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김수현-김지원 “사랑? 좀 너덜거려도 괜찮아!”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4. 4. 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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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망가지면 고치고, 구멍나면 메워가면서, 좀 너덜거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난 같이 있을 수 있어! 그래도 괜찮다면 나랑 결혼해줄래?”

28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 마지막 회에서 백현우(김수현 분)는 홍해인(김지원 분)에게 두 번째 프로포즈를 건넸다.

어느 봄날이었고 길 양 편으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지도 않았고 그저 어깨만 나란한 채 걷고 있었다. 벚꽃 잎을 뚫고 하늘하늘 와닿는 햇빛은 있었지만 현우 주머니에 준비된 다이아 반지 따윈 없었다.

그러므로 겉보기에 그 프로포즈는 산책길에 문득 떠올라 건넨 안부인사처럼 생뚱맞았다. 하지만 거기엔 용기가 담겼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지키고 싸우고 실망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뚫어낸 용기. 아울러 확고한 다짐도 담겼다. 틀어지고 어긋나면서 미워하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

홍해인은 기꺼웠다. 예약된 레스토랑도 아쿠아리움도 아녔지만, 또한 무릎 꿇고 두 손으로 건네는 반지도 없었지만 그 용기, 그 다짐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실은 해인도 같은 용기를 내고 다짐을 하던 차였다. 기억을 잃기 전 생에서 백현우와 이혼했던 이유가 사실은 참 별 게 아니었을 것이라는 자각이 들어서다. 백현우를 향한 제 마음과, 백현우가 보여준 자신에 대한 마음이 이토록 간절한데 서로가 서로를 치명적으로 배신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다만 아마 제 자존심 세우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댔겠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 속의 자신 모습이 그랬으니까. 그리고는 멍청한 오해나 쌓았을 테고. 닫힌 현우 방문을 노크할 엄두는 못냈을 거야. 차라리 현우를 미워하는 게 쉬웠겠지. 그렇게 우리 관계는 망가졌을 거야.

하지만 반대로 해본다면? 속내를 있는 그대로 밝히고, 공연한 오해따윈 하지 않고, 자존심 접어두고 내 쪽에서 먼저 노크한다면, 그렇다면 해볼만 하지 않을까? 그래서 기꺼이 답했다. “당연하지! 그런데 아직은 내가 당신이랑 썸타는 중이야.”

누구도 전체 대관을 하지 않은 그 길엔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다. 마치 온 우주가 도와 두 사람만의 벚꽃 길을 선사한 듯 했다. 살랑이는 바람과 흔들리는 꽃잎, 하늘거리는 햇빛 속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주인공이 되었다.

이 로맨스 코미디는 따뜻하게 끝났다. ‘가치 회복’이란 주제의식을 작게는 부부로부터 시작해 가족과 사회로까지 확장해가며 강요없이 시나브로 설득해냈다.

처가살이하는 현우에게 엘리베이터에 별관과 패닉룸까지 갖춘 거대한 퀸즈 본가는 항상 편하고 썰렁했다. 남아도는 것이 방이라서 해인과 각방살이 해도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나머지 가족도 마찬가지. 서로들 동선 겹칠 여지 별로 없이 모두는 그 넓은 공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각자의 영역에서 방문 꼭 닫고 각자의 삶을 영위한다.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엄마도 없고 귀가 늦는 딸을 걱정하는 아빠도 없다.

이 가족의 사소한 변화는 해인으로부터 시작됐다. 죽을 병 걸린 자신을 위해 현우가 애쓰는 모습에 은근 감동한 해인은, 시아버지 백두관(전배수 분)의 이장선거를 돕기 위해 수많은 경품과 케이터링을 대동하고 용두리를 찾았었다. 헬기를 이용했던 첫 방문땐 백현우만 봤었지만 결혼 후 첫 방문은 시아버지 유세를 지원한 자리인만큼 마을 사람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서 자신을 거둬먹이는 이름 모를 아낙들의 환대는 은근 기꺼웠다.

그 영상을 지켜보는 엄마 김선화(나영희 분)는 그 모습이 볼썽사납다. 제 손으로 그렇게 해본 적은 없지만 딸 해인의 그런 모습이 빈정 상하고 거북하다.

그 김선화를 포함, 퀸즈가 가족들은 윤은성(박성훈 분)과 모슬희(이미숙 분)에 의해 본가에서 쫓겨나 현우 본가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또 다른 삶을 접한다.

홍범준(정진영 분)은 사돈 백두관과 함께 나누는 평상 막걸리 맛을 알게 됐고, 김선화는 되도 않는 겉치레의 무상함을 느낀다. 홍범자(김정난 분)는 낮은 담 너머로 영송(김영민 분)을 염탐하는 재미에 눈뜨고, 천다혜(이주빈 분) 잃고 낙심한 홍수철(곽동연 분)은 백현태(김도현 분)의 응원에 힘을 얻는다.

윤은성, 모슬희처럼 적의와 욕심에 매몰되지 않은, 온순한 영혼들과 함께 하는 생활은 긍정적이었다. 그 결과로 모든 것이 원위치 됐을 때 홍범준은 형 홍범석(박윤희 분)에게 회장 자리 넘겨주고 캠핑을 즐길 줄 알게 됐고, 아내 김선화도 툴툴대면서도 그 여유를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홍범자는 영송의 느림보 팔자걸음 구애에 때늦은 설렘과 조바심을 즐기게 됐고, 홍수철은 모지리의 탈을 벗고 든든한 가장으로 거듭났다.

그에 반해 윤은성은 안타깝다. 친모 모슬희로부터 버림받은 이후 세상은 언제나 그에게 끔찍했다. 그 와중에 홍해인이란 출구를 발견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최선을 다해 음모도 꾸몄다. 그에게 없지만 있어야 하는 존재, 홍해인을 위해서.

하지만 악착을 떨수록 그의 영혼은 가난해져 갔고 그만큼 홍해인으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설원에 널부러진 그의 죽음은 그가 날린 총탄이 백현우의 어깨를 뚫으면서 홍해인의 관심사조차 될 수 없었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 남자. 소유욕과 집착을 사랑이라 착각한 남자. 그를 위한 애도는 친모 모슬희의 찔끔 눈물 한 방울이 전부였다. 응원까지는 아니더라도 홍해인의 사랑을 지켜만 봐주었더라면 윤은성의 인생은 훨씬 근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보다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훨씬 많이 찾아내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니 프로포즈때 건네는 금강석 같이 흠없이 완전무결한 사랑을 유지하는 커플은 보기 힘들다. 더러 망가질 것이고 더러 구멍날 것이다. 그때마다 고치고 메워가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지 모른다.

비단 커플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람 사이의 낯익힘이란 것이 집중하고 아우르고 수용할 때에야 비로소 아귀를 맞출 수 있다. 그런 노력 자체가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일지 모른다.

그리고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사람에 대한 그런 사랑만으로도 아침에 눈을 뜰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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