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수술받는 날 휴진… 암 퍼지면 누가 책임지나”

오경묵 기자 2024. 4. 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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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들 잇단 휴진에 아우성
전국의 의대 교수들이 의료공백 장기화로 한계를 호소하는 가운데 이번 주부터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대형병원 다섯 곳에 소속된 교수들이 일제히 주 1회 휴진한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화요일인 이달 30일,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금요일인 내달 3일에 각각 휴진한다. 사진은 29일 오후 서울 한 대형병원에 붙은 교수협의회 입장문을 바라보는 환자. /연합뉴스

식도암을 앓고 있는 60대 A씨는 29일 입원, 30일 수술이 예정돼 있었다. 그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수술도 이 병원에서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입원·수술이 모두 연기됐다. 이 병원 교수들이 30일 휴진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A씨의 보호자는 “병원에서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지만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그 사이 암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느낌”이라고 했다.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고려대병원·경상국립대병원은 30일 중증·응급·입원 환자들을 제외한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국내 가장 큰 병원 5곳 중 2곳인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 하루 수술 건수만 200건 이상이고, 하루 외래 환자도 1만명 이상에 달하는 국내 대표 종합병원이다. 교수들의 휴진을 하루 앞둔 29일, 환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이들은 환우회 커뮤니티 등에 글을 올려 “30일로 예정됐던 진료·수술 등이 취소됐는데, 다시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다” “그 사이 암이 더 퍼지면 누가 책임지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25일 ‘교수님 진료가 휴진하게 돼 순차적으로 변경 전화를 드릴 예정이니 양해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이가 희소·유전 질환을 앓고 있다는 B씨는 “간호사가 어린이병원은 최대한 진료에 지장 없도록 한다고 했는데, 휴진을 알리는 문자가 와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며 “갑자기 휴진이 정해진 것이라 다음 진료 일정도 알 수 없다”고 했다.

29일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고려대안암병원 교수들은 30일 하루 외래진료와 수술을 중단하는 휴진을 할 예정이다. /뉴시스

어렵게 다음 일정을 잡은 환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희소 질환으로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아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는 C씨는 “30일 진료 예약이 다음 달 9일로 미뤄졌다”며 “(병원에서는) 그날 정상 진료가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한 유방암 환자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30일 2차 항암 치료를 받기로 했었는데, 휴진이라는 문자를 받았다”며 “전화해서 가까스로 진료 일정을 변경했는데, 또 취소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입원·수술이 여러 차례 미뤄지자 아예 다른 병원을 찾아보는 이들도 있다. 갑상선암을 앓고 있는 40대 D씨는 당초 지난달 11일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이달 30일로 연기됐다. 병원 측은 지난 26일 “마취과 사정으로 30일 수술이 취소됐다”고 했다. D씨는 “너무 스트레스 받아 없던 병까지 생길 것 같다”며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환자들은 지난 2월 전공의 병원 이탈 이후 급격하게 악화되는 진료 환경에 불안해하고 있는데, 힘들게 잡은 입원·수술 일정마저 미뤄지면서 절망감은 더 커지고 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환자들이 나빠진 진료 여건에 지쳐 자포자기한 상태”라고 했고,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당장 치료나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불만을 드러냈다가 진료 일정이 더 미뤄질까 봐 불만 표현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의료계 일각에서는 휴진으로 인한 혼란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빅5′ 병원 관계자는 “병원 전체가 문을 닫는 것은 아니고, 환자들에게 휴진을 미리 통보했기 때문에 별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6일 집단 휴진을 예고했던 충남대·원광대 등에서는 평소처럼 외래 진료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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