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공개 36점… 간송의 보물창고 다시 열렸다

허윤희 기자 2024. 4. 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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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재개관전 5월 1일 개막
1936~1938년 유물 구입내역 적은
간송의 ‘일기대장’ 최초 공개
서화가 12명이 구한말 정치인 민영휘(1852~1935)의 망팔(望八·71세)을 기념해 그린 '축수 서화 12폭 병풍'을 한 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 그동안 낱폭으로 보관돼 왔으나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래 하나의 작품이었다는 점이 확인돼 처음으로 12폭 병풍 형태로 복원해 전시했다. /오종찬 기자

#1936년 1월 17일: 현재 심사정의 ‘산수도권’(보물 ‘촉잔도권’으로 추정) 대금 ※문광서림 2000원.

#1937년 6월 5일: 겸재 정선 ‘박연폭포’, 완당 김정희 ‘난(蘭)’ 대금 500원.

#1938년 4월 9일: (경성)미술구락부 낙찰품 24점 대금 7417원.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일제강점기인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해외에 반출될 위기에 처했던 문화재를 수집하면서 서화·골동품 구입 내역을 자필로 꼼꼼하게 기록한 ‘일기대장’이 발견됐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1년 7개월간의 보수·복원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면서 “공사 과정에서 일기대장을 비롯해 미술관 일대 부지인 북단장과 보화각(간송미술관 옛 이름) 최초 설계 도면, 간송이 수집한 미공개 서화 유물 등 수장고 내부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자료를 찾았다”고 29일 밝혔다.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은 새로 찾은 자료들과 미공개 서화 유물 36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설립 과정과 초기 간송 컬렉션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간송 전형필이 1936~1938년 입출금 내역을 기록한 '일기대장'. 매년 1월부터 12월까지 입출금 내역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보물로 지정된 심사정의 '촉잔도권' 등 명품 구입 기록도 볼 수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가장 눈길을 끄는 자료는 2층에 전시된 ‘일기대장’. 보화각 설립 과정에서 간송이 지출한 건축·설계비, 인건비, 자재가격과 유물 구입 내역이 적혔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1936년부터 1938년까지 간송이 지출한 거의 모든 내역이다. 정원을 가꾼 인력이 몇 명인지까지 상세히 적었고, 각종 서화 골동의 구입 시기와 구입처, 매매 비용, 관리 내역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 초기 간송 컬렉션의 규모와 형성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자료”라고 말했다. 기와집 한 채가 1000원이던 시절, 심사정의 그림 ‘촉잔도권’(보물 1986호)을 기와집 두채 값에 구입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 기간 구입한 조선 시대 서화 유물 중 추사 김정희와 겸재 정선 작품이 많은 것도 흥미롭다. 대장 목록을 분석한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은 “김정희 40건, 정선 26건, 김홍도 20건, 심사정 12건으로 나타났다”며 “김정희와 추사학파 작품을 수집하는 유행이 19세기부터 일어났던 현상에 기인한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29일 열린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 언론공개회에서 한 관계자가 1층 전시장에 진열된 보화각 등 설계도면을 보고 있다. / 오종찬 기자
1938년 박길룡건축사무소에서 만든 북단장 양관(보화각의 설계 때 명칭) 신축공사 설계도(각 평면 및 복도) 청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한국 1세대 근대건축가 박길룡(1898~1943)이 설계한 북단장과 보화각 설계 도면도 최초 공개됐다. 간송은 1934년 서울 성북구 일대에 북단장을 마련했고, 그 안에 보화각을 짓기 위해 1938년 당시 경성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던 건축가 박길룡에게 설계 감독 업무를 맡겼다. 1층 전시장에선 도면과 함께 간송이 일본 오사카미술관(현 오사카시립미술관으로 추정)을 방문해 전시실 진열장을 보고 직접 그린 스케치도 볼 수 있다. 간송이 당시 일본 오사카 야마나카 상회에 의뢰해 만든 진열장도 이번 전시에서 일부 그대로 사용됐다.

간송 전형필이 1938년 이전 일본 오사카미술관(현 오사카시립미술관으로 추정)을 방문해 전시실 진열장을 보고 직접 그린 스케치. 간송은 보화각 설립을 추진하면서 서화 골동 유물을 전시할 진열장 제작을 고심하며 국내외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 여러 진열장을 꼼꼼하게 살피며 스케치를 남겼다. /간송미술문화재단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서화 유물들은 2층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철종과 고종의 어진 화가였던 도화서 화원 백은배(1820~1901)의 ‘백임당풍속화첩’과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인 심산 노수현(1899~1978)의 ‘추협고촌’ 등이다.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로 불렸던 조선 후기 화가 남계우(1811~1888)와 남계우의 제자로 ‘고접(高蝶)’으로 불렸던 고진승(1822~?)의 나비 그림도 최초 공개된다. 미술관은 “고진승의 나비 그림은 기록에만 있던 것으로, 이번에 실물이 처음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인 심산 노수현(1899~1978)의 '추협고촌(秋峽孤村)'이 전시된 모습. /오종찬 기자
19세기 화가 고진승의 나비 그림 '화접도'. 왼쪽은 ‘심방화접(尋芳花蝶·꽃향기 찾는 나비)’, 오른쪽은 ‘금전화접(金錢花蝶·금전화와 나비)’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관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전시를 열어 소장품을 공개해 왔으나 건립 후 80여년이 지나며 시설이 노후화돼 2022년 9월부터 문을 닫고 보수 정비를 진행했다. 국비와 시비 총 23억원이 투입됐다. 전인건 관장은 “조명도 개선하고, 진열장도 일부는 원형을 유지하되 현대화된 진열장으로 대부분 교체했다”고 했다. 재개관전은 6월 16일까지. 인터파크 예약을 통해서 1시간에 100명만 입장 가능하며, 관람료는 무료다.

1938년 보화각 개관 기념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관

1938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 일제강점기에 간송 전형필이 문화재 수집을 위해 헌신하며 지켜낸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부터 불쏘시개가 될 뻔했던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을 거두고,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대한해협 건너 찾아온 스토리가 유명하다. 오는 9월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전인건 관장은 “국보·보물 등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주요 명품을 대구에서 대거 전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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