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 이회창, 의약분업 갈등 해결… 文 - 홍준표, 대북 이견만 확인

이은지 기자 2024. 4. 2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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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수회담도 정국 갈등 상황에서 매듭을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였지만, 늘 성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연정 제안 거부처럼 정국운영에 대해 견해차만 확인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현재 의대정원 확대 문제만큼이나 사회적 파장이 컸던 의약분업 법개정에 합의를 이루기도 해서 '윤·이 회담'도 어떤 획을 그을지 주목된다.

노무현 정부에 와서는 당정 분리가 이뤄지면서 영수회담이 2차례만 이뤄졌고 성과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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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 야당대표 회담 역대사례

역대 영수회담도 정국 갈등 상황에서 매듭을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였지만, 늘 성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연정 제안 거부처럼 정국운영에 대해 견해차만 확인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현재 의대정원 확대 문제만큼이나 사회적 파장이 컸던 의약분업 법개정에 합의를 이루기도 해서 ‘윤·이 회담’도 어떤 획을 그을지 주목된다.

헌정사 최초의 영수회담은 1965년 7월 박정희 정부에서 이뤄졌다. 박순천 민중당 대표최고위원과의 회담에서 임시국회를 소집해 한일협정 비준과 베트남 전쟁 파병 동의안을 다루기로 합의했다. 1987년 6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은 결렬됐지만 이후 6·29 선언과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졌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영수회담은 더욱 활발히 이뤄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7차례 만나 약사법, 남북정상회담 등 여러 합의를 도출했다.

노무현 정부에 와서는 당정 분리가 이뤄지면서 영수회담이 2차례만 이뤄졌고 성과도 내지 못했다. 2005년 9월 영수회담에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세 차례 회담이 열렸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한미 쇠고기 협상을 두고 야당과 대립하면서 합의가 결렬됐다. 가장 최근에는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남북정상회담을 2주 앞두고 만났으나 남북관계에 관한 이견 차만 확인했다.

이은지 기자 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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