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 가도 괜찮다’ 캤으면 을매나 슬펐겠노… 훈아답게 갈거다”

안진용 기자 2024. 4. 2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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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황’ 나훈아 은퇴 콘서트
39세때와 77세때 영상 띄워
‘물레방아 도는데’ 듀엣 연출
홀로 2시간25분 22곡 ‘책임’
‘건강상 이유로 은퇴’ 루머에
건강검진표 꺼내 건재함 과시
“기타도 안잡고 피아노 안치고
책은 읽되 일기도 쓰지 않을것”
가수 나훈아의 은퇴 콘서트장 앞에 걸린 대형 포스터 앞에서 팬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인천=안진용기자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는지요? 더는 연예계 기웃대지 않겠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마침표였다. 데뷔 58년 만에 은퇴를 외친 ‘트로트의 황제’ 나훈아의 마음은 확고했다. 지난 27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2024 나훈아 콘서트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 인천 공연 무대에 오른 나훈아는 짱짱했다. 초대 가수 한 명 없이 홀로 2시간 25분간 22곡을 책임졌다. 음정 하나, 박자 하나 허투루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농담으로도 ‘은퇴 번복’ 가능성은 열어두지 않았다. 꽉 찬 엔딩이었다.

공연 전부터 ‘기장 갈매기는 날아야 한다. 은퇴는 국민투표로’ ‘이제 누가 국민을 달래주나’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1967년부터 2024년까지 57년의 역사를 총망라한 영상과 함께 내리 6곡을 불렀다. 1986년 39세 나훈아와 2024년 77세 나훈아가 2분할 화면으로 ‘물레방아 도는데’를 듀엣으로 부르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곳곳에서 “은퇴하지 말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고, 나훈아는 “섭섭하냐”고 물었다. “말을 놓자”는 나훈아의 제안에 관객은 “응”이라고 답했고, 그는 “그래서 그만두는 기다. ‘가도 괜찮다’칼테 ‘니 가봤자’칼테 그만두면, 서운해 안 했으면 돌아서는 모습이 을매나 슬펐겠노”라고 되물었다.

나훈아는 ‘건강상의 이유’라는 루머에 대해 건강검진표로 맞섰다. “어떤 점쟁이가 내년에 내가 죽는다카데”라고 너스레를 떤 그는 일본어로 작성된 건강검진표를 화면에 띄운 후 “금년 2월에 한 피검사입니다. 25가지 중 조금이라도 수치가 문제 있으면 빨간색으로 뜹니다. 의사선생도 깜짝놀랐다카이”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북한을 향해서는 “김정은이라는 돼지는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 살이 쪄가지고 혼자 다 합니다”라면서 “우리를 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 평화도 있습니다”라고 강조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나훈아는 은퇴를 결심한 진짜 속내도 밝혔다. 그는 “안 본 데 가보고, 안 묵어본 거 묵고, 이라고 살 깁니다. 3, 4시간 노래 불러도 끄떡없을 때, 다리 멀쩡할 때 하고 싶은 거 다 할 깁니다”라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사셔야 합니다. 썩어빠지게 번 돈 다 쓰고 죽어야 합니다”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그의 자작곡인 ‘공’의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대목을 들려줬다.

나훈아는 단호했다. 일말의 복귀 가능성도 차단했다. 1200곡을 발표하고 그중 95%를 직접 썼다는 그는 “태어나서 직업은 딱 하나, 가수였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은 거의 기적”이라며 “이제는 피아노에 앉지 않을 깁니다. 기타도 잡지 않을 깁니다. 책은 읽되 글은 쓰지 않을 깁니다. 일기도 안 쓸 깁니다. 여러분 고마웠습니다”라고 거듭 인사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는 마지막 곡인 ‘사내’로 나훈아답게 그 이유를 밝혔다. ‘미련 같은 건 없다 후회 역시도 없다 사내답게 살다가 사내답게 갈 거다’라는 가사의 한 대목을 ‘훈아답게 갈 거다’라고 바꿔 불렀다. ‘은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이유는 “그 말이 싫습니다. 꼭 밀려가는 느낌입니다. 지는 아직 할 수 있습니더. 그래서 마이크를 스스로 내려놓는 깁니다”였다.

나훈아 은퇴 공연의 대미는 장엄했다. 그는 “저는 마이크를 놓아 이제 노래를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불러주이소”라고 당부했고, 잠시 후 무대 뒤편에서 드론 한 대가 날아왔다. 그 드론에 마이크를 걸어 날려 보냈다. 이후 관객들에게 큰절을 올린 나훈아는 리프트를 타고 무대 아래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나훈아의 인생은 그가 짓고 부른 노래로 대변됐다. “제 곡 중 가장 행복한 노래”라며 ‘가시버시’를 들려줬고, 가족 얘기를 좀처럼 하지 않던 그는 “우리 어무이가 내일 100세가 된다”며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는 홍시를 맛깔스럽게 불렀다. 여전히 찢어진 청바지에 하얀색 민소매 셔츠를 입고 ‘청춘을 돌려다오’를 열창한 나훈아는 훌쩍이는 관객들을 ‘이미 와버린 이별인데 슬퍼도 울지 말아요’(무시로)라고 달랬고, ‘우리 울지 않기로 해요. 웃기로 해요’(아름다운 이별)라고 보듬었다.

관객은 울었지만, 나훈아는 참았다. ‘남자의 인생’(2017)은 그런 거라고, 그게 ‘사내’(2004)다운 거라고 천생 경상도 사나이는 외쳤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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