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훈의 산인만필(散人漫筆) <37> 복숭아꽃 소고(小考)] “속세 사월에 꽃 다 지니, 산사 복숭아꽃 이제야 활짝 폈네”

홍광훈 문화평론가 2024. 4. 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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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집 마당에 활짝 핀 복숭아꽃. 며칠 만에 하루 종일 내린 봄비 속에서 꽃잎이 거의 다 떨어지고 말았다. 사진 홍광훈

당(唐) 말기 맹계(孟棨)가 지은 ‘본사시(本事詩)’는 ‘정감(情感)’ ‘사감(事感)’ ‘고일(高逸)’ 등 7항목으로 구성된 시화(詩話)다. ‘정감’의 첫머리에는 유명한 ‘파경(破鏡)’의 고사가 보인다. 부부가 외적의 침입으로 헤어지면서 거울을 깨어 반쪽씩 나누어 가졌다가 나중에 이를 증표로 다시 만나게 된다는 ‘파경중원(破鏡重圓)’의 이야기다. 그 마지막은 ‘인면도화(人面桃花)’의 고사가 장식하고 있다.

당 중기의 어느 청명(淸明) 날 최호(崔護·772~846)가 도성의 남쪽을 거닐었다. 목이 말라 복숭아꽃이 만발한 어느 집 문을 두드렸더니 한참 만에 한 젊은 여인이 나왔다. 최호가 자기 이름을 말하고 물을 청하자 여인이 물그릇을 갖다주었다. 여인은 최호에게 문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가라고 했다. 최호가 쉬는 동안 여인은 비스듬한 복숭아나무 가지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최호가 말을 걸었으나 여인은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작별을 고하자 여인은 문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그 뒤 최호는 과거 공부에 열중하느라 그 일을 잊고 있었다가 이듬해 청명 날에 갑자기 생각나 다시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여러 번 문을 두드려도 여인은 나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는 왼쪽 문짝에 절구 한 수를 써 놓고 돌아왔다.

“지난해 오늘 이 문안에서는, 사람 얼굴과 복숭아꽃이 서로 비추어 붉었다오. 사람 얼굴은 지금 어디로 가고, 복숭아꽃만 옛 모습 그대로 봄바람에 웃고 있소(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只今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도성의 남쪽 장원에 적다)’이라는 시의 창작 배경이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이를 읽고 시를 음미하는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길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며칠 뒤 다시 그 집 앞에 갔더니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두드리자 한 노인이 나와 물었다. “그대가 최호라는 사람이요?” “그렇습니다.” 노인이 울면서 말했다. “그대가 내 딸을 죽였소.” 노인은 놀란 표정으로 할 말을 잊은 최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내 딸이 지난해 이후로 늘 멍하게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소. 며칠 전 딸과 함께 외출했다가 돌아왔소. 딸은 그대가 써 놓은 시를 보고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소.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더니 방금 숨이 끊어졌소.”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간 최호가 통곡하면서 말했다. “내가 여기 있소. 내가 여기 있소(某在斯, 某在斯).” 그러자 잠시 후 여인이 눈을 뜨더니 한참 만에 깨어났다. 노인은 기쁜 나머지 바로 딸을 최호에게 시집보냈다.

홍광훈 문화평론가 국립대만대학 중문학 박사,전 서울신문 기자,전 서울여대 교수

복숭아꽃에 얽힌 이야기로는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도원결의(桃園結義)’ 다음으로 이 ‘인면도화’가 유명하다.

복숭아의 원산지가 중국인 만큼 ‘시경’에 이미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시집가는 젊은 여인의 아리따운 모습을 묘사한 ‘도요(桃夭)’ 편이다. “복숭아꽃 활짝 폈네. 불타는 듯 붉디붉은 그 꽃송이. 이 처자가 시집가면, 그 집안에 어울리겠네(桃之夭夭, 灼灼其華. 之子于歸, 宜其室家).” 꽃을 읊은 이 첫 장에 이어 열매와 잎으로 이어진다.

그 이후로 역대의 유수한 시인 중에 복숭아꽃을 읊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작품이 나왔다. 중당(中唐) 때의 유우석(劉禹錫)은 ‘죽지사(竹枝詞)’에서 복숭아꽃을 등장시켜 젊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산 복숭아 붉은 꽃은 저 위에 가득하고, 촉강의 봄물은 산을 치며 흐른다. 꽃 붉으나 쉬이 시드니 내 임 마음 같고, 물은 흘러 끝없으니 이 내 근심 같구나(山桃紅花滿上頭, 蜀江春水拍山流. 花紅易衰似郎意, 水流無限似儂愁).”

같은 시기 백거이(白居易)는 뒤늦게 산사에서 만난 복숭아꽃을 보면서 그 기쁨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속세 사월에 꽃 다 지니, 산사 복숭아꽃 이제야 활짝 폈네. 봄이 돌아가면 찾을 곳 없음을 길이 한스러워했는데, 다시 돌아 여기로 들어왔을 줄은 몰랐노라(人間四月芳菲盡, 山寺桃花始盛開. 長恨春歸無覔處, 不知轉入此中來).” 제목은 ‘대림사도화(大林寺桃花)’다.

