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실례’로 마음의 기지개를 켜봐요” 천부적인 재담꾼 양다솔 작가

문영훈 기자 2024. 4. 30. 09: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훈을 전달하는 책은 많지만 품격 있는 웃음을 주는 책은 드물다. 그래서 양다솔은 희귀한 작가다. 

천부적인 재담꾼, 양다솔 작가가 꿈 없이도 사는 법
구내식당에서 팟캐스트 '조용한 생활’을 듣다가 숨죽여 웃었다. 양다솔(30) 작가가 '농담하는 입장’이라는 코너를 진행 중이다. 스탠드업이 아닌 시티드(seated) 코미디다. 그는 10년을 머물렀던 서울 마포구 망원동을 떠나 충북 괴산에 살고 있다. '혼자 사는 여자의 입장’ '시골 사는 청년의 입장’ '다도 하는 입장’(별 5개)같이 웃음과 동떨어져 있을 것 같은 처지에서 빙긋 미소를 끄집어낸다. 그는 하루는 괴산에서 친구들과 노래방을 찾아 헤맸는데, 맵에 검색하면 열 곳 중 세 곳은 폐업, 여섯 곳은 업종이 달라 보이는 수상한 데, 겨우 찾은 한 곳이 노래방이었다. 심지어 "아가씨 필요해요?"를 물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가씬데 아가씨가 있어서 뭐 하겠어요? 물론 그분들과 만나면 즐겁겠지만요."

그의 말은 천연덕스럽지만 폐부를 찌르는 구석이 있다. 박장대소를 하다가도 멈칫하게 된다. '적당한 실례’는 선을 넘는 이야기가 담긴 그의 세 번째 책이다. 민폐와 무례의 경계를 사뿐히 넘나들며 페이소스를 토핑으로 얹었다. 그가 전달하는 웃음처럼 인간 양다솔의 궤적은 전형에서 벗어난다. 중학교를 그만뒀고, 2년간 절에서 행자로 지내기도 했다. "꿈 같은 건 없었지만 그동안 못 한 공부를 했다"고 기억하는 대학 시절을 마치고 연구소 사무직, 출판사 기획자, 시민 단체에서 일했다. "서로에게 민폐"라 일을 그만둔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했고, 글방을 운영한다. 좋아하는 게 하루에 10개씩 쏟아져서 배운 것도 많다. 그는 보이차와 비건 요리, 돌침대를 좋아한다. 지금까지 그라피티, 댄스, 판소리, 주짓수를 배웠고 최근엔 복싱을 시작했다. 그의 하루는 48시간이기라도 한 것인가. 되고 싶은 건 없지만 오늘에 정성을 다하는 태도, 효율을 최상의 가치로 두는 현대 사회를 거스르는 삶이다.

4월 3일 만난 양 작가는 "무용한 일이 가장 즐거운데, 최고봉은 글쓰기"라며 "글을 쓰면서 돈을 벌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세 권의 책을 내고 나니 이제는 이걸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글쓰기 소상공인’이라고 정의하는 그와의 대화.

작가의 탄생, 어딘 글방

양다솔 작가는 글방지기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열혈 우정인이자 생활 다도인이다.
직업이 다양한데, 근황이 궁금합니다.
신간을 내고 홍보하러 많이 다녔고요. 그전에는 그리스와 튀르키예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러 갈 준비도 하고 있고요. 상반기는 전혀 가지 않았던 곳을 여행하는 기간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살맛이 나야 글 쓸 맛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요. 예전에 관심이 없던 걸 해보고 안 가본 곳에 가보려고 하고 있어요. 창문을 열어둔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어둔 창문으로 예상치 않은 게 들어와 삶이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꼭 글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고요.

기지개 켜기, 물구나무서기, 까치발 들기, 콧노래 부르기로 이어지는 책 '적당한 실례’의 소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적당한 실례’는 편견 같은 정해진 선을 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예요. 상대방이 웃으면 농담이 되고, 정색하면 실례가 되는 것 같은 거죠. 그래서 긴장을 내려놓고 어깨에 힘을 푸는 행동, 마음이 편할 때 하는 행동을 소제목으로 붙이고 싶었어요. 표현도 재밌지 않나요. 스위치도 아니고 기지개를 '켠다니’.

어떤 글이 기지개를 켜고, 어떤 글은 거꾸로 서나요? 쓴 글을 배열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쓴 글을 모아보니 아이들이 정말 많은 반 선생님이 된 것 같았어요. 제각각 성격이 달랐죠. 그래서 좀 잘 지낼 것 같은 아이들끼리 모아야 갈등이 없을 것 같았어요. 글들을 다 프린트해서 한 편씩 묶은 다음에 다 펼쳐두고 '너 여기로 가, 너 저기로 가’ 하는 식이었습니다.

