 성장 스토리, 집단 탈출을 위해 모종의 단체를 이끄는 엄마를 피해 탈출한 소녀 등등 주변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중구난방, 신파 일색으로 그려진다.  

종말의 바보라는 직관적이지 못한 제목만큼이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불필요할 정도로 곁가지를 친다. 반면 정작 주요 사건과 주인공의 전사와 감정 흐름은 허술하게 묘사되고 설명이 부족해 대체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호하기만 하다. 다만 극 후반부 "종말에는 바보여도 되지 않을까"라는 주인공들의 대화로 어렴풋하게 제목이 상징하는 바를 드러내고 있다. 마치 TV 일일 연속극처럼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한가득하고 플래시백은 시도때도 없이 등장해 과연 D-200으로 설정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다. 

사진=넷플릭스 

5화 정도부터 수거할 것처럼 보이던 미스터리의 떡밥은 회를 더해가며 질질 끌더니 시덥지 않은 결과를 내놓는다. 모두가 다같이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 큰 죄라도 되는 것인지. 시종일관 주인공이 발현하는 의협심은 짜증을 유발하고, 누군가의 탈출을 가로막는 이들의 행동은 정의롭다기보다 이기적으로 느껴진다. 애초부터 소행성이 떨어지기까지 200여일이나 남은 시점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랄지, 역시 종말을 앞두고 너무도 '성실하게' 아이들을 노리는 범죄조직이랄지, 수긍하기 힘든 설정과 전개의 모순, 스토리의 허술함 등 부족한 개연성이 몰입을 방해한다.

종말의 시간이 영원처럼 멀게 느껴지는 산만하고 지루한, 따분하고 식상하기 그지없는 '종말의 시간'. 과연 유아인 리스크만 문제였을까? 비중 높은 배우 한명의 분량을 들어내고 짜깁기 하느라 갈 길을 잃은 것인지, 비단 유아인 리스크가 아닌 애초부터 제작 전반의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이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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