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잘하는 호흡법, 고수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서현우 2024. 4. 2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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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고수들의 호흡법]

매년 봄이면 등산을 시작해 보려는 초보들이 산 입구에 가득하다. 이들은 호기롭게 산에 첫발을 내딛지만 몇 걸음 걷지 않아 달려드는 두 가지 괴로움에 당황하곤 한다. 하나는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자 불붙어 녹아내릴 것 같은 허벅지근육, 다른 하나는 바로 '숨'이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은 어떻게든 억눌러 보려 해도 멈춰서 쉬지 않는 한 도무지 제어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봄은 미세먼지와 꽃가루로 인해 가뜩이나 숨 쉬기 까다로운 계절이다. 미세먼지에 민감해 마스크라도 쓰고 산행한다면 곧잘 숨넘어갈 것처럼 숨을 쉬면서 산행하기 일쑤다.

그렇다면 등산고수들은 과연 어떻게 호흡할까? 그들도 숨이 찰까? 또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 산행을 해도 괜찮을까? 엄홍길, 김재수 대장과 장거리 산행 고수 배병만씨, 트레일러너 김지원씨, 최천웅 강동경희대 호흡기내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_ 편집자

처음 20~30분은 코로 숨 쉬면서 천천히 걸으세요_엄홍길 대장

등산 초보들이 숨이 차서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평상시에 운동을 안 하니까 당연히 숨이 차죠? 꾸준하게 몸 관리를 한 사람이면 산에서도 숨이 안 찹니다.

엄홍길 대장님은 숨을 어떻게 쉬나요?

숨이 안 가쁠 때는 코로 숨 쉬고 숨이 가쁠 때는 입으로 쉽니다. 히말라야 8,000m 고산의 경우 산소량이 태부족하기 때문에 입으로 '하- 하-' 하면서 숨을 쉬어야만 필요한 산소량을 섭취할 수 있어요. 비율을 따지자면 90~95% 정도는 입으로, 코는 나머지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그럼 어느 정도 산행했을 때 숨이 가쁜가요?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땐 워밍업 삼아서 사부작사부작 걷습니다. 보통 20~30분 정도 의식적으로 천천히 올라가요. 몸의 긴장을 풀면서 근육에게 '나 이제 산 오를 거야'라는 암시를 천천히 주기 위해서죠. 이럴 땐 코로 숨을 쉬면서 천천히 심호흡을 합니다. 그 다음 이제 몸이 좀 풀리고 속도를 낼 만해지면 그때부터는 코로만 숨을 쉬어서는 호흡량이 턱없이 부족하니 입을 주로 사용해서 숨을 쉽니다. 숨이 찰 때 숨을 가라앉히겠다고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고 이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지 말고 입으로 그냥 쭉 숨 쉬어야 합니다.

또 숨이 너무 차지 않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요?

산행 시작 전에 항상 스트레칭하고 다리 근육도 이완시키세요. 그래야 몸이 등산을 할 거라는 걸 알고 준비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에 갈 때 차에서 내리자마자 막 걸어 올라가기 바빠요. 그렇게 처음부터 숨 가쁘면 계속 숨이 가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산행이 힘들어지고 싫어지고 악순환에 빠지죠. 그러니 그렇게 급한 성질로 산을 대하면 안 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산에 오래 다닌 사람들은 스트레칭 없이 바로 산을 올라도 걸으면서 워밍업도 하고 몸도 금방 적응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게 안 됩니다.

일단 스트레칭하고, 첫 20~30분은 코로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서 최대한 천천히 걸어보세요. 그리고 이제 됐다 싶을 때 속도를 올리고요. 그러면 전체적인 산행이 더 쾌적하고 힘도 덜 들 겁니다.

또 주의할 점을 꼽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친구나 산악회를 따라서 산에 가죠? 같이 가는 건 좋은데 절대로 자기 체력이 되지 않으면 앞사람 좇아가지 마세요. 자기 페이스를 오버하면 절대 안 됩니다. 내 페이스 이상으로 가면 숨이 찰 수밖에 없고 그러면 체력이 쭉쭉 빠져서 나중에 탈진할 수 있어요.

대장님이 가장 숨이 가빴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항상 모든 산의 정상 직전이 가장 숨이 가쁘고 고통스럽습니다. 히말라야의 경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소가 부족해지기도 하고 체력도 소진한 상태니 숨이 더 가쁘죠.

김재수 대장(왼쪽)

안 쉬고 작은 야산 뛰어오르는 훈련이 최고_김재수 대장

대장님은 어떤 식으로 호흡하시나요?

