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주역] ‘우영우 고래’에 ‘스위트홈’ 괴물… 시각효과 책임지는 웨스트월드

고양=이은영 기자 2024. 4. 29. 08: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 최적화’ 원스톱 VFX 설루션 제공
“R&D 역량·풍부한 전문가가 차별점”
넷플릭스 오리지널 '고요의 밤' VFX 작업 예시. /웨스트월드 제공

동남아시아, 일본 등을 중심으로 불던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며 ‘K컬처(한국 문화)’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K팝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으로 대변되는 K컬처 뒤에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부가가치를 높이며, 유통하는 많은 손길이 있다.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K컬처 주역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 홈 1’의 흉측한 괴물, ‘고요의 바다’ 속 우주 공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상상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고래, 1000만 관객 영화 ‘파묘’ 속 귀신과의 혈투.

모두 시각특수효과(VFX) 전문기업 웨스트월드의 손길로 만들어진 장면이다. 웨스트월드의 작업은 키가 3m가 넘는 가상의 존재를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만들어내는 것부터 영상의 분위기와 색감을 만들어내는 일, 세트장을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 등을 아우른다.

손승현 웨스트월드 대표. 웨스트월드는 2019명 5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250명 규모의 국내 최대 VFX 회사가 됐다.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맺어 '스위트 홈' 시즌 1, '지금 우리 학교는', '고요의 바다', '더 글로리' 등 다수의 오리지널 작품의 시각효과 작업을 맡았다./고양=이은영 기자

지난 19일 경기도 고양시 본사에서 만난 손승현 웨스트월드 대표는 “VFX는 작품의 시작부터 함께한다. 시나리오가 쓰여질 때 ‘이런 신을 쓸 건데 시각적으로 구현 가능할지’에 대한 기술 자문을 받아주는 것부터가 우리 작업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투자를 받으면 예산에 맞춰 컨설팅하고, 촬영을 거쳐 후반 작업까지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팀보다 더 오랫동안 작품에 붙어있게 된다”고 말했다.

웨스트월드는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맺은 국내 최대의 VFX 기업이다. 손승현 대표가 2019년 5명으로 시작해 현재 25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같은 기간 매출은 58억원에서 180억원으로 늘었다. 웨스트월드는 드라마·영화 제작사 웨스트월드 스토리를 자회사로 두고 있고, 웨스트월드 넥서스라는 3140㎡(950평) 규모의 VFX 스튜디오를 경기 파주에서 운영하고 있다.

웨스트월드는 최근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HOPE)’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다음은 손 대표와의 일문일답.

―VFX는 어떤 작업인가.

“현장에서 직접 촬영만 해서 연출하기 어려운 장면을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서 만드는 과정 전반을 이른다. 정보기술(IT) 기반의 CG나 가상 제작(VP)만을 뜻하지 않는다. 특수 분장, 불을 지르고 물을 뿌리는 등의 아날로그 효과까지도 포함한다.”

―넷플릭스 파트너사로 주목을 크게 받았다.

“국내 영화와 드라마도 같이 하고 있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위주로 제작하고 있다. 기술 연구개발(R&D)에 넷플릭스 도움을 많이 받았다. 넷플릭스 도움으로 개발하게 된 제작 기술들은 넷플릭스가 아닌 다른 작품 제작에도 활용한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산업 전반을 지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손승현 웨스트월드 대표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의 프리프로덕션 과정을 설명하는 모습.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는 서울 도심의 건물이 쓰러지는 모습을 어느 동네의 어떤 건물이 어떤 모습으로 쓰러질지 등을 구상해 콘티로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짧게는 3개월에서 8개월이 걸린다./고양=이은영 기자

또 넷플릭스는 프리프로덕션(영상 제작 준비)에 최대 8개월을 준다. 한국 작품은 보통 3개월 이내에 마친다. 콘티가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 던져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넷플릭스 작품을 만들어 보니, 더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작을 준비하는 법을 알게 됐다.”

―기술적으로 가장 큰 도전을 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

“‘스위트 홈’ 시즌 1이다. 과거와 달리 주인공급의 크리처(괴물)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원작 웹툰의 2차원(2D) 캐릭터를 3D화 하고 실사처럼 느낄 수 있게 해야 했다. 대략적인 그림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촬영하고 싶다는 현장 요구도 있었다.

그래서 넷플릭스와 제작 기법을 개발했다. 게임업계에서 주로 쓰던 실시간 시뮬레이터를 영화 현장에 적용했다. 예전에는 ‘쫄쫄이’를 입은 사람이나 긴 막대기를 대상물로 두고 촬영했는데,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CG 작업이 된 크리처가 보이게 했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 워크나 시선 처리, 액션을 더 실감나게 할 수 있었다.

