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을 거야” 거리에 쓰러진 남자…탈북자가 찍은 北 참혹 영상

이가영 기자 2024. 4. 2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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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를 이유로 북한의 국경이 봉쇄됐던 2023년 4월 황해남도의 한 거리에서 굶주린 남성이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일본 TBS

코로나를 이유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했던 2023년, 굶주린 주민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알 수 있는 당시의 영상이 공개됐다.

28일 일본 TBS는 탈북자 김모(30대 초반)씨가 작년 4월 북한의 황해남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최초로 공개했다.

영상 속 거리에는 한 남성이 홀로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김씨는 “근처 가게 주인에게 남자가 죽은 거냐고 물었다”며 “전날 오후부터 쓰러져 있어 만져봤는데 아직 죽지는 않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굶주려서 쓰러진 것 같은데,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다른 영상에서는 담배를 피우며 구걸하는 남성의 모습이 담겼다. 김씨가 “당신네 작업반에도 굶주린 사람이 많냐”고 묻자, 구걸하던 남성은 “엄청나게 많다. 어쩔 수 없이 일하러 나가는 사람도 많은데,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구걸하는 북한 남성. /일본 TBS

작년 5월 한국에 온 탈북자 김씨는 당시 북한의 스마트폰으로 굶주리는 주민들의 영상을 촬영했다. 다른 탈북자들이 중국이나 러시아 등 제3국을 경유하는 데 반해 김씨는 목선을 타고 한국으로 왔다.

김씨는 탈북을 결심하게 된 이유로 “한국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북한에서는 집을 한 발자국만 나가면 모든 것을 100% 의심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있다가도 누군가가 호루라기를 불면서 신체검사를 하는데, ‘왜 청바지를 입고 있나’ ‘왜 노동시간에 돌아다니느냐’ 등 무엇이든 트집 잡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 북한 정부는 주민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고 한다. 북한은 2020년 1월부터 코로나 대응을 이유로 엄격한 출입 제한을 실시해 사람과 물건의 왕래가 끊겼다. 식량 공급권은 국가가 독점했고, 사람들은 부족한 쌀을 암거래로 구입해야 했다.

어느 날은 김씨의 집에 단속반이 찾아와 비축해 둔 쌀을 가져갔다고 한다. 김씨가 “우리 돈으로 산 식량이니 가져가지 말라”고 항의하자, 단속반은 “이 땅이 네 땅이냐? 네가 마시는 이 공기도 모두 노동당의 것”이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김씨는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이곳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도망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북한은 국경 봉쇄로 인해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1990년대 대기근과 같은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김씨는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힘들었다”며 “그때는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에서는 굶어 죽지 않았는데, 코로나 기간에는 매일같이 동네에서 ‘누구 아버지가 죽었다. 누구 자식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흉악 범죄도 급증했다. 김씨는 “먹고 살기 위해 살인과 강도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며 “공개처형도 많았다”고 했다. 작년 4월에는 엘리트로 대우받는 북한의 한 대학생이 중년 여성을 죽이고 480만원을 훔쳐 달아나는 일이 발생했다. 엔화로 8만엔(약 7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북한에서 공개처형 당하는 청년들과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 /일본 TBS

이 대학생은 공개처형을 당했고, 김씨는 이를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김씨는 또 “2022년 7월에는 22살의 청년이 친구와 함께 한국 음악과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총살당했다”며 “그 처형을 앞에서 봤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북한의 상황에 대해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김씨는 정치 이야기가 나오자 입을 다물었다. 그는 ‘김정은 정권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물음에 “모르겠다. 정치적인 발언은 할 수 없다”며 “최고지도자가 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해야 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김씨는 북한을 떠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집을 나가면 주변을 의심하고 남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그에게도 좋은 일이 생겼다. 김씨는 탈북 후 남한에서 태어난 장남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탈북 당시에 대해 “실패하면 가족 모두가 처형당할 테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며 “경계선을 넘었을 때 그냥, 기뻤다”고 했다.

김씨가 작년 5월 탈북할 때 이용한 목선. /일본 TBS

미국 국무부가 22일 발간한 ‘2023 국가별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코로나 이후 시행했던 국경 봉쇄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자의적인 체포와 구금, 고문, 즉결 처형 등 비인도적 행위가 만연하고 있으며 개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탈북했다가 강제 북송된 여성이나 기형아 출산 가능성이 있는 임부, 감옥 등에서 강간으로 임신한 경우 낙태가 강제된다고 전했다. 또 민간인에게 공개 처형 참관을 강제하며 현장 학습의 일환으로 공개 처형 참관이 이뤄지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구타와 전기고문, 물고문, 알몸 노출, 똑바로 서거나 누울 수 없는 작은 감방에서의 감금, 매달아 놓기 등 고문이 자행되며 수용소 간수들의 물리적 폭력 및 여성 수용자에 대한 성폭행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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