글감은 어떻게 정하나요.
겪은 일을 말로 전하는 걸로는 해소가 안 될 때가 있어요. 슬프다, 기쁘다같이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들이죠. 분명히 슬픈데 동시에 기쁜 구석이 있고, 웃긴 사건인데 슬프기도 하고, 굉장히 모순적이면서 다양한 게 뭉쳐져 있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일일 때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사는 게 재밌다, 좋다 이렇게 퉁치기가 점점 어려워지잖아요. 이 사건이 나에게 중요한 만큼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도 중요할 수 있겠다, 생각하며 씁니다.

연결되는 감각이네요.
때로는 옆에 있는 친한 친구보다 나를 전혀 모르는, 멀리 있는 사람이 저와 더 공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글 안에서 만나는 거죠.

양 작가가 글에서 타인과 만나는 감각을 느낀 것은 열다섯 살 때였다. 당시 중학교를 자퇴하고 요리, 힙합, 그라피티를 배우는 등 스스로 시간표를 만들었다. '어딘 글방’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국어 시간 같은 것이었다. 다양한 수업에서 만난 사람 중 글방 사람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꾸준히 출석했다. 어딘 글방은 10년 후 유명해지는데, 양 작가뿐 아니라 '일간 이슬아’의 그 이슬아, 농인 부모와의 경험을 영화로 만든 이길보라 감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쓴 하미나 작가가 같은 글방 출신이다.

당시 글방은 어떤 분위기였나요.
느슨한 공동체 형태였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데, 글을 쓴 사람만 출석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떨 땐 2명이, 다른 주엔 11명이 앉아 있기도 했죠.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쓴 글을 읽고, 글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게 끝이에요.

작가 양다솔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요.
‘글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같은 글쓰기 스킬을 알려주는 공간은 아니었어요. 다만 저를 오래 봐온 사람들에게 글에 대한 꾸준한 피드백을 받았죠. 저는 독서가, 쓰는 사람이 반걸음 가고 독자가 반걸음 오면 만들어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성 작가도 독자들에게 능동적인 피드백을 받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혼자 글을 쓰면 내 입장에서 말하는 데 익숙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요. 제게 글방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에게 어떻게 전달되는가를 계속 실험하는 곳이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청소년이었군요.
외동딸이었고 어릴 때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할 말이 늘 쌓여 있었는데 들어줄 사람이 없었죠.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하는 또래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글만 써가면 글방에서 그 이야기를 다 들어줬으니까요.

글방 학생에서 글방 운영자가 됐습니다.
글방 공동체를 운영하는 일이 지금까지 살면서 해본 일 중에 제일 재미있어요. 글방에서 저는 언어를 갈고닦을 수 있는 분위기를 몸에 새겼거든요. 그걸 글방 사람들에게 재현해주고 싶어요.

글방은 어떤 효험이 있나요.
글방은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 지역 거버넌스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시대 사람들이 겪는 문제 중 하나가 소통이라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SNS가 이렇게 활발한데요.
SNS만 보면 모든 사람이 다 잘 살고 고민도 없어 보이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글을 써보라고 하면 슬픈 이야기만 나와요. 사실 누구나 이상한 부분을 갖고 있고, 모두가 말하고 싶어 하는데 그럴 만한 공간이 없어요. 내 이야기를 갈고닦아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장소가 글방이에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구나,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구나, 사실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그런 걸 느낄 수 있죠.

친구를 만나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 만난 친구나 직장 동료라도 그 사람의 글을 한 편 읽는 경험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걸 알게 되죠.

책 '적당한 실례’에 실린 '정말 이상하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그 사례다. 양 작가는 강남 8학군에 있는 한 남자 고등학교로부터 글쓰기와 독서의 중요성에 대한 강의를 부탁받는다. 이공 계열을 지망하는 남고생 400명 앞에서의 글쓰기 강연. 그는 강연 말미에 "자신의 가장 이상한 점을 세 줄만 써주세요. 아직 깨어 있다면, 5분 동안 아무거나 써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도착한 글들.

"나의 가장 이상한 점은 나태함이다. 분명 1시간 전에 숙제를 끝내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유튜브 쇼츠를 보고 있다."

"그냥 나라는 존재가 제일 이상하다.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남에게 털어놓기 부끄럽지만 진솔한 이야기가 응축된 글은 말과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닌다. 양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글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내러티브를 갖게 해줘요. 자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왔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그래서 글쓰기는 자신에게 좋은데, 글방에서 이를 공유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줘요. 쓰는 시도를 꾸준히 하면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게 저의 제일 큰 기쁨입니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코미디

글도, 코미디도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내는데, 자기검열과 부딪히진 않나요.
제 이야기가 특별한 게 아니기에 솔직하게 써야 글이 특별해져요. 아무리 적나라한 이야기를 쓰더라도 삶이라는 건 계속 변화하고 저라는 사람도 계속 달라져서 그 글 안에 완벽히 내가 있다고 하긴 어려워요.

