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는 물론, 전세계 홀린 박지은 작가 특유의 동화적 세계관('눈물의여왕')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24.8%(닐슨 코리아).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역대급 시청률로 종영했다. 애초 박지은 작가의 전작이 세운 기록인 <사랑의 불시착>의 21.6%를 경신할 수 있을 것인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눈물의 여왕>은 그 수치를 3%p 차이로 뛰어넘으며 tvN 드라마 역대 시청률을 경신했다. 도대체 이 작품의 무엇이 이런 성과를 가능하게 한 걸까.
가장 큰 건 박지은 작가가 그려 놓은 익숙하면서도 이를 뒤집는 새로움의 세계와 오랜만에 보는 시청자들과의 밀당이다. 퀸그그룹 재벌 3세와 용두리 이장 아들의 로맨스를 중심에 두고, 양가의 갈등과 화해가 이어지는 이야기 구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드라마와 가족드라마의 틀을 가져왔지만, 그 위에 세워놓은 이야기들은 그 클리셰들을 살짝 살짝 뒤집어 변주하는 새로움이 더해졌다.
시월드를 뒤집은 처월드나, 재벌가 판타지를 뒤집은 사위들의 처가살이, 무엇보다 중반에 이르러 모슬희(이미숙)와 윤은성(박성훈)의 계략에 밀려난 퀸즈가 사람들이 용두리로 도망치듯 내려와 그 시골살이의 묘미에 빠져드는 과정들은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들었다. 박지은 작가 특유의 동화적 세계는 이번 <눈물의 여왕>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퀸즈가라는 하나의 왕국을 찬탈한 모슬희와 그에 의해 위기에 처한 홍해인(김지원)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백현우(김수현)의 서사는 동화 같은 세계의 현대적 재연처럼 그려졌지만, 그걸로 박지은 작가는 '표현이 소원해진 부부들의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세계를 때론 웃기고 때론 울리며 시청자들과 밀당하게 만든 건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이를 200% 소화해낸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다. 눈물의 김수현과 도도한 여왕 김지원이 드라마의 중심축을 잡아줬고, 거기서부터 곽동연과 이주빈, 김정난과 김영민 같은 배우들이 펼쳐 놓은 곁가지 로맨스들이 다채로운 맛으로 펼쳐졌다. 그 밖에도 나비서(윤보미)와 김양기(문태유)는 물론이고 백두관(전배수), 전봉애(황영희), 백현태(김도현), 백미선(장윤주) 같은 매력적인 인물이 빈틈없는 웃음을 선사했다. 특히 그레이스 고를 연기한 김주령은 이 드라마의 치트키 같은 역할을 소화해냈다.
강도와 밀도가 높은 로맨스와 코미디를 풀어내 만들어진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에 시청자들은 과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후반부에 이르러 본격적인 빌런들의 폭주에 의해 생겨난 캐릭터들에게 닥친 위기의 순간들은 시청자들의 원성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물론 해피엔딩은 백현우와 홍해인이 이혼 후 서로의 마음을 재확인하며 달달한 옛 관계를 회복했던 순간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상황과 윤은성의 마지막 폭주 같은 장애물들이 존재했지만 그건 두 사람의 사랑을 더 공고하게 확인하게 만드는 장치일 수밖에 없었다.
<눈물의 여왕>이 이만한 파괴력으로 역대급 성과를 만들어낸 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마치 지나간 장르처럼 여겨져온 가족드라마라는 틀이 여전히 강력한 저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눈물의 여왕>은 로맨틱 코미디가 주력 장르지만 그 구성에 있어서 가족드라마적 색깔이 짙은 게 특징이다. 퀸즈가와 용두리 이장댁이라는 두 가족의 서사를 맞붙여 높은 지점이 그렇다.
KBS 주말드라마가 가족드라마의 거의 유일한 생존지이고 그래서 그것이 마치 전형처럼 여겨지며 시청률에서조차 난항을 겪는 상황을 통해 마치 가족드라마는 지나간 장르라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같은 가족드라마의 틀이라도 어떻게 재해석하고 정성들여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걸 <눈물의 여왕>은 보여준 면이 있다. KBS 주말드라마도 도달하기 힘든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한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이제 궁금해지는 건 해외반응이다.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눈물의 여왕>은 넷플릭스 인기 TV프로그램 전체 4위에 올랐고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나이지리아,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 베트남 등에서 1위를 기록했다. 'K로맨스'라는 지칭이 서구 언론으로부터 나올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현재, 박지은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이 담긴 <눈물의 여왕>이 글로벌 시청자들을 어디까지 매료시킬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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