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느냐 머무르느냐…‘눈물의 여왕’ 결론으로 본 박지은 작가의 기로[스경연예연구소]

하경헌 기자 2024. 4. 29.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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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의 대본을 쓴 박지은 작가. 사진 스포츠경향DB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대단한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눈물의 여왕’은 갈수록 TV에서 OTT나 다른 모바일 숏폼 콘텐츠로 서사의 중심이 옮겨가는 지금의 시대에 여전히 TV라는 전통적인 플랫폼이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들이 올린 24.9%(이하 닐슨 코리아 유료가구 전국 기준)의 시청률은 2019년 방송된 박지은 작가의 전작인 ‘사랑의 불시착’이 올린 20% 기록을 5년 만에 재현했으며, ‘사랑의 불시착’ 최고 시청률 21.7%를 넘어 tvN 개국 18년 만에 드라마로는 최고 시청률 기록을 새롭게 썼다.

‘눈물의 여왕’의 성공 비결은 크게 두 가지다. 박지은 작가의 개성있는 캐릭터들로 빚어진 이른바 ‘캐릭터 플레이’. 어느 누구도 쉽게 생각해내지 못하는 캐릭터로 신선함을 안기는 초반부의 매력이다. 두 번째는 적절한 통속성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의 ‘통속성’은 특이한 상황에 처한 캐릭터가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원동력이 됐다.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포스터. 사진 tvN



지금까지 박지은 작가의 대부분 작품이 이러한 형식을 따랐다. ‘내조의 여왕’ ‘역전의 여왕’ 시리즈는 지금까지 가정에서만 숨죽이고 지내던 전업주부의 활발한 사회진출을 풍자했으며, 재벌가와 소시민의 경계성을 강조하며 통속성을 확보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도 그러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서 ‘시월드’에 종속당하기 싫었던 주인공이 고아인줄 알고 결혼한 남편에게서 새로운 가족이 드러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담았다.

그야말로 ‘별에서 온 그대’인 외계인 도민준(김수현), ‘프로듀사’의 열정 가득한 신예PD 백승찬(김수현),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인어 심청(전지현),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으로 불시착한 윤세리(손예진) 등 박지은 작가의 작품에는 쉽게 처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캐릭터가 초반 이질적인 세계와 부딪치다, 구원이 되는 인물을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다.

‘눈물의 여왕’ 역시 비슷했다. 당연히 상황이야 재벌집과 시골 슈퍼마켓집 등 이질적인 환경에 처한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성별을 교체했다. 흔히 재벌집에 ‘시집 가는 누구’의 서사에서 재벌집에 ‘장가 가는 누구’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기존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전복됐고, 이런 설정은 많은 이들에게 쾌감을 불렀다.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포스터. 사진 tvN



그러나 ‘눈물의 여왕’은 그 마무리의 통속성에서 세련되지 못한 마무리를 보이고 말았다. 초반 신선함으로 보이던 ‘클리셰(흔해빠진 설정)’의 비틀기가 나중에는 ‘클리셰의 전시장’이 됐고, 마무리에는 과격한 캐릭터들의 급발진과 붕괴 상황에 놓이면서 장르 자체가 스릴러나 또한 판타지로 변질되는 사태를 맞았다.

최고의 시청률로 박지은 작가는 방송가에서 자신의 입지에 대한 확신을 얻었고, 당연히 그의 작품을 편성하기 위한 제작사, 방송사 그리고 배우들의 러브콜은 더욱 열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 보면 이번 작품 이후가 박지은 작가의 진정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통속극’의 3대 대모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김순옥, 임성한, 문영남 작가를 뜻한다. 아드레날린의 질주, 쾌감을 추구하며 복수를 향해 돌진하는 인물들의 서사를 즐기는 김순옥 작가, 사후세계나 다른 세계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가치나 의미부여를 즐기는 임성한 작가 그리고 주변에서 볼 것 같은 인물들의 진폭을 넓혀 자극적인 공감을 즐기는 문영남 작가들은 각자의 필치로 지금의 입지에 올랐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포스터. 사진 SBS



박지은 작가가 보여준 ‘눈물의 여왕’ 마지막은 그 자신이 ‘그저 그런 작가’가 아님을 온몸으로 보여주려는 강박이 느껴졌다. 그저 권선징악의 토대 위에 악인은 벌 받고, 선인은 행복해지는 보통의 결말로 향하면 됐지만, 악역의 캐릭터를 붕괴시키고 교통사고나 총기사고 등 자극을 추구하며 극의 장르를 스릴러로 바꿨다. 나중에는 미래의 환상을 묘사하는 등 사후세계에 대한 관찰도 드러냈다.

단순히 스릴러와 판타지를 그리는 것으로 그 장르에 능통한 작가라 스스로 칭할 수 없을 텐데, 박지은 작가의 마지막에서 막을 잘 내렸다는 말을 듣고 싶은, 필요 이상의 힘이 느껴졌다. 결국 박지은 작가가 통속극으로 호평과 비판이 공존하는 앞선 작가들의 뒤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김은숙이나 김은희 작가처럼 로맨스, 스릴러의 방점을 찍고 조심스럽게 다른 분야로 나아가는 장르물의 대가가 될 것인지는 결국의 그의 선택이다.

그의 이번 작품, 결말이 비판받는 이유는 그 중 어느 것도 추구할 생각이 없다. 다른 말로 ‘나는 이것저것 다 잘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의 발로였다. 박지은 작가의 다음 작품이 그래서 중요하다. 또다시 눈이 뜨일 특이한 상황으로 관심만 모았다, 천편일률적으로 마무리를 지을 경우 경직된 세계관에 스스로 갇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SBS 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 포스터. 사진 SBS



‘푸른바다의 전설’ 후 ‘사랑의 불시착’까지 3년, 그 이후 ‘눈물의 여왕’까지 4년. 어쩌면 꽤 이어질 그의 다음 공백이 그의 미래 작품세계의 방향 그리고 대중의 찬사를 이끌 중요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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