남들은 코로 두 번 들이쉬고 한 번 내쉬고 이런다는데, 저는 그러지 않고 그냥 한 번 쭉 빨아들이고 또 쭉 내쉬고 그렇게 합니다. 입과 코의 비율을 따지면 입으로 70~80%, 코로 나머지를 합니다. 입과 코를 동시에 사용해요.

발걸음과 맞춰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사람도 있는데 저도 그러려다 보니 타이밍을 맞추려고 자꾸 얽매다가 호흡이 더 엉키더라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하는 게 최고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입으로 숨을 쉬어도 괜찮나요?

괜찮은 문제가 아니라 히말라야에선 그렇게 해야 숨을 쉴 수 있어요. 나중에는 너무 입으로 격하게 숨을 쉬니까 목에 상처가 생겨서 피를 토해 내기도 하죠.

사람들이 코로 숨을 쉬는 게 좋다는 말 때문에 입을 꽉 다물고 코로만 숨 쉬려고 하니 산소량이 부족하고, 숨이 가쁜 겁니다. 일반 국내 산행 시에도 마찬가지예요. 입과 코를 동시에 호흡해야 합니다.

대장님이 숨이 가장 가빴던 순간을 꼽자면?

다울라기리 등반 때가 엄청 힘들었어요. 다른 등반 팀들은 전부 철수했고, 우리 셰르파는 배탈이 난 상태였죠. 그러니 대원들이 직접 모든 러셀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숨을 쉬다가 정신이 몽롱할 정도였죠.

정말 숨이 찰 땐 어떻게 하나요?

전체 호흡을 통제하진 않고 정말 숨이 차고 힘들 땐 해녀들의 방식을 사용합니다. 해녀들은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휙'하고 숨비소리라 불리는 휘파람을 불면서 숨을 고르거든요. 저도 마찬가지로 숨을 내쉴 때 휘파람이 아니더라도 의도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숨을 쉽니다. 그러면 호흡이 조금 더 빨리 안정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산행하면서 숨이 차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훈련이 답이죠. 제가 했던 방식은 이렇습니다. 동네 야산에서 뛰어오르는 연습을 했어요. 그냥 덮어놓고 무작정 빠르게 뛰지 않고, 끝까지 쉬지 않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페이스를 중간에 지쳐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빠르게 잘 맞춰야 합니다. 그러다 정말 힘들면 제자리에서 뛰면서 살짝 숨만 가라앉히고 다시 또 뛰고요.

제가 이 방법으로 처음엔 40분 넘게 걸리던 코스를 3~4개월 만에 26분까지 단축시켜봤습니다. 그러고 나니 웬만하면 숨이 차지 않더라고요.

가장 시원하게 숨을 들이마셨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마칼루를 등반할 때입니다. 히말라야가 지금은 많이 개발됐긴 했는데 마칼루는 여전히 때 묻지 않은 환경을 간직하고 있어요. 트레킹하는 사람도, 등반하는 이도 그리 많지 않거든요.

호흡보단 심박수가 더 중요_트레일러너 김지원씨

산행하거나 달릴 때 숨이 차면 어떻게 하시나요?

속도를 늦춥니다. 숨이 찰 땐 그게 답이에요. 그리고 숨을 크게, 천천히 쉬려고 합니다. 그러면 심박이 안정됩니다.

러닝을 많이 하니까 아무래도 자신만의 호흡법 같은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코나 입으로 호흡하는 것, 몇 번 내뿜고 쉬고 이런 건 따로 없어요. 그냥 몸이 무의식적으로 하도록 놔두는 편입니다. 굳이 신경을 쓰려고 하지 않아요. 몇 발자국에 들이쉬고 몇 발자국에 내뱉고 이런 것도 하지 않아요. 신체가 자연스럽게 하도록 놔두면 가장 최적의 호흡을 찾아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 호흡 대신 기준으로 삼거나 신경을 쓰는 지표가 있나요?

심박수입니다. 심박은 시계 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수치를 보면서 페이스를 조절해요. 예를 들어 심박수 180으로 3시간까지 유지가 가능하다면 이를 기준으로 삼아서 완주해야 할 거리에 따라 속도를 내거나 늦추거나 하는 거죠.

특히 '역치 심박'을 넘기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이 이상 넘어서면 운동이 지속 안 되는 심박수를 뜻하는 말입니다. 역치 심박에 임박하면 페이스를 낮추고, 호흡을 천천히 깊게 하면서 낮추려고 합니다. 어쨌든 호흡과 심박은 같이 엮인 문제기 때문에 심박수를 기준으로 통제하면 호흡도 같이 안정화될 겁니다.

폐기능 강화를 위해 따로 운동하신 적은 있나요?