LED 월 기술도 대표적이다. 블루스크린을 대형 LED 월로 대체해 실시간으로 고화질 영상을 띄워 찍는 것이다. 블루스크린을 띄워서 CG 작업을 하면, CG컷을 따로 분류하고 CG팀에 보내는 등 인력이 더 붙어야 한다. 그런데 LED 월로 이를 대체하면 후반 작업이 더 간편해지는 장점이 있다. 한동안 LED 월 품귀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주목받은 기술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고요의 바다' 촬영 세트에 LED 월이 설치된 모습. 이 LED 월에는 실시간으로 고화질 렌더링 된 영상이 띄워져 실제 배경처럼 연출된다. /웨스트월드 제공

―국내외 VFX 기업과 다른 웨스트월드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이런 R&D 기술을 기반으로 현장에 최적화된 설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무조건 최신 CG 기술이 제일 좋은 건 아니다. 현장 상황에 따라 아날로그가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웨스트월드는 기술별 전문가가 내부에 있어, 단순히 아이디어만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서비스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하다.

일례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작업 당시, 변호사 사무실 세트장의 창밖 풍경을 VFX로 구현해야 했다. 창문 크기가 커서 LED 월을 세우기엔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빔프로젝터로 쏘기에는 창문 개수가 많아서 장비가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이 파나플렉스라는 플라스틱 소재였다. 플라스틱에 풍경을 인쇄한 뒤 뒤에서 빛을 비추면 아주 자연스럽게 연출이 된다.

또 웨스트월드는 VFX 장비를 매뉴얼화했다. 크로마키와 같은 장비를 만드는 데 쓰이는 제품을 하나하나 실험해 보고 결과물을 분석했다. 크로마키로 쓸 수 있는 장판, 필름, 페인트, 천의 가격과 장단점, 수급 기간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조명이 부족할 땐 이 제품을 이렇게 쓰면 좋다’ 등을 표준화했다. 950평 규모의 스튜디오를 직접 운영하고 있어, 이곳에서 각종 실험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19일 찾은 경기 고양시 웨스트월드 본사의 드라마 편집실. 웨스트월드의 편집실은 콘텐츠 종류별 시청 환경에 맞춰 조성돼 있다. 거실 TV로 볼 것 같은 드라마 등 작품은 이런 모습의 편집실에서 작업하고 영화 작업은 영화관처럼 꾸며진 편집실에서 스크린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작업한다. /고양=이은영 기자

―K콘텐츠 업계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열정적인 제작 분위기다. 물론 지나치게 열정적인 것도 문제지만, 작품에 대한 제작진의 열정이 미국보다 강하다고 느낀다. 모두가 1000만 영화를 목표로 하고 제작에 들어간다. 현장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제작하기 때문에, 결과물만 더 좋다면 시나리오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반면 미국은 대본 그대로 찍어야 하는 문화가 있다. 미국 애플TV플러스 오리지널 작품 제작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현장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다르게 찍어 갔더니 ‘이 대본대로 제작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한 건데 왜 다르게 하느냐’며 ‘대본대로 다시 찍어오라’고 했다.

일본은 실패하는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수익은 나지만 큰 성공도 없다. 또 감독의 연출료가 제작비의 1%에 그친다. 감독부터가 돈벌이가 안 되니, 동시에 영화, 드라마, 광고 연출을 10개씩 하기도 한다. 예술가라기보다는 제작 대행 프리랜서 느낌이 강하다. 한국에서 하듯이 일본에서 하면 일을 벌인다며 불편해한다.”

―K콘텐츠 인기는 높아지지만 업계엔 위기론이 일고 있다. 배우 몸값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많은데.

“몸값을 책정하는 기준이 좀 더 냉정해지면 좋겠다. 물론 연기도 잘하면서 티켓 파워도 있는 명배우에겐 그에 맞는 출연료를 주는 게 맞지만, ‘저 사람이 저만큼 받으니까 나도 더 달라’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더 주게 되더라도 제작비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 배우에게 돈을 더 주느라 제작비가 깎이면 배우만 있고 퀄리티(품질)는 떨어진다.

‘이 배우를 쓰면 투자를 잘 받아 흥행할 것’이라고 쉽게 판단을 내리는 것도 배우 몸값을 올리는 요인이다. 톱 배우가 아니더라도 이야기에 맞는 배우를 다양하게 써야 작품도 더 다양해진다.”

―반면에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아티스트는 박봉에 시달린다는 인식도 강하다.

“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부터 처우를 강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연봉 1억원이 넘는 직원도 많고, 대략 5년 차면 5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 주 5일 이상은 일하지 않고, 오히려 월요일엔 오후 1시 출근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주 4.5일제에 가깝다. 또 아티스트가 성장해야 우리도 성장하기 때문에 근무시간이 끝나면 희망자에 한해 미술 강의를 한다. 나부터 노력해 산업 환경에 대한 평판을 바꿔 보려 한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