이백(李白)이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복숭아꽃 흐르는 물을 따라 아득히 멀어져가다(桃花流水杳然去)”라고 읊었듯이 물에 떨어진 복숭아꽃을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도 꽤 많이 보인다. 이백은 ‘숙무산하(宿巫山下)’ 라는 절구에서 “복숭아꽃 푸른 물에 날리고, 삼월에 구당으로 내려간다(桃花飛綠水, 三月下瞿塘)”고도 했다. 이백보다 후배인 장지화(張志和)는 ‘어가자(漁歌子)’라는 사에서 “복숭아꽃 물에 흘러가고 쏘가리는 살쪘다(桃花流水鱖魚肥)”라고 노래했으며, 선배인 장욱(張旭)은 ‘도화계(桃花溪)’라는 절구에서 “복숭아꽃 온종일 흐르는 물 따라가고(桃花盡日隨流水)”라고 표현했다. 두보(杜甫)는 만흥(漫興)’이란 절구 9수 중 제5수에서 “미친 버들 솜은 바람 따라 날아가고, 경박한 복숭아꽃은 물을 쫓아 흘러가네(顛狂柳絮隨風去, 輕薄桃花逐水流)”라며 오래 가지 못하는 복숭아꽃을 원망하듯이 말하고 있다.

복숭아는 곧잘 오얏과 병칭된다. 이는 ‘시경’에서부터의 습관이다. ‘소남(召南)’의 ‘하피농의(何彼襛矣)’ 편에 “아름답기는 복숭아꽃과 오얏꽃 같네(華如桃李)”라는 구절이 보이고, ‘대아(大雅)’의 ‘억(抑)’에는 “나에게 복숭아를 던지면, 오얏으로 갚아준다(投我以桃, 報之以李)”는 말이 나온다. 오얏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자두로 불린다.

전국시대에 나온 ‘묵자(墨子)’의 ‘비공(非攻)’편에는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와 오얏을 훔쳤다(入人園圃, 竊其桃李)”는 대목이 있다. ‘사기(史記)’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서는 사마천(司馬遷)이 이광(李廣)의 훌륭한 인품을 “복숭아와 오얏은 말하지 않아도 아래에 저절로 길을 이룬다(桃李不言, 下自成蹊)”는 속담을 인용해 칭송했다. 또 ‘오얏이 복숭아를 대신해서 마른다(李代桃僵)’는 고사성어도 자주 사용된다.

이 두 꽃을 함께 언급한 시는 셀 수 없을만큼 많다. 당 초기 유희이(劉希夷)가 지은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이란 장편 시는 “낙양성 동쪽의 복숭아꽃과 오얏꽃, 이리저리 날아서 누구 집에 떨어지나(洛陽城東桃李花, 飛來飛去落誰家)”로 시작한다. 이백은 ‘대주(對酒)’의 첫머리에서 “술잔을 밀지 말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봄바람이 오는 사람 보고 웃는다. 복숭아와 오얏은 예부터 아는 듯이, 꽃을 기울여 나를 향해 피는구나(勸君莫拒杯, 春風笑人來. 桃李如舊識, 傾花向我開)”라고 했다.

이 ‘도리(桃李)’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형용하는 데도 더러 쓰인다. 조식(曹植)의 ‘잡시(雜詩)’에 “남쪽 나라에 가인이 있으니, 아리따운 얼굴이 복숭아꽃과 오얏꽃 같다(南國有佳人, 容華若桃李)”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인재 천거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이는 “봄에 복숭아와 오얏을 심으면 여름에 그 그늘 아래에서 쉴 수 있고 가을에 그 열매를 먹을 수 있다. … 지금 그대가 심은 것은 그에 맞는 사람이 아니다(春樹桃李, 夏得陰其下, 秋得食其實 … 今子所樹,非其人也)” 라는 ‘한시외전(韓詩外傳)’의 말에서 비롯됐다. 성당 때의 장구령(張九齡)은 ‘감우(感遇)’ 12수의 제7수에서 당시의 편파적인 인재 추천을 비판하는 데 이 고사를 활용했다. 시에서 그는 “강남에는 단귤이 있다(江南有丹橘)”면서 “그저 복숭아와 오얏만을 심는다고 하는데, 이 나무에 어찌 그늘이 없겠느냐(徒言樹桃李, 此木豈無陰)”라고 반문하고 있다. 이백과 백거이의 시에도 각각 “복숭아와 오얏이 중원에 가득하다(桃李滿中原)”는 구절과 “영공의 복숭아와 오얏이 천하에 가득한데 집 앞에 다시 꽃을 심을 필요 있을까요(令公桃李滿天下, 何用堂前更種花)”라는 대목이 보인다. 널리 쓰이는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라는 고사성어도 여기서 나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매화와 진달래꽃이 피었다가 금방 졌다. 이어서 복숭아꽃이 만발하더니 며칠 만에 하루 종일 내린 봄비에 꽃잎이 거의 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저 아쉽고 서운하기만 하다. 이제 다시 다른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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