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진단] 밸류업 시대의 임원 보상

2024. 4. 2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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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기업들의 2023년도 사업보고서 공시 및 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항상 그랬듯이 세간의 관심은 누가 얼마나 받았는지다. 작년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오너 및 전문경영인이나 직원 1인당 연봉이 높은 회사들에 관한 화제성 기사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진화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임직원 보상 구조다.

천문학적인 보상을 받는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보상은 크게 기본급, 성과연동 현금보너스, 스톡옵션 등의 주식보상, 연금 및 기타 비금전적 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총보상의 70%를 차지하는 주식보상이 압도적인 비중이다. 스톡옵션은 물론 성과목표의 달성 여부에 따라 행사 가능 여부와 지급 규모가 결정되는 성과연동형 스톡옵션, 성과연동 주식(performance share), 양도제한조건부 주식(RSU) 등 다양한 형태의 주식보상이 많이 사용된다. 당장의 매출과 이익을 올리는 단기 업적은 중요하지 않다. 보통 3년, 혹은 그 이상 장기에 걸친 주가 상승과 이익 창출을 이뤄내야 경영자가 큰 보상을 받는 구조다. 회사가 주주가치 제고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그 회사의 임원 보상 제도만 보면 알 수 있다.

임원 보상으로 바라본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진심은 어떨까? 우리나라 대부분 대기업들의 경우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임원 보상은 미국에 비해 기본급 비중이 훨씬 높고 성과급의 경우도 대부분 단기 재무성과에 기반한 현금성과급이다. 삼성그룹과 LG그룹의 경우 임원 보상에 주식보상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그룹도 전사 대상 비정기적 특별성과급 지급 시 약간의 주식을 지급하는 것이 전부다. 임원 장기성과급이 있더라도 주로 3년 단위 회계성과에 기반한 현금보상이다. 회사의 주가가 아무리 떨어져도 애가 타는 것은 주주들일 뿐 정작 페널티를 받는 경영자는 아무도 없는 구조다. 지배주주나 일가가 최고경영진인 경우 성과와 관련 없이 지급되는 기본급의 비율은 훨씬 높아진다. 밸류업 시대에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장기성과 창출을 위한 보상체계가 전무한 것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근시안적인 단기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닌 지속가능한 장기성과에 기반하여 회사의 성장을 구성원과 공유하는 주식 기반 장기성과급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다행히 닷컴 열풍을 타고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잠시 반짝했던 스톡옵션이 대기업 임원 보상에서 사라진 후 카카오, 네이버 등 일부 IT 기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자취를 감췄던 주식 기반 보상이 최근 한화, SK그룹 등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아직은 소수지만 주가가 곧 회사의 미래가치라는 전제하에 임원들이 단기성과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 주인의식과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장기성과를 견인할 수 있도록 주식기준보상을 강화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주식보상에 가장 진심인 기업이 한화그룹이다. 2020년에 도입되어 2021년부터 전 임원 대상으로 확대된 한화의 RSU 기반 장기성과급 제도는 기존 현금성과급 제도를 완전히 대체하는 파격적인 제도로서 CEO의 경우 무려 10년, 부사장급은 7년, 상무급은 5년의 가득기간을 두고 있다. 가득기간이 끝나면 그 시점의 주가 기준으로 50%는 주식, 50%는 주가에 연동한 현금이 지급되며 향후 팀장급 및 핵심 인재들에게도 RSU를 지급할 계획이다.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이 한화처럼 단기 현금성과급 없이 기본급과 주식 기반 장기성과급으로만 이루어진 임직원 보상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10년이라는 긴 가득기간을 가진 주식보상을 부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너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도입이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미래에 지급될 주식의 규모라든가 현금성과급을 받아 지주회사 주식을 집중 매입하는 것이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는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SK그룹의 경우 CEO 보상에 스톡옵션과 자사주 스톡그랜트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강력한 기업가치 연계 보상을 CEO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임원의 장기성과급을 3년 단위의 주가와 연계하는 주가차액보상권으로 부여하고 있다.

주식보상 부여 시 미국 기업에서 CEO 보상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상대평가 방법을 도입한 기업도 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의 주식보상계약을 보면 전체 보상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RSU의 경우 부여 후 3년간 매년 네이버 주가수익률을 코스피(KOSPI)200을 구성하는 회사들의 주가수익률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순위를 계산하고 그 순위에 따라 차후 0%에서 150%까지 차등 지급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가치 기반 보상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기업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사업 포트폴리오와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으며 회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중장기적인 기술 개발과 더불어 환경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 및 경영자의 전략적인 판단과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업들이다. 밸류업 열풍 속에서 주주가치 제고가 화두가 된 세상이다. 영업이익이 더 이상 기업가치를 설명할 수 없는, 과거의 성과로는 미래의 성과를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기업에서 작년도 재무성과 기반으로 올해 현금성과급을 결정하는 구태의연한 임원 성과급 제도는 더 이상 인센티브로 기능하지 못한다.

RSU란 단어가 더 이상 회사원들에게 낯설지 않을 만큼 기업의 주식보상은 급속도로 진화하는데 이를 둘러싼 공시 기준은 한발 늦게 따라가고 있다. 임원 보수 공시는 과세 대상이 되는 근로소득 기준으로 연봉이 공시되어 스톡옵션의 부여 시 공정가치 금액은 연봉에 포함되지 않는다. 작년 하반기 한화그룹의 대규모 RSU 부여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나서야 금융감독원은 부랴부랴 주식기준보상에 대한 공시서식을 개편했다. 밸류업 시대에 진화하는 보상 제도에 맞춰 관련 공시가 신속하게 변해야 하는 이유다.

[신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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