예전에 '폐활량 운동기구'라는 걸 써본 적이 있긴 합니다. 숨을 세게 들이쉬고 세게 내뱉게 만드는 도구인데 수영하시는 분들이 주로 쓰고 러닝하시는 분들도 좀 쓰는 편이에요. 저는 크게 도움은 안 됐습니다. 너무 지루하더라고요.

저는 예전에 유럽 알프스랑 피레네 고산에서 몇 달 동안 거주한 적이 있어요. 고산지역에 거주하면 낮은 산소 수치로 인해 세포의 산소 이용 효율이 높아지고 심폐지구력도 좋아진다고 하죠.

등산하고 싶으면 러닝부터_J3클럽 배병만씨

등산을 시작했는데 숨이 차서 너무 힘들다는 분들이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운동하려고 산에 가니까 그렇죠. 저희 J3클럽 장거리 종주자들은 산을 올라가려고 운동하거든요. 산 밑에서 충분히 운동하고 달린 뒤에 산에 올라가야 숨이 차서 힘든 일이 생기지 않는 겁니다.

숨이 차서 힘들었던 경우는 없으신가요?

저도 충분히 운동하고 등산에 적응된 상태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산에서 흉식, 복식, 코나 입으로 숨을 어떻게 쉰다는 개념은 따로 두지 않아요. 숨이 애초에 차지 않으니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럼 등산하기 전에 어떤 운동을 하는 게 가장 좋을까요?

3~4km 정도의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게 좋습니다. 일단 뛰다보면 몸이 풀리면서 호흡이 안정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조금 더 속도를 높이는 식으로 계속 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실 겁니다.

인터넷에 뭐 여러 가지 호흡법이 나와 있는데 아무리 좋은 호흡법을 쓴다 하더라도 체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컴퓨터로 따지면 하드웨어가 안 좋은 상황인데 아무리 소프트웨어를 바꿔봤자 문제를 풀 수 없는 것과 같죠.

이처럼 사전운동을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요?

호흡을 굳이 의식하지 않고 산행할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이 돼야 산을 오롯이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숨이 차면 계속 호흡하는 데 매몰되어서 산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어요. 다른 사람하고 대화도 하고, 좋은 경치도 구경하고 그래야 산에 온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또 조망을 보면서 힘들었던 것도 잊어버리고, 힘이 안드니 숨도 덜 차고 그런 선순환이 되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기가 좋았던 산은 어디인가요?

어떤 산을 콕 짚을 수는 없는데 이런 건 있어요. 음이온이 많이 나오는 비 온 날 직후, 그럴 때 계곡 산행을 하면 정말 좋습니다.

특히 이끼가 많아야 합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산소의 30%를 이끼가 만들어낸다고 하잖아요? 그런 곳에서 숨을 쉬면 정말 폐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세먼지 많은 날 굳이 산행하겠다면…'KF80, 새벽보단 낮'_강동경희대 호흡기내과 최천웅 교수

미세먼지가 많은 날 산행하면 몸에 얼마나 해로운가요?

몇 시간 내내 담배를 피우면서 등산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세먼지에는 흔히 말하는 먼지가루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여러 독성 물질, 화학 물질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 산행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조언하자면?

산행을 안 하는 게 제일 좋지만 정 해야겠다면 마스크를 쓰셔야 합니다. 다만 KF94 마스크를 쓰면 너무 숨이 차니 KF80 정도 쓰는 것이 좋습니다. 또 오해하시는 게 새벽 공기가 시원하니 이게 깨끗한 줄 알고 이 시간에 등산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오히려 이 시간대에는 미세먼지가 대기 중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안 좋거든요. 그러니 낮이나 저녁시간 때 등산하시는 게 그나마 낫습니다.

호흡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미세먼지 들어온다고 아예 입을 막아버리고 숨을 조금씩만 쉬려고 하는 건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숨이 가빠온다는 건 몸이 산소가 필요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건데 그걸 막아버리면 더 안 좋죠. 그러니 억지로 숨을 덜 쉬려고 하지 말고 최대한 천천히 산책하듯 걸으시는 게 좋습니다. 너무 호흡을 강하게 하면 미세먼지 흡입량이 많아져서 몸에 해로워요.

산에서 숨을 적게 쉬려고 노력하면 폐활량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완전히 틀린 생각입니다. 폐활량은 태어날 때 정해져 있는 겁니다. 20세에 가장 좋고 나이가 들면 서서히 줄어들어요. 단순히 폐의 용적에 불과한 거거든요.

우리가 흔히 '숨을 참는 시간이 늘어난 걸 보니 폐활량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엄연히 틀린 말입니다. 호흡 근육이 발달해서 폐기능이 좋아진 거죠. 미세먼지 많은 날 굳이 운동을 하고 싶다면 실내운동을 권고합니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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