과거의 나를 정확히 박제해두려는 노력이네요. 코미디도 그 일환인가요.
저는 말이 많은 편인데 친구들이 점점 바빠지면서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어졌죠. 친구들이 무대에 가서 이야기하라고 하더라고요. 코미디 모임에 저를 아웃소싱한 거죠. 그래서 가봤는데 모임 사람들이 재미가 없었어요. 오히려 슬펐죠. 그래서 '아, 내가 진짜 재밌는 게 뭔지 보여줘야겠다’ 생각해서 하다 보니 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코미디 모임이 돼 버렸습니다.

웃기는 사람이라는 건 언제 알았나요.
알고 보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작가 아니면 시인이더라고요. 그런 애들이 뭐가 웃기겠어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웃긴 사람일 뿐이었죠. 저는 코미디를 하면서 농담을 만드는 일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서 시도를 계속해볼 생각이지만 자신은 없습니다.

어떤 영역인가요.
원래 웃긴 걸로 웃게 하는 건 꽃이 피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라 쉽다고 생각해요. 웃기지 않은 걸로 웃기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본인의 입장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여겨지거든요. 남의 인생을 재료로 사용해서 까내리는 것보다 내 삶에 존재하는 비극이나 따분해서 주목하지 않는 문제 같은 걸로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편견을 깨는 작업인가요.
저도 많은 편견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그게 깨지는 순간이 정말 좋아요. 반전 매력이랄까요. 그러면 '내가 또 사람을 납작하게 정물처럼 봤구나’ 싶은 거죠. 사람은 계속 움직이잖아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즐겁고, 그걸 주로 쓰는 것 같습니다. 모두 어떤 식으로든 모순을 갖고 있잖아요.

양 작가는 '빌린 전세보증금을 갚아야 해서 다닌 회사’ '관종이 될 수밖에 없는 비건’ '노상 방뇨를 하는 아저씨를 목격한 초등학교 여학생’ 같은 소재를 선택한 뒤 기어이 희극에 도달한다. 그냥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만으로 족해도 될 텐데, 공중을 세 바퀴 도는 묘기를 선보이고 착지 때 삐끗하는 것. 그게 그가 선택한 코미디의 방식이다.

자유로운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주변에 잘난 친구들이 많거든요.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 요즘 고민 없냐고 물어봐요. 없는 사람이 없어요. 부럽다는 감각은 진정한 소통이 안 되기에 느끼는 거죠. 그만큼 디테일이 안 보이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성공하고 싶어 하는 시대입니다.
각자의 삶이 있는 거죠. 저와 같이 글을 쓴 친구 중에 책을 낸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어요. 책을 내지 않은 친구 중에도 글 잘 쓰는 친구가 많거든요. 각자의 속도가 있는 건데 사람들은 섣불리 한 면만 보고 나보다 성공이다, 실패다 생각하는 거죠. 물론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 전화를 합니다. 그러면 알게 되죠. '감히 내가 내 삶과 저 사람의 삶을 비교하려고 했구나.’

양다솔로 사는 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양다솔로 산다는 건, 언제든지 사직서를 내고 싶은 일입니다. 우선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하고요. 살기 위해서 다양한 일을 하는 겁니다. 매번 저를 구조하는 거죠. 제게 '어떻게 하면 다음 주까지 살아볼래? 어떻게 하면 내년까지 살아볼래?’ 물어보는 마음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일의 문을 여는 것뿐이기도 하고요.

정성스럽게 산다는 인상을 주는데요.
그건 비관에서 오는 건데요. 제가 너무 부정적이기 때문에 삶의 요소가 제게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겁니다. 소음이 들린다거나, 집이 너무 어질러져 있다거나, 좋아하는 걸 하지 못하면 당장 '아 그냥 살지 말까?’ 생각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링거를 꽂듯 맛있는 밥을 해 먹고, 집을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고, 차를 우려 마시는 거죠.

불안이 있나요.
경제적으로는 먹을 걸 살 돈이 없을 정도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알바를 하든, 신문을 돌리든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었습니다. 물론 어른이 되고 나서 10년 동안 경제적으로 불안했지만 이젠 그 불안을 덜 느끼려고 해요. 요즘 불안한 건, 어릴 땐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았는데 지금은 해보기도 전에 판단하는 게 많아진다는 거예요. '저건 나랑 안 맞아, 굳이 저것까지 해야 하나’ 같은 식으로요.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게 하루에 10개씩 생겼거든요. 그래서 '나는 못 할 거야’ 지레 겁먹지 않고 '그냥 해보자’ 하는 마음이 찾아오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거시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는 편인가요.
당장을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요. 그래도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찾아보면 나중에는 좀 재밌는 걸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도 충분히 재밌는 글을 쓰지 않나요.
솔직히 말하면 아직 제 글을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재밌는 건 글 말고도 많잖아요. 그래서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더 감사합니다. 읽을 필요가 있는 책, 의미가 있는 책을 쓰고 싶긴 한데 욕심이겠죠.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보는 세계가 달라지고, 내 삶을 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는 텍스트를 언젠가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양다솔 #적당한실례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출처 유튜브 캡처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Copyright